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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광화문에 집결한 100만 국민의 ‘대동세상’에서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흐림세종로와 그곳으로 연결되는 서울시내 모든 길이 조선시대 이전으로 돌아갔다. 아니 그때는 마차라도 다녔겠지만 오늘은 모든 차량이 끊기고 인파가 가득히 그 길을 메웠다. 함성, 함성, 함성, 분노의 함성이 촛불과 함께 뜨겁게 타오르는데 그 분노의 횃불을 든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어서 정말 놀라웠다. ... 2016-11-1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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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지구째 통구이할 요리사의 등장 2016년 11월 9일 수요일, 맑음요즘 밤이면 우리 집에 손님이 온다. 이웃 사는 친구인데 TV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날마다 우편으로 도착하는 ‘한겨레’에서 읽는다. 첫면부터 끝까지 다 읽는단다. 함양 보급소에서 온갖 신문을 한꺼번에 돌리는데 우편이어서 하루쯤 늦게 오는 게 보통이라 늘 ‘구문(舊聞)’이란다.저... 2016-11-1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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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이 그림에서 당신을 빼낸다면 그것이 내 최악의 인생” 2016년 11월 8일 화요일, 맑고 바람 많음휴천강가의 바위가 내게는 새끼를 안은 수달을 떠올린다“높이 오를수록 내려올 일을 걱정하라” “올라가서 눈부시게 보일수록 멋지게 장난하다 수직하강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 “늘 겸손하고 그 자리를 쳐다만 보며 맘졸이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라!” 현인이 일러주던 이 말들을 절감하는 ... 2016-11-0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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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흙 속에 묻힌 게 아니라 국민의 마음에 심겨진 백남기 농민 2016년 11월 6일 일요일, 흐림.지난 여름 주일미사 때 문정공소에서 울려 퍼지던 풍금 소리가 더는 안 나고, 먼지 쌓인 전자오르간이 치는 사람 없이 제대 위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떠났으니 이제는 그 오르간도 주인에게 들려줘야 할 시간이다. 보스코가 아침을 서둘러 먹고 공소에 내려가 기계를 풀어 가방에 넣어 차에 싣고 오... 2016-11-0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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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죽은 이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2016년 11월 2일 화요일, 맑음 위령의 날이다. 가톨릭에서는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실생활에 정신없이 쫓기다보면 살아있는 사람도 살피기 어려운데 죽은이들까지 챙기는 게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라도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가능하면 ‘미사’라는 제사를 올리며 성묘라도 하는 날이니 뜻깊은 일... 2016-11-0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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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산기슭에 버려진 외딴 집 한 채” 2016년 11월 1일 월요일, 맑음맑은 가을하늘이 돌아왔다. ‘모든 성인의 날’이니 아직 시복도 시성도 못 된 ‘맘마말가리타’ 곧 내 영명축일이기도 하단다. 오랜만에 햇살이 눈부셔 공소에 내려가 이신부님께 내드렸던 이부자리를 차에 싣고 올라와 테라스에 널었다. 사다드렸던 제습기도 들고 올라왔다. 덮을것과 베갯잇은 동생수녀님이 ... 2016-11-0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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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개는 주인을 물지 못한다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흐림로젠택배 아저씨의 전화. 문앞에 상자를 놓고 가겠단다. 요즘은 가끔 보내는 사람의 주소도 없이 물건이 도착하여 연락 없이 불쑥 찾아온 길손 같아 당황스럽다. 산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루 종일 창밖을 봐도 가끔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새들의 날개짓이 마음의 창을 노크하는 소리 전부일 때가 있다. 그러다 ... 2016-10-3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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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한국 땅의 아이히만들 2016년 10월 27일 수요일, 흐림보스코가 없으니 집안이 썰렁하다. 나만 있는데 기름보일러 돌리는 게 아까워 몸으로 떼웠다. 전기방석 하나로 냉기를 달래 본다. 그래도 몸속의 피가 돌면서 온기를 열심히 실어 나르니까 차츰 추위가 가신다. 아침으로는 삶은 계란 한 알을 칼로 반을 갈라서 파먹었다. 부지런한 여자가 혼자 남으면 보통 할 수 ... 2016-10-2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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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순실대통령’의 ‘순실개헌’이 하루 만에 시들해지고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비가 오다 해가 뜨다또 비가 온다. 아침에 눈 뜨면 일기예보를 보고 오늘 비가 좀 오려나 애태우던 긴 여름을 지낸 터라서 처음엔 고맙기도 했다. 서울에라도 가 있을 때는 사흘에 한번 오는 비가 하느님이 논밭과 텃밭과 화단에 물을 주신다고 흡족해 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잦아지자 식물들은 물이 안 빠져 뿌리가 ... 2016-10-2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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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고개를 돌리게 하는 명동 성당 2016년 10월 22일 토요일 흐림아침에 일어나 다리 한쪽을 들어 본다. 어제 산길을 10km는 걸었는데도 두 다리가 안녕하시다. 그제 광화문부터 인사동으로, 동대문으로, 다시 종로에서 동대문으로 그 오염된 공기 속을 헤매고 다니던 훈련을 미리해둔 터여서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으니 내 몸이 외레 고마웠을 꺼다. 주말이면 줄서서 ... 2016-10-24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