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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영혼 없는 공무원들', 기득권의 하수인들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맑음 대한민국 광화문 외무부 청사 앞은 동토처럼 그늘져 몹시도 추웠다. 유리로 덮인 구름다리 위에 외무부 공무원들이 슬그머니 문틀 뒤에 숨어 우리의 행동을 살피며 오간다. 박근혜 정부 들어 모든 부서가 휘둘려 다들 악한 일에 자발적인 부역자로 생존을 보장받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녔다고들 변명한다. 2016-12-3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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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세 살짜리 할아버지’ 아침 식탁에서 시우에게 바게트를 잘라주는 보스코를 작은손주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하부이, 손 베요.”란다. 내가 봐도 딱딱하게 덜 녹은 빵조각을 칼로 베는 솜씨가 불안하기만 한데 다섯 살짜리 눈에도 그리 보였나 보다. 보스코는 자칫 손가락을 입에 문다. 내게 들키면 멀리서라도 “여보, 손가락 좀 빼요. 어린애에요?”라는 잔소릴 거듭했더니만 작은놈이 슬쩍 눈웃음을 지면서 “에이~, 세 살짜리 할아버지”란다. 저렇게 놀림을 받아도 손주가 귀엽기만 하다. 2016-12-2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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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할머니 그거 알아요, 산타는 없는 거?” 아침에 일어나 성탄나무 밑에 놓인 선물을 챙기는 시아와 시우! 어제 내 놓은 ‘고수레’ 과자를 산타할아버지가 잡숫고 캔커피를 마시고 가셨나보다 일러주니까 부지런히 포장지를 벗기던 두 꼬마, 선물이 썩 흡족하지 않았던지 나를 올려다보며 "할머니 그런데 그거 알아요? 사실 산타는 없는 거?”라는 시아. “아빠가 열 살에 내 질문에 사실을 말해주셨어요.” 그 말에 자기도 이젠 알만한 건 다 안다는 듯 시우가 거든다. "함무이, 4학년 안나엘한테 들었어요. 걔가 크리스마스트리 있는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산타 대신 자기 아빠가 찍혔대요. 학교에서 얘기해 주었어요." 2016-12-2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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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 ‘함무이!’ ‘하부이!’ 2016년 12월 22일 목요일, 비바람테라스 화분걸이 난간에 내놓은 플라스틱 김치통(우린 ‘측우기’라고 부른다)에 고인 물을 재보니 지난 밤에 60밀리는 족히 비가 내렸다. 이 비가 눈이 되면 훨씬 낭만적이겠지만 손주 맞으러 가는 길에 마음만 바빠 자동차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낭패이리라.성탄 9일기도에 들어간 아침기도에서 ‘즈가리야 ... 2016-12-2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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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밀차를 타고 가지만 대통령전용기에서 내리는 위엄 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맑음‘유무상통’의 새벽미사에 나오는 어르신들이 생각처럼 많지 않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시 눈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서다. 한밤중에 복도를 지나면 밤새 TV를 켜둔 방들이 많다. 본인들이 가는귀가 먹어 이웃방에 소음이 들리리라는 생각도, (아파트촌의 ‘층간소음’ 아닌) 양로원의 ‘방간소음’으로 ... 2016-12-2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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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고도리를 치려해도 셋은 필요해서 삼위로 계시는 하느님 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맑음20일 간의 서울 나들이에 집에 남겨질 생물들이 맘을 바쁘게 한다. 눈을 뜨자마자 겨울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꽃들에게 동거인으로서 책임을 다한다. 물을 듬뿍 주고 햇볕 쪽으로 고개를 길게 내밀었던 가느다란 가지들은 방향을 돌려 몸을 바로 세우게 했다. 그러고도 놓고 가는 게 안타까워 생물이 사람의 발목을... 2016-12-1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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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맑음아침부터 보스코가 3층에 올라가 봉재 언니가 새로 짓는 집에 쓸 만한, 우리는 안 쓰는 전등들을 찾아 들고 내려왔다. 코너에 다는 센서등이 몇 개 되는데 보기에도 낡아 보여 남도 못주고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들이다. 기다란 새 등도 하나 챙겼다. 언니는 무엇이든 끝까지 귀하게 쓴다. 언니네 집에 가면 남... 2016-12-1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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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집안에서 간간이 숨바꼭질 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흐림해가 지고 달이 올라 밤늦게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텃밭으로 내려가는 데도 손전등이 필요 없다. 내일이 보름이라니 저 달이 한껏 부풀겠다. 저 달이 차츰 줄어 침침한 밤이 온다 해도 그때쯤엔 빵기네식구가 모두 온다니 하나도 어둡지 않다. 시아와 시우, 생각만 해도 우리 두 사람 맘에는 보름달, 아니 해님이 ... 2016-12-1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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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내 공덕비를 세워다오…’ 2016년 12월 11일 일요일, 맑음‘대충씨’가 긴 여행에 피곤했던지 공소예절이 끝나는 시간에 도착했다. 뭔가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선지 공지사항이 끝나자 손을 들고 일어선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 재작년 노환으로 한국에서 보낸 30여년 선교사생활을 접고 영구 귀국한 독일인 헤드빅 수녀님을 수녀님의 고향 양로원에서 뵙고 왔다는 얘... 2016-12-1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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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한평생 사랑해주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2016년 12월 8일 목요일, 맑음‘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라는 기다란 이름이 붙은 축일이다. 아침저녁 성무일도를 하다 보면 성모님 축일이 참 많다. 그 많은 축일의 의미를 모르는 개신교신자라면 우리를 가히 ‘마리아교’라 부를 만하다.어려서부터 성당 앞을 지날 적마다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마리아상을 보게 됐는... 2016-12-09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