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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오늘 12일이 무슨 날이죠?” “2, 7 장날이요!” ‘골롬반선교봉사회’에서 제주공항까지는 미처 3Km가 안 된다. 어제 저녁 8시까지 렌터카를 돌려주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아침에 공항에 나가는 일도 걱정을 했는데 아침 6시 45분에 원장 황 신부님이 먼저 일어나 기다리시다가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주셨다. 무릎 수술로 힘든 중에도 타인을 살피는 수도자로서,... 2017-03-1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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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당신, 언제부터 이렇게 의식화됐어?” 아침에 내 일기를 읽어보던 보스코가 뜬금없이 묻는다. “당신, 언제부터 이렇게 의식화됐어?” 그러면서, 지리산 산골에 사는 육십 대 후반, 농사꾼 아줌마 어투가 아니란다. “좋은 남편 만나서 그리 되었죠” 라고 하면서도 나도 내가 그리된 게 언제부터인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2017-03-1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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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봄눈, 너무 늦게 온 사랑’ 아직 보내기엔 준비가 덜 된 미련이, 밤새 하얀 눈이 되어 미처 피지 못한 동백 꽃송이 위에 쌓이는 아침. 동백이 무슨 죄냐, 때가 되어 몽우리 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인데! 추위야, 이별이 미처 정리되지 못했다지만 새순이 났다고 눈 흘기고 꺾어서 무엇하랴! 곧 녹아버릴 일이기에 봄눈이 내린 뜨락과 앞산 기슭이 서글프다. ‘봄눈’은 공원의 나무의자 한쪽 끝에 한 송이 붉은 장미를 들고 ‘너무 늦게 온 사랑’을 애틋하게 기다리는 노신사. 2017-03-0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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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먹는 게 남는 거’라면 ‘내가 쓴 것만 내 재산’ 이젠 7시 30분 미사 시간에도 세상이 훤하다. 먼 산의 눈도 골짜기나 나무 밑에만 실낱만큼 남아 지나간 계절이 겨울이었음을 말해주고, 냇가의 실버들 가지가 연두로 달아올라 지금은 봄이라고 일러준다. 도랑가 차돌을 들추면 겨울잠이 덜 깬 개구리가 부시시 고개를 든다. 2017-03-0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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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예수가 답이다!” “그런데, 문제가 뭐였지?” 어젯밤 10mm 정도의 비가 왔다. 밤에 비가 온다고 미리서 동네 아짐들이 모두 나서서 퇴비를 밭에 뿌리고, 괭이로 흙과 고루 섞어 고추대로 평평하게 다듬어 검은 비닐을 덮었다. 흙이 물을 머금고 비닐을 덮은데 해가 비치면 퇴비는 그 속에서 잘 삭아 채소의 맛난 밥이 된단다. 우선 심을 것은 감자다. 감자를 눈이 있는 쪽으로 잘라내 그 상처에 재를 묻혀 소독해주고 5cm 깊이로 심는다. ‘하지감자’니까 6월 말에 수확을 하면 8월말에는 김장배추와 무를 심어야 하니까 두어 달 놀려두고 땅을 쉬게 한다. 2017-03-0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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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기로 잠깐, 엄마의 엄마로 잠깐’ 와이파이가 안 되서 애를 먹다 새벽 3시 30분에 스캔을 해서 일기를 겨우 보스코의 이메일에 보내고 눈을 붙였다가 7시쯤에 눈을 떴다. 9시 미사를 드리고 미리내 유무상통에 엄마를 보러가야 해서 일정이 빡빡하다. 2017-02-2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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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상관없어! 쫄지 마!” 우리 둘은 자주 유튜브에서 단편 만화영화를 본다. 로맨틱한 만화, 자연세계를 의인화한 만화, 좀 멍청하여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는 코믹을 좋아하지만 스타워즈 식의 싸움질만 하는 공상 만화는 별로다. 아침밥을 먹으며 평소와 달리, 만화를 보며 먹었다. 그런 때 보스코는 시아나 시우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구경에 빠지면 입에 문 음식을 넘기지도 못한다. 그의 중고시절 살레시오 신부님들 손에 크면서 상무대 미군부대에서 빌려온 ‘월트 디즈니’ 만화를 제법 많이 봤는데 그때는 아주 행복했단다. 2017-02-2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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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카이로스 2017을 놓치면 우리는 망한다! 겨우내 지리산에 눈다운 눈 한번 안 내렸고, 비라도 온다던 날조차 서너 방울 빗물을 겨우 찍어 바른 하늘을 본 게 전부다. 내 이런 불만을 알았던지 오늘 새벽엔 회기바람으로 창문을 뒤흔들더니 ‘우수’의 빗소리에 이불은 끌어 올리고 마음은 쓸어내리며 새벽잠에 빠졌다. 2017-02-2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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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올해도 열매가 시원찮으면 모조리 잘라 버릴 테니 그리 알아!” 아침 햇살이 산 너머로부터 퍼져 오르면 왕산은 화관을 쓴 멋진 왕자님이 된다. 저 산은 밋밋해서 참 무뚝뚝해 보인다. 아침 일찍 한술 뜨고 밥상을 싹 치우고 빈상을 내미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밋밋한 형상에 데면데면하다 그 상 가득 햇살이 담기면 나도 모르게 입이 절로 벌어진다. 너무 좋아서다. 안 ... 2017-02-2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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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살아남은 생명은 아름답다!’ 2017년 2월 15일 수요일, 맑음, 세상이 하도 어수선 하니 손에 일도 잡히지 않고 마음도 떠 있다. 내 속이라도 아는지 작년 같으면 한참 싹을 올렸을 겨울초(유채)와 시금치, 꽃풀로는 수레국화와 들양귀비도 ‘싹수가 없다’! 어쩌다 명이긴 씨앗들은 힘들게 싹을 틔우긴 했지만 춘궁기의 극성맞은 물까치떼에 떡잎 하나도 안 남아난다. 곡식 낟... 2017-02-17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