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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엄마의 전성시대’ 비 온 뒤에 해가 나니 그 습도에다 염열! 마치 찜기 위에 올려진, 갓 따온 옥수수 신세다. 사방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 할 수가 없다. 갱년기가 끝난 지가 언제인데도 왜 땀은 안 멈출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55세를 전후하여 갱년기 현상에 많이 고생했다. 추운 겨울밤에 창문을 열어놓... 2017-07-1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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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어느 ‘농아사제’의 23년만의 서품 사람이 살지 않아도 먼지는 내려앉는다. 집안 대청소. 우리 집 4대 집사 박 총각이 집을 비운지 벌써 20여 일. 장마로 웃자란 마당의 풀을 뽑으면서 내가 모기떼의 엄청난 공격을 당하는데 집사는 강원도 어느 시골을 찾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고 주민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 상연함으로써 각박한 삶의 질곡으로부터 진정한 공동체, 삶의 참 모습을 끌어내도록 돕는 ‘문화 운동’을 하고 있단다. 2017-07-1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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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장독대 앞에도 정화수를 떠놓고 빌던 할메들의 정성 엊그제 남해 언니가 농사를 짓는 일이 첨엔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들고, 꼭 먹을 것도 아닌데 욕심을 부렸다는 생각을 했지만, 형부가 말려도 멈추질 않았단다. 그러나 큰딸이 나무라자 자식 말은 듣게 되었는데, 농사에서 손을 놓고 나니 시간도 많이 나 할일도 더 하고 책도 읽고 힘도 안 들어 너무 좋단다. 2017-07-1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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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죽은 이들의 마을’을 순례하던 시칠리아의 밤 서울 온 길에 함 신부님께 들러 미사를 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말씀을 같이 읽고 자기소개와 말씀 나누기를 하다 보면 각자의 현재 상황과 때론 어려움도 듣게 된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 보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끝이 안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막막하고 어려웠던 강을 어느 새 건너가 있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황천을 건너 모든 번뇌를 내려놓은 이들의 얘기도 어제 일처럼 나온다. 특히 삶과 죽음을 두고는 하느님께서 우리 생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다루신다. 2017-07-1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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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교회사업에도 절제와 가난, 고결함이 필요하다” 다시는 전화를 하지 않으려니 했다. 우리의 성향과 정체성을 잘 알고 있고 특히 보스코의 ‘강성좌파’ 이미지를 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 그도 모를 리가 없을 게다. 시청 앞 태극기 집회 연단에 올라 ‘박근혜 불쌍하다’며 청와대를 향해 큰 절을 하는 모습을 TV 화면으로 봐야 했다. 월남전 참전 용사라더니 전쟁의 참사를 거쳐 마음 한 구석이 단단히 상처 입었나보다 했다. 2017-07-0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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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신구교 ‘구원독점’ 너스레는 봉이 김선달 대동강물 팔아먹기 쏟아지는 오후의 빗소리에, 그동안 쌓였던 피곤에, 물에 젖은 솜 같이 잠 속으로 가라앉아 깨어날 줄 모른다. 두어 시간 자고 또 잤다. 낮잠 자기를 언제 했나 기억도 없는데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2017-07-0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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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망초가 땅을 차지하면 나라가 망한다는데 엄마를 돌봐주는 아줌마가 6시쯤 방문을 두드린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먹으러 가자는 신호다. 엄마는 귀찮은지 돌아누워 두 눈을 꾹 감는다. “엄마, 아줌마 화나서 가버린다” 엄마가 나를 돌아보더니 눈을 흘긴다. ‘도움이 안 돼. 잠 좀 자자는데 딸년도 별 소용이 없어’ 하는 긴대답을 응축한 그 눈길 앞에 ‘참 세월이 허망하구나, 사람을 저렇게 망가뜨리다니…’ 2017-06-3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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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이젠 누구한테나 ‘왜 저러나?’ 아닌 ‘아, 저렇구나!’ 하는 시선을 보내면서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사람 각자가 하나의 우주라는데… 나사(NASA)에서 그 많은 석박사가 작은 별 하나를 탐사하려 해도 얼마나 힘들고 복잡한가! 그런데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먼지가루만도 못한 인간이 그 많은 별들을 머리에 품고 사유할 수 있는 소우주라니… 인간을 사귀면 사귈수... 2017-06-2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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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선한 시민들의 소름끼치는 침묵’ 폭염주의보를 지나 폭염경보까지 핸폰의 창을 두드리는 날에도 새벽미사를 가는 아침 공기는 청량하다. 한껏 가슴을 펴고 입을 벌려 그 기운을 빨아들이면 하루를 버틸 힘이 몸 안에 가득 찬다. ‘성체성혈대축일’. 장신부님은 세례를 받은 사람이란 ‘영원을 꿈꾸는 사람’이라 했다. 사람들이 어려서 먹는 음식은 성장하게 하고 나이들어 먹는 음식은 사람을 죽게도 하지만, 신앙인들이 먹는 음식은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게 하는 음식이란다. 2017-06-1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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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가슴을 석 삼번 치는 거 그건 왜 하는지’ “여보! 이것 좀 봐” 보스코의 이마에는 불룩불룩 세 개의 동산이 생겨났다. 어제 열심히 감자 캐느라 방심한 사이 깔따구(각다귀)가 물었다. 나도 엊그제 쪽파 뿌리를 캐는 사이 종아리와 귓바퀴를 물려 사흘간 부어올라 고생하다가 오늘에야 좀 나아졌다. 깔따구가 물면 가운데가 구멍이 나고 몹시 가렵고 한참이나 부어올라 시골에 살며 농사짓다 제일 괴로운 일중에 하나다. 2017-06-16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