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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그런데 다스는 누구 겁니까?’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맑은 가을하늘, 빵기가 제 키만 한 가방을 들고 서울에 왔다. 머리는 길어 꺼벙하고, 걔가 떠나온 곳은 지금 새벽녘이어서 시차로 눈은 반쯤 감겨 하품을 해대니 어미로서는 보기 딱해 가슴이 아팠다. 쟤는 무슨 팔자로 하루하루를 저토록 고달프게 살아야 하나? 2017-11-1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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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내일 아침 해가 떠도 눈을 뜨지 않기를…’ 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맑음, 새벽에서야 잠들었는데(일기 쓰느라) 오늘 할 일이 줄서 있어 아침 일찍 일어났다. 8시 반이 되자 퇴비 나르는 아저씨의 호출. 주문한 퇴비 110포를 싣고 왔는데 어디다 쌓아야 할지 묻는다. 작년에 날라 온 퇴비는 한쪽에 치우고 두 군데 나눠 쌓아 달라고 부탁했다. 2017-11-1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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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주께서 너에게 잘해주셨으니 고요로 돌아가라 내 영혼아!’ 2017년 11월 3일 금요일, 비오다 흐림, 3000일 동안 어떻게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썼는지 내가 돌아보아도 믿기지 않는다. 손님이 오는 날은 뒷정리를 하고나면 자정이 넘어서야 일기를 썼고, 뒷목이 뻣뻣해 눈을 번쩍 떠 보면 펜을 든 채 졸고 있었으며, 10분만 눈을 붙이고 쓰자며 소파에 쪼그리다 보면 자다 쓰다를 거듭하며 새벽 서너 시를 넘기기도 했다. 2017-11-0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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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울 엄마가 딱 한번 웃으실 때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맑음, ‘모든 성인들의 날’은 가톨릭에서는 대축일이다. 나처럼 개신교에서 온 신자에게는 교회에 무슨 성인이 그렇게 많은지 기억하기도 힘들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름이 명부에 오르지 않은 성인들을 모두 모아 한 상으로 제사를 올리는 셈이다. 2017-11-0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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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사랑받으므로 나는 존재한다’ 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맑음, 찬바람이 불어 은행나무 열매를 마구 떨군다. 대학시절 데이트할 때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파랗게 구워져 컵에 소복하게 담긴 은행알이 탐스러워 사보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컵인지 위로 볼록 솟은 컵이어서 야속하게도 담긴 은행알이 몇 알 안 됐다. 2017-11-0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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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가난한 동네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한 얘기들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맑음, 북청색 가을밤 하늘에 반달이 쓸쓸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약 없이 떠나가는 중년남자의 뒷모습 같다. 흐린 달빛에 빛바랜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시린 늦가을 밤을 맞고 있다. “영심아~” 부르면 “어이, 왜? 심심해? 그럼 올라와. 자 먹어 이건 벌써 물렀네.” 2017-10-3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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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들에게 뻗쳐보낸 탯줄을 확실하게 못 끊은 건 엄마 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맑음 // 나는 비바람에 흙먼지가 쌓인 미닫이 테라스 문틀을 물걸레로 닦고 보스코는 테라스 난간까지 올라와 손을 뻗고 발갛게 물든 담쟁이 잎과 줄기를 걷어낸다. 나 같으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고운 담쟁이 잎이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으면 했는데 그는 매정하게 정리를 해 버린다. 인동초도 난간에서 옆으로 흘금흘금 게걸음을 하는 줄기들은 놓아두고 앞으로 늘어지는 것들은 말끔히 이발해 주었다... 2017-10-2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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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땅도 집도 방도 살 주인은 따로 있다 2017년 10월 24일 화요일, 맑음 // 빵기가 외교부 직원과 10시에 미팅이 있다고 서두른다. 시아 시우가 읽을 책 20킬로짜리 두 박스를 덕성여대 구내우체국 우편물 취급자에게 맡기고, 빵기를 싣고서 수유역까지 달려갔다. 9시10분이니 광화문 외교부까지 겨우 시간에 도착하겠다... 2017-10-2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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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혈연을 타고 흐르는 폭력의 악순환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맑음, 사람은 용기가 부족할 때 자신을 포장 한다. 자신있고 자기에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자기 단점이나 실수를 겸허히 인정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정중하게 사과한다.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다. 2017-10-2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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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제주가 ‘잠들지 못하는 섬’인 까닭 2017년 10월 18일 수요일, 가랑비, 희정씨가 ‘정말 좋더라. 꼭 들러보라’고 추천한 서귀포 성산읍에 있다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엘 가려고 아침 일찍 서둘렀다. 그러나 주차장에 차 몇 대만 왔다가 떠나고 너무 한가해 입구를 보니 ‘매주 수요일은 휴일’이란다. 2017-10-20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