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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달걀 요리의 달인’이 차린 아침상 서현동 성당 마당에 눈이 쌓였다. 밤새 마당에서 잠들어 있던 내 차도 얇지만 포근하게 눈이불을 덮고 잠에 빠져있다. 본당주임 배신부님이 빗자루로 눈을 털어 소나타의 잠을 깨웠다. 도우미 아줌마가 아침에는 안 온다며 신부님이 아침상을 차려주셨다. 어젯밤 김신부님의 소개대로 ‘달걀요리의 달인’다운 밥... 2017-12-0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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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곰스크로 가는 기차’ 김영언니는 오랫동안 여성교회 담임목사를 했다. 향린교회에서 돌아가신 홍근수 목사님, 남북통일에 혼신을 다하신 분의 짝꿍인데 부부가 함께 오래 살면 닮기도 하련만 두 분은 닮은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나 조화롭게 살았다. 얼마 전 당신의 허스토리를 ‘시니어 스토리텔링’ 단편영화 만드는 팀에서... 2017-12-0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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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벌레 먹은 사과가 더 달듯이… 공소회장님이 출타 중이라 보스코가 미사 해설을 하고 적은 숫자의 교우들이지만 장 신부님과 함께하는 미사는 소중하다. 오늘이 대림절 첫 주여서 ‘기다림’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다. 대림(待臨)이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림’이지만 각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 뵐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기다림... 2017-12-0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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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휴천재 김장하는 날 내일은 날씨가 추워진다고, 배추 얼기 전에 어여 김장하라고, 새벽부터 우리 식당문을 기웃거리며 드물댁이 애가 탄다. 농사 잘 지어 놓았는데 무가 얼 텐데도 뽑지를 않아 어제는 자기가 직접 와서 뽑아다 놓았고, 무청은 우리 정자에 얌전히 널어놓았다. 나야 이번 주일에 다시 서울 갔다 와서 12월 초순에나 김장을 할까 했는데 아줌마 성화에 아침도 안 먹고 팔을 걷어붙였다. 2017-12-0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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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구원은 여인에게 먼저 오고 또한 여인으로부터 오리라’ 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흐리다 개임, 하늘은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낼 기세. 이제는 가능하면 물건을 손에 들지 않고 캐리어에 실어 끌어야 한다. 젊었을 적 우이동에서 버스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고 경동시장에 가서는 양손에 20kg씩을 들고도 끄떡없이 집으로 오던 때가 엊그젠데 ‘영자의 전성시대’도 어느새 페이지를 넘겼나보다. 2017-11-2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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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왜 하느님이 누구를 ‘엄마!’하고 불러보고 싶으셨는지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그 처음은 각자의 기억 속에 각별하다. 올해 처음 내리는 눈 같은 눈이다. 서울 오는 길에 흰 눈이 펄펄 버스 차창 앞에 내려앉아 창 안의 사람들을 기웃거린다. 어제 느지막이 버스표를 샀더니 맨 앞자리는 하나뿐이어서 보스코와 따로 앉았다. 좀처럼 드문 일이다. 2017-11-2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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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삼베처럼 거친 세월도 세월이라고 갑디다 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맑음, 내동댁 밭을 내려다보니 뭔가 휑하고 허전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 있던 ‘할머니집’이 없어졌다. 내동댁 친정엄니로 딸만 둘인 집에 손을 이어주겠다고 둘째부인으로 들어왔는데 할메도 딸랑 딸 하나(지금의 내동댁) 낳고는 손도 못 이어준 채 영감도 떠나버렸단다.그래도 100평 쯤 되는 땅 뙤기 하나와 단... 2017-11-2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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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한 손으로 물레질 하고 다른 손으로 실을 잣는’ 성서 양처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맑음, 새벽미사를 하러 공소에 내려가는데 정말 춥다. 밭에 뽑다 남긴 무와 배추 잎들이 꽁꽁 얼어 볼품없이 늘어져 있다. 이장댁은 ‘살짝 얼었다 녹았다 하면 무나 배추 둘 다 달아지지만, 까딱 잘못 해 완전히 얼어버리면 김장은 조진다. 제발 나 따라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2017-11-2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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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월급만큼만 하라구. 너네 회사일 너 혼자 다 하냐?”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맑음, 얼마 전 “공무원들이 월급은 엄청 받으며 일은 정말 안 한다.”는 기사를 읽기도 했고, “과도한 업무로 쓰러지는 공무원이 많으니 공무원을 충원해야 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시골에서 귀촌한 사람들이 체감하는 공무원들의 노동 강도는 농사일을 하는 귀농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낮다. 2017-11-1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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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도회지 처녀들은 S자로 걷고 시골 할메들은 C자로 걷고 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맑음, 아침 일찍은 날씨가 좀 차다. 그래도 우리집 언덕 위 떡갈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일은 너무 아름다워 그런 추위 정도는 견딜 만하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폐 깊숙이까지 꽂히는 햇살을 들이마신다. 2017-11-15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