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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기사도(騎士道)는 없어도 숙녀도(淑女道)는 차고 넘치는 동네 거의 달포 간 서울 살이로 소홀했던 텃밭이 잡초로 몸살을 하고 있다. 겨울을 나면서 대부분 여름살이 풀들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하는 처지로, 작은 텃밭이지만 잡초들의 정치구조는 인간들보다 훨씬 더 계획적이고 합리적이다. 각자가 등장할 시기와 사라질 시기를 거의 정확히 알기에 지체 없이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풀마다 안다. 2017-04-2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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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노랑 송화가루가 뽀얗게 내려앉는 계절 지리산 휴천재 양옆으론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이 검푸르다. 태고의 숲은 아니지만 우리는 언제나 저 솔밭이 그곳을 지켰으리라 생각했다. 우리 이웃에 살다 작년에 앞산으로 잠자리를 옮겨 누운 부면장님이 살아생전 말했다. 2017-04-2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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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하느님은 고통과 은혜를 1+1 상품으로 묶어 파신단다 작년 ‘삼각산 시화제’(진달래꽃제)를 올리던 날 ‘우리시’ 행사에 처음으로 홍해리 시인이 빠졌다. 수십 년간 그 행사를 주관하고 사회하는 분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일제히 ‘부인에게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을 했다. 시인이 아내의 치매를 그려내며 우리 모두가 이미 겪고 있거나 겪을 치매를 두고 ‘치매행(致梅幸)’이란 시와 시집으로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 가는 중이다. 2017-04-2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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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이 환장할 봄날에’ 남진수녀가 저녁 미사 전에 예천에 도착해야 한다며 아침을 먹자 떠난단다. 수도자들이 자신의 일에 매여 스스로 선택한 순명을 보노라면 가정생활을 느슨하게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존경스럽다. 무서운 시어머니 밑에서 눈치를 보며 쫓기듯, 누구에겐가 순종하는 삶은 ‘자발적 순종’에 이르기까지 긴 세 2017-04-2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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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얏호! 내 차도 드뎌 박혔다!” 작은손주 시우가 넘어져 안경알이 심하게 긁혔단다. 제네바에서 안경점에 가니 상상 이상의 돈을 달란다며 EMS로 보내왔다. 비싼 송료에 고쳐서 다시 보내도 그곳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 덕성여대 구내안경점 아저씨는 시우 안경 한쪽은 괜찮으니 긁힌 쪽만 바꾸라면서 고쳐서 지리산으로 보내 주마고 했다. 2017-04-1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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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부활절인 오늘부터라도 머리에 재를 써야 할 우리 민족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꼭 3년! 저 2014년 4월 16일 하루 종일, 아니 몇날 며칠, 근 한 달을 소란만 떨더니 대통령선거부정이 덮였다 싶었던지 박근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못하게 하였다! 이번에 세월호를 보니 저 집단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2017-04-1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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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벌써 꽃비가 내리는 절기라니… 날씨가 맑은데도 눈은 뿌옇다. 손으로 눈을 비빌수록 더 안 보여 예전에 눈 수술을 한 곳, 서울시립동부병원엘 갔다. 김경일 원장님이 계실 때는 내 집 같았는데 누군가가 그곳에 없다는 사실 만으로 사람들의 친근감은 전혀 달라진다. 김 선생님이야 봄이 되어 물오른 가지처럼 고향에서 나무 심는 일에 신이 날 테니까 허전한 건 나 하나의 기분이리라. 2017-04-1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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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큰아들이 엄빠에게 주는 감사장 모처럼 하늘도 맑고 날씨도 따사로워 테라스에서 뒷산 벚꽃놀이를 했다. 집 옆에 화사하게 피어난 저 벚꽃은 40년 전 내 손으로 심은 나무다. 그곳에 샛길이 있어 마을 아줌마들이 회초로만한 나무를 길가로 죽 심었는데 제법 자란 나무들을 서광연립이 들어서면서 다 베어버리고 딱 한 그루가 남아 지나간 세월을 ... 2017-04-1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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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4·19를 망치고 10·26을 망치고 6·29를 망쳤는데… 오늘은 ‘성지주일(聖枝主日)’이어서 어린이 미사 대신 교중미사에 갔다. 내가 기억하기로 성지주일 전례는 성당 밖에서 시작하여 종려나무 가지를 축성하여 나누고, 앞장서서 들어가는 사제를 뒤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며 ‘호산나!’ ‘호산나!’를 부르는데 오늘은 성당 아래층에서 나눠주는 성지가지를 들고 들어가 좌석에 앉아 기다리니까 성당 뒤쪽(출입구)에서 성지가지를 축성하신 선부님이 성당 안을 돌며 우리가 들고 있는 나무가지에 성수를 뿌려주셨다. 세대가 바뀌며 전례도 바뀌니까… 2017-04-1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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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인간이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 후진을 하던 아저씨에게 그만 서라고 했지만 못 들었는지 계속 언덕 아래로 내려온다. 차체를 탕탕 쳤더니 창문을 열고 왜 남의 차를 두드리냐고 화를 낸다. 택배 물건을 들고 얼마나 찾아 헤맸던지 내리는 비에 택배기사는 머리는 물론이고 온몸이 후줄근 젖어 있다. “화가 많이 나셨군요. 비는 쏟아지고” 2017-04-07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