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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철학교수와 ‘새대가리들’의 두뇌싸움 2016년 7월 19일 화요일, 흐림밖에서 좀 쌀쌀한 바람이 불어들고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 보스코의 눈치를 살피며 텃밭에 풀 좀 깎아야겠다는 말을 엊저녁에 하니까 “나 좀 다그치지 마. 할 수 있을 때 할 테니까!” 라는 쌀쌀한 대답을 들은 터여서 “맘을 고쳐먹고 벌써 텃밭에 나가 예초기를 돌리나?” 싶어 고마운 맘이 팡팡 솟... 2016-07-2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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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풍금소리 들리는 공소 2016년 7월 17일 일요일, 맑음오랜만에 이신부님 가족이 도착하여 공소신자들에게 아침식사를 마련한단다. 콩 반쪽이라도 나눠 먹는 그 가족 특유의 정겨운 모습이다. 우리라고 빈손으로 가서 얻어먹기로는 염치가 없어 나도 새벽에 일어나 고구마를 오븐에 구웠다. 작년 늦가을에 고구마 두 상자를 선물 받았는데 옻칠된 장롱에 넣어두었더... 2016-07-1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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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시화(詩化)된 남편과 사는 기분 2016년 7월 13일 수요일, 흐림월간지 『전라도닷컴』을 보니 평생을 문어를 칼로 조각해 온갖 모양을 만드는 ‘문어조(文魚彫)’의 명인 황금주씨 이야기가 나온다. 열 살부터 시작하여 60이 되도록 오로지 그 일로만 반백년 세월을 보냈으니 문어와 칼이 그녀의 손에서 예술로 피어날 수밖에. 마음(心)에 칼(刀)을 올려 놓은 게 참을 인(忍) 자... 2016-07-1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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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어느 별에 살다가 내게로 온 생이여” 2016년 7월 11일 월요일, 흐림오늘은 보스코 생일. 여러 사람에게 축하를 받고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서도 축하를 받았지만 “하부이, 우리가 생일 축하 노래 불러드릴께요” 이어서 스카이프 화면으로 노래를 부르는 두 손주의 재롱을 보는 그의 표정이 한 폭 그림이다. 저리 좋을까? 유난히 정이 많은 사람이어서 외로움을 타면서도 어렸을 적... 2016-07-1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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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내 없는’ 자유평등평화 2016년 7월 9일 토요일, 맑음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텃밭엘 내려갔다와도 달려갔다 달려오는 걸음인데 등짝과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른다. 동이 트기도 전 새들도 부지런히 아침식사를 하고서 피서차 나무 숲으로 숨고, 아침 열시 경에야 집주변을 기웃거리는 건 본 떼 없는 까마귀가 전부다. 새벽까지 열어놓아 집안의 열기를 빼내던 창문을 ‘... 2016-07-1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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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단체로, 공평하게, 빠짐없이 걸린 그 해의 ‘디스토마 행사’ 2016년 7월 7일 목요일, 맑다가 비열린 커튼 사이로 해님이 살며시 들여다본다. 자기 없는 새에 무슨 일이 없었나 궁금했던지 창밖에 서성이며 대답을 기다린다. 나는 커튼을 활짝 열어주며 “자, 자, 자! 실컷 보슈!” 보스코 없는 날은 밀린 일 전부를 해치우는 날. 우선 빨래거리를 모조리 걷어다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이부자리를 테라스에 ... 2016-07-0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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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하느님의 ‘생산자 책임’ 2016년 7월 4일 월요일, 비온 후 개임아침에 빗발이 좀 뜸해서 꽃들을 살펴보러 나갔다. 보스코가 끈을 묶어준 해바라기는 줄에다 목을 얹고서 묵직한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데 일찍 피는 코스모스는 길로 눕거나 옆으로 쓰러졌고 꽃송이는 죄다 망가져 흘러갔다. 저러다간 몸이 닿는 곳마다 뿌리를 내릴 궁리를 하지 싶은데 과연 시멘트 바닥... 2016-07-0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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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성직자 수도자가 된 자녀가 효자라는 교회 속설 2016년 7월 3일 일요일, 장마비얼마 만에 장마다운 장마를 만나 비다운 비를 보는지! 식당채 지붕은 양철지붕 못지않게 시끄럽다. 내 어렸을 적 가평 현리 교장사택은 적산가옥에다 지붕이 양철이어서 비가 쏟아지거나 천둥번개가 치는 날엔 사남매가 한 방에 꼭 붙어 앉아서 오들오들 떨곤 했다. 막내 호연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런 날일... 2016-07-0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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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이주여성들에게 “낯섦과 끌림 그리고 어울림” 2016년 6원 30일 수요일, 소나기 오고 흐리다주인 없이 남겨진 집은 나름대로 혼자서 추스른다. 꽃들을 보살피고 먹이를 찾아 가끔 날아오는 참새와 비둘기들에게는 주인이 오면 다시 오라 이르고 바람과 햇볕도 잠시 쉬어가도록 자리를 내준다. 우리가 없어도 창밖의 백합은 하얀 향기를 뿜고 루드베키아는 빛나는 노랑으로 길가를 지킨다.그... 2016-07-0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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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날이 갈수록 죽은 이들과 가까워지는 나이에 2016년 6월 27일 월요일, 하루종일 구름“에~ 강신택 상가에서 알려 드리는 말씀입니다. 새벽에 진주에 도착하여 화장을 하고 진주를 떠나 곧 도착할 예정이니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을 쉼터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남자 분들은 낫이나 삽, 괭이 등 농기구를 갖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11시경 도착한다 했는데, 마을방송이 서두르는 걸 보니 고인... 2016-06-29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