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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모든 걸 다 잃더라도 가고 싶은 길을 가라!” 2016년 9월 4일 일요일, 구름아침 7시 30분에 일꾼들이 도착한다. 오늘은 마루 늘리는 부분에 벽돌을 쌓아 기초를 하고 그 안을 ‘왈가닥’(깨진 벽돌이나 허접쓰레기를 이렇게 부른다)으로 채운다. 그런데 마당 왼쪽 기초 쌓일 부분에 인동초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 그 뿌리를 잘라버리든지 넓힐 폭을 줄이든지 해야 한다. 고민을 하다 30년을 창... 2016-09-0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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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너희 엄마 잘 계시니?’ 엄마가 내게 묻는다”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구름 많음아침에 눈을 뜨고 커튼을 젖히면 제일 궁금한 게 구름이다. 산이야 늘 그 자리에 그 모습 이지만, 하기야 봄이면 연두색 새잎을 이고 여름에는 검푸른 청년이요 가을은 찬란한 오색으로 성장하고 겨울엔 고승처럼 처연하게 헐벗은 모습이다. 다만 옛날 희랍시대의 연극 주인공처럼 한 사람이 가면만 바꿔 쓰고... 2016-09-0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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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외려 그 뜨거움이 그리울 지경”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험악하게 흐리다 간간이 잔비올 여름 쿨하네.끈적끈적 들러붙지 않고단 하루 고이 비 내리던 그 밤을 고비로뒤도 안 돌아보고 쌩~ 하니 가버렸다.외려 그 뜨거움이 그리울 지경참~ 닮고 싶은 계절이다. (박맹순)맹순씨는 등단 시인은 아니지만 타고난 시인이다. 요즘 날씨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여자들이 애... 2016-08-3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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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멧동마다 일년에 한번은 머리를 깎는다 2016년 8월 28일 일요일, 비오다 오후 늦게 갬조용조용 비가 내렸다. 조급한 마음에 줄기찬 빗소리를 기대했는데 소나기가 아니고 땅을 달래며 스며드는, 가을 냄새 물씬 몰고 오는 가랑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공소에 가며 먼 산을 바라보니 지리산도 파란 나무들을 우산처럼 펴고 귀한 비님을 맞는다.추석이 가까워지며 동네 주변 야산에서... 2016-08-2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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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우리 부인께서 농사를 지으십니다요”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맑음아직 6시가 안됐다. 4시가 넘자 아직도 어둑한데 아랫집 진이아빠의 트럭 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책상에 앉아있는 보스코에게 내 일기 좀 (페북과 카스에) 올려 달라 부탁하고서 완전무장 차림으로 나선다. 완전무장이란 긴 바지, 팔 긴 난방, 토시, 수건, 안경(눈에 흙이 ... 2016-08-2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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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십자가에 숨져가던 '나자렛사람'의 시선은 무슨 빛이었을까? 이웃동네 이장님이 내가 어제 홍지사 일로 전화만 여러번 하고 내용을 설명 안했더니 무슨 일인가, 전화해온 내가 어떤 여자인가 궁금했던지 직접 트럭을 몰고 휴천재를 찾아왔다.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면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므로 내가 아는, 그 동네로 귀농한 사람들의 이름을 댔더니 썩 탐탁해 하지 않는다... 2016-08-2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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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홍지사 주민소환’ 서명운동 보완작업 8월 15일 전후해서 무우씨를 파종해야 한다. 날씨가 더워졌다 해도 8월 중에는 씨를 뿌려야 하는데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다. 먼지가 펄펄 나는 밭에 물을 주고 심는다 해도 하루면 포실포실해지는 흙, 마치 볶아놓은 팥가루 같은 밭을 어떻게 감당할까? 배추모 역시 포트에 씨를 낸다 해도 옮겨 심은 뒤 키울 일이 걱정 된다. 2016-08-2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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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십일조 내고 받는 풀서비스와 내는 돈없는 대충서비스 2016년 8월 17일 수요일, 맑음휴가중이어서 늦잠을 잘만도 한데 직업의식이란 무서워 새벽 일찍 잠을 깬 송목사와 애기엄마랑 함께 아침기도를 했다. 예전 우리 우이동집 집사 시절 아침저녁시간에 우리가 드리던 기도소리가 좋아, 담에 장가가면 자기도 꼭 부부가 함께 기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데 실제 결혼하고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 2016-08-1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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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또 한 친구의 부고를 받고 2016년 8월 15일 월요일, 맑음내 일기에 ‘맑음’이란 말을 하루쯤, 아니 한 3일쯤만 쓰지 않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는 식으로 태양은 눈부시지, 뙤약볕의 망치질을 몇 달 내내 당해야 하는 초목들은 더는 못 견디겠다고 비비 꼬이도록 말라, 길이고 잔디밭이고 텃밭까지 발 딛는대로 먼지가 퍽퍽 피어오른다. 작년에 길가에 씨 떨어... 2016-08-1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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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지네 물린 보스코, ‘땜빵 영구’ 2016년 8월 14일 일요일 맑음미사 시작 맞추느라 부지런히 걸었다. 공소에 도착하자 그새 온몸이 땀에 젖어 닦고 또 닦아야 한다. 나를 쳐다보는 보스코의 눈이 ‘참 딱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 기가 떨어져 그러니 좀 천천히 살라’하고 어떤 이는 ‘아직도 젊어서 순환이 잘 돼서 그러니 염려말라’하고 어느 말이 맞는지... 2016-08-15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