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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기도하고 일하라!” 참 힘도 좋다. 우리는 11시에 방으로 들어왔고 새벽 미사에 갈 생각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는데 안신부님과 젊은이들 몇은 밤을 꼬박 새우고 놀았다. 얘기 소리, 웃는 소리, 박수소리에 나까지 잠을 잤는지 샜는지 머리가 띵하다. 나에게도 밤새우며 놀만큼 재미있던 젊은 날들이 틀림없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 2017-02-1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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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2017년 광화문의 정월대보름달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산속에 사니 얼마나 춥냐?” 그러나 지리산은 어머니 치마폭이다. 겨울이면 서울 보다 4~5도 따뜻하고 여름엔 그만큼 더 시원하다. 2000년 정월 우리 대모님 김상옥 수녀님이 휴천재를 찾아오셨는데 소녀 같으신 대모님이 뒷산 바위 밑 양지 풀섶에 소복하게 자라 오른 햇쑥을 보고 추위도 ... 2017-02-1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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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짧았던 사랑일수록 치열하게 다퉜거늘’ 졸업시즌이라 젊은 엄마를 겸하는 아우들이 대부분 못 와 넷이서 단출한 느티나무독서회 모임을 가졌다. 오늘 읽은 책은 마음산책에서 나온 이기호작가의 콩트로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다」라는 책. 처음엔 책이 너무 가볍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작가의 책을 읽었던 회원들이 작가의 진솔한 삶의 자세가 좋다 ... 2017-02-1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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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지옥?’ ‘도저히 스스로 용서 못하는 뜨거운 자책’ 서울에서 보통 일기를 쓰고 나면 밤 1시. 그 시각이라도 아래층 엽이가 돌아오면 빠른 거고 3시가 넘어서 돌아오거나 밤을 꼬박 지새고서 귀가할 때도 있다. 늘 눈이 반쯤 감겨 피곤한지 휘청거린다. 얼마 전 걔 엄마가 하던 말. 모처럼 고향에 내려온 엽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엄마, 참 평화롭고 좋다. 나 시골로 내려와 살까?”하더란다. 그런데 아들의 그 한 마디에 엄마로서 비명처럼 “안 돼!”라고 했단다. 2017-02-0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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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꽃 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어제 밤에 주무신 손님이 새벽바람에 떠나버리고 빈 방엔 뎅그러니 베개 둘만 간밤 손님을 기억하고 있다. 2년 전 보스코가 안동으로 강연을 하러 갔을 때였다. 호텔에서 잘지 고택이 좋을지 선택하라는 주최측의 연락이 왔기에 나는 서양식 고택을 생각하고 그쪽을 택했다. 그러나 내 상상이 별로 신통... 2017-02-0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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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비둘기아저씨’에서 ‘펭귄아저씨’로 아침 일찍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손과장이 새로 찾은 일터로 갔다(어제 간 곳에서는 내 차의 부품을 못 찾았대서). 가 보니 유부장이 30년 된 카센터를 인수해서 일을 시작한 곳이었다. 손과장에게 자동차 수리를 처음부터 가르쳤던 인연으로, 먼저 카센터 주인이 바뀌자 자기가 시작한 일터로 손과장을 부른 것이다... 2017-02-0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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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하늘나라 가셔서 네 아들을 키우신 어머님 2017년 1월 31일 화요일, 맑음, 보스코의 영명 축일이다. 오늘 복음서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자 얘기가 나온다.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지긋지긋하고 괴로웠을까? ‘저 분이라면 저분 옷자락에 손만 대도 나을 것 같다’는 간절함이 절절히 마음에 와 닿는다. 그 간절한 믿음이 그녀를 살렸다. 2017-02-0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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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그 집에 일 년에 한 번 불을 켠다” 2017년 1월 29일 일요일, 눈눈이 내린다. 뒷산 언덕에 하얀 목련이 마구마구 피어났다 속절없이 진다. 그해 봄 원자력병원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봉수엄니는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반짝이던 눈은 더 빛났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이승의 아름다움을 모두 빨아들일 듯 지영이와 큰딸 그리고 나와 함께 언덕에 올라서서 우리 집에 양껏 피어난... 2017-01-3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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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앞집 처마 고드름이 어느새 녹듯 우리 삶도 방울져 녹아내리는데 마지막 떠나기 전날 남편의 귀에 대고 그동안 미안했던 일, 사랑했던 일, 고마웠던 일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더니, 의사 말대로는 뇌세포가 다 죽었다던 사람이 씨익 웃더란다. 2017-01-2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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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나 졸지에 과부 됐잖아, 과부는 성경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지리산 속에 있는 동네중 우리 문정마을은 ‘서울 압구정동’이라 불린다. 유림에서 마천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곳처럼 완만한 비탈에 널따란 골짜기가 없어 산동네답지 않게 예부터 문정리(文正里)라는 점잖은 이름까지 붙어 있다. 함양읍에서 30분마다,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군내버스가 지나다니는 교통의 요지다. 2017-01-25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