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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초값이 500원이어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결론은 ‘잊지 않으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어도 누가 그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는 알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4·3사건도 그 일을 잊지 않고 끝까지 파헤친다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광주 5·18을 일으키고도 저런 망언을 하는 전두환을 주저앉힐 수가 있겠다. 2017-04-0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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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한 여자를 구속시키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맘편해하다니… 아직 잠이 덜 깬 봄 아가들은 봄비가 도닥여서 잠을 깨운다. 겨울 내내 한두 번 마당에 보일 듯 말듯 눈이 내렸고 오후가 되기도 전에 자취 없이 사라졌다. 워낙 가물어 나무고 풀이고 꽃이고 몸을 비틀며 시들어가고, 튤립도 꽃대를 쭉 올리지 못하고 옹색하게 꽃자리를 찾고 있다. 물기가 없으면 피어난 꽃도 며칠을 못 넘기고 고개를 묻곤 하는데, 오늘 드디어 봄비가 내렸다. 산수유 꽃잎 그 가녀린 꽃술 끝마다 예쁜 수정방울을 달고 한참을 흔든다. 2017-04-0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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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김복동 길원옥은 평화다” 보스코는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펠라기우스 논쟁 첫 권에 해제를 쓰는데 참고할 책이란다. 성신교정 도서관 검색에 들어가 보니 저·역자 ‘성염’의 이름으로 된 책 130여 권 나오고 그가 쓴 글 제목까지 하면 또 150여 편 다운되는 것으로 그의 그늘에서 평생 내가 잘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외출을 할라치면 그는 무슨 옷을 입을지, 무슨 신을 신을지, 그리고 나 없는 점심엔 무엇을 먹을지 실생활에 관한 한 한참 난감한 사람이기도 하다. 2017-03-3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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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저게 안개냐? 황사냐? 미세먼지냐? 이 셋 다 아니고 초미세먼지란다. 옛날 같으면 맑은 날과 흐린 날, 안개 낀 날, 비오는 날 정도로 나누고 외출을 하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건만 요즘은 집 밖으로 나가려면 여러 번 생각을 하고 때로는 외계인 같은 흉물스런 차림으로 눈만 내놓고 다니는 모습을 해야 한다. 숨은 꼭 쉬어야 사는데 어른들이야 중금속이 몸에 쌓이고 쌓여도 살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아이들은 어찌 한담? 2017-03-2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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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예배당 찬송가와 성당 성가는 왜 그리도 분위기가 다른지! 어제 토요미사에서 성가를 목청껏 부르던 아들 덕분에 인사를 많이 받았다. ‘목소리가 좋다’느니, ‘정신이 번쩍 났다’느니 하여 목소리가 엄청 크다는 말로 들린다. 개신교에서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던 환경(찬송가를 시작하면 끝 절까지 다 부른다)에서 가톨릭으로 건너오니 죄다 성가를 부르기 싫어 죽겠다... 2017-03-2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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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가난한 사제를 보는 신자들의 눈은 얼마나 존경이 어리는지… 나마저 간밤에 잠을 들 수 없었으니 그들의 부모와 가족의 절절한 기도는 미루어 알 만하다. 2시에, 혹시 세월호를 묶은 줄이 끓어지지는 않았을까 일어나 확인을 하고, 3시 50분에 다시 일어나 세월호의 일부가 보인다는 속보를 보고야 안도의 깊은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많은 친구들이 전화를 해서 서로 감격의 기쁨을 나눴다. 우리가 TV를 거의 안 보는 걸 잘 아는 소담정 도메니카는 혹시 내가 모르고 있을까봐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며 전화를 해서 울먹였다. 2017-03-2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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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문정마을 ‘전설따라 삼천리’ 어젯밤 비 온 끝이라 웬만하면 하늘이 맑을 텐데 중국에서 오는, 도움이 안 되는 미세먼지가, 사드 보복과 풀 세트를 이루어 우리를 괴롭힌다. 지리산에서도 맑은 하늘 보기가 일 년 내내 어렵다. 이탈리아도 사하라사막에서 날아오는 먼지가 그곳 토질을 개선하듯, 중국의 먼지가 우리 토양을 개선해왔다는데... 2017-03-2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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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음정 모닥불 위로 별들이 쏟아지고… 지난번 꼬마 손주들의 서울 방문 때 모니터를 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두 손주들을 향해 간절히 동의를 구했다. “얘들아 이 사진 좀 봐. 이 아줌마 정말 예쁘지?” 애들은 대답이 없을 뿐더러 쳐다보지도 않았다. 두 애는 지들 엄마 아빠의 결혼 앨범을 보고 있었고 작은 놈 시우는 사진 속에 자기 모습을 찾으며 왜 자기가 빠졌나 투덜거렸고, 큰 놈은 뭘 좀 안다는 어투로 “생각 좀 해봐라 거기 어떻게 니가 있겠니?” 2017-03-2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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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여자는 아플 새도 없고 엄마는 아프다는 말도 못 꺼내는… 날이 너무 가물어 겨우내 땅을 움켜쥐고 살아남은 바랭이까지 슬쩍만 당겨도 흙을 툭 놓아버린다(뿌리를 놓는다는 것은 식물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마다 퍽~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퍼지니 안경 유리가 뿌옇고 입안은 지금지금하다. 그 먼지가 안경에만 끼겠는가? 눈까지 빽뻑해져 문지르다 보니 뭐하나 시원하게 보이질 않는다. 2017-03-1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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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근혜없는 봄’은 왔는데… 3년 전이었던가? 수술을 하고 서울집에서 지리산으로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안타까운 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을 때였다. 지리산에서 누군가 생각지도 못한 택배상자를 보내왔다. 휴천재 이웃의 인규씨였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봄은 다 가고, 그러다 봄나물 하나 먹어 보지도 못하고 여름을 맞겠구나 싶어 보냈단다. 옻나무순, 취나물, 쑥, 엄나무순. 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어떻게 이런 자상한 생각을 했담?! 산골의 봄내음이 가득한 산나물은 그 자체가 나를 끌어당기는 자석인양 당장 뛰어 내려가고 싶었다. 그중에도 엄나무순이 제일 향기롭고 맛났다. 2017-03-15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