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천재일기]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사람이 된다” 2017년 9월 11일 월요일, 비오다 맑음, 산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구름이 끼나, 변함없이 아름답다. 예쁜 여자는 어떤 의상을 해도, 심지어 누더기를 걸쳐도 아름답듯이… 전나무 숲에서 숨바꼭질 하던 물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오르다 바람이 일자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새 더 많은 친구를 끌고 와서 장난을 친다. 2017-09-13 전순란
-
[휴천재일기] ‘도움이신 마리아, 우리 시엄니!’ 2017년 9월 10일 일요일, 하루 종일 비, 밤새 내린 비에 산도 나무도 지붕들도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있다. 사람들이 테라스의 제라늄이나 가을꽃이 지러 떨어질까 꽃들에게 정성스럽게 우산을 씌워준다. 9시에 미사가 있어 나선다. 우리 집 옆으로 한두 집 건너면 교회 공동묘지고, 공동묘지 벽은 곧 성당 외벽이다. 2017-09-11 전순란
-
[휴천재일기] “신학교 가려면 신부 돼서 가난한 사람들 편들겠다고 약속하려므나!” 2017년 9월 7일, 목요일, 사드문제로 고생해온 성주 주민들, 그리고 함께 도왔던 단체들이 얼마나 허탈하고 속상할까, 멀리 있는 나도 이렇게 절망스러운데? 이 주민들의 절망을 잘 알고 있을 문대통령은 어떤 심정일까? 사랑하기에 이해할 수밖에 없다지만, 자신의 진실을 공공연히 설명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면 얼마나 힘들까? 오늘 종일 마음이 무겁다. 2017-09-08 전순란
-
[휴천재일기] 주일미사는 하느님의 사양산업 하루 새에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하루 새에 날씨가 바뀔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있다. 팔래 디 산마르티노(Pale di San Martino) 주봉과 멀리 카테나 디 펠트레(Catena di Feltre) 상봉이 하룻밤 새에 눈을 이고 있어 아연해졌다. 2017-09-06 전순란
-
[휴천재일기] 우리가 죽은 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게 기도 말고 과연 무엇이던가? 2017년 9월 1일 금요일, 흐리고 비, 작은아들이 잡아준 호텔은 알프스 산길을 내려와 트렌토와 가르다로 나뉘는 삼거리에 교통이 아주 편한 곳에 있었다. 밤새 산언덕을 오르내리는 차량 소리에 마치 길가에 텐트를 치고 잔 셈이다. 2017-09-04 전순란
-
[휴천재일기] ‘부활을 약속받은 이들에게 모든 떠남은 영원을 향한 한 걸음’ 2017년 8월 31일 목요일, 맑음, 세 식구 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가방을 싸고, 쓰레기를 버리고, ‘떠날 모드’로 올인. 보스코나 빵고는 수도생활로 다듬어져 자기 주변 정리는 완벽하다. 8시 45분 미사에서 주임신부님은 고별사 강론을 하면서 정작 떠나려니까 지나간 12년의 추억으로 울먹이신다. 2017-09-01 전순란
-
[휴천재일기]‘사랑받는 지혜’, 인류가 하느님께 십분 발휘해온… 2017년 8월 27일 일요일, 맑음, 냉장고에 남아있던 물건을 아직 남은 날들과 맞춰보고서 제네바로 돌아가는 ‘며느라기’에게 싹 싸 보냈다. 과연 몇 끼니를 더 먹고 여기를 떠날까? 우리가 영원히 지상을 떠날 즈음엔 냉장고 속만 아니고 내 가졌던 모든 것, 특히 낡고 볼품없는 이 육체까지 놓고 가야 할 텐데… 2017-08-30 전순란
-
[휴천재일기] ‘전쟁의 기억이 평화로 끌어가기를!’ 2017년 8월 26일 토요일, 맑음, 이탈리아에서는 어느 시골 마을을 가더라도 반드시 ‘전몰용사비(戰歿勇士碑)’가 있고 무명용사를 기리는 묘비가 따로 있다. 이 작은 마을 관자테에도 가족마다 자기 집안에서 1,2차 세계대전에서 전장에 나가 싸우다 죽은 사람을 추모하여 자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치프러스로 기념식수를 한 것이 60여 년 자라있다. 2017-08-28 전순란
-
[휴천재일기] “내가 하느님을 만나니까 뭐라고 하셨는데 기억이 안 난단 말이에요”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맑음, 어제 12시가 다 되서 잠든 꼬마들이 7시에 창문 너머로 들리는 성당종소리에 베개로 머리를 덮고 매트위에 뒹굴며 “할머니 미치겠어요. 저렇게 일어나라고 두드려 대면 사람들이 화 안내요?” 나도 시끄럽긴 했지만 별로 그런 생각은 안했는데… 2017-08-21 전순란
-
[휴천재일기] 조선땅 명당자리는 절이 차지하고 이탈리아 명당자리는 성당이 차지하고 2017년 8월 16일 수요일, 맑음, 어젯밤 늦게까지 성모님을 모시고 마을 나들이를 하고서 피곤할 텐데도 할머니들 대부분이 아침 미사에 나오셨다. 우리가 살며 숨을 쉬어야 하듯 저분들에게는 미사도 삶과 밀착된 한 부분으로 아침 먹기 전 으레 또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2017-08-18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