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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어디 가세요?” “니가 그게 왜 궁금한데? 니가 내 마누라야?” 씨앗을 뿌려 놓고 명색이 농부가 10일이나 밭을 떠나 있었으니 농부라고 말하기엔 염치가 없다. 집옆에 논을 둔 구장님만 해도 하루에도 몇 번 씩 올라와 논을 둘러보며 두런두런 작물들과 속 얘기를 한다. ‘넌 우째 그리 넘어 갔노? 누가 밀드나?’ 장화 신고 들어가 바람에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며 힘... 2018-09-1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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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새 주임 신부님 ‘전임 덕’ 많이 보시겠다! 오신부님댁은 3층인데 올라가는 계단 문이 늘 열려 있어 숲속에 가득한 모기 중에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놈들은 층계 구석구석에 숨어들어 서성거리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면 은근히 친한 척 다가온다, ‘아저씨, 담배 한 대 있수?’ 하며. 2018-09-10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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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이 사람은 나 없인 살아도 죽은 목숨이에요…’ 아침미사를 끝내고 식사를 하며, 오늘 어디를 찾아갈까 의견을 구하니 아들네는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수녀님네는 김대건 성인이 중국에서 밀항하여 제주에서 걸었던 길을 돌아보라는 권유. 확실히 수녀님들이 신부님들보다 더 거룩하시다. 우리는 서귀포휴양림을 걷기로 했다. 너무 빨리 천국에 가면 곤란할 것 같아서…. 2018-09-0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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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창조주 하느님을 졸라서 천국땅 한 조각을 얻어왔다’는 이탈리아 사람들 어젯밤 우리 집사 자훈이가 친척 형을 데리고 왔다. 빗속에 키 큰 총각 하나가 어정쩡 들어왔는데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같이 자라고 컸다니 친형제와 다름없단다. 그런데 그 형이 군대에서 돌아와 대학 4학년이 다 지나고 졸업과 취업이 코앞의 일이 되자 직업전선으로 곧장 달려들기가 두려웠던가 보다. 2018-09-0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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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IT후진국’에서 손주들을 키우는 안도감 비가 쏟아지다 가끔 파아란 하늘이 빼꼼 내려다본다. 이런 날 제일 좋은 일은 ‘책 읽기’. 얼마 전 선물 받은, 문영석 교수님의 『교육혁명으로 미래를 열다』라는 ‘피로 사회에서 본 놀이신학의 지혜’가 담긴 책을 오늘 펴서 읽었다. 2018-09-0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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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지옥이란 다름 아닌 자기후회, 영원히 용서할 수 없는 자기 후회란다 늦은 밤부터 조용히 비가 내린다. 어제 서울에 물 붓기에 싫증이 난 물방울들은 내 취향과 같아서인지 오늘은 지리산 골짜기로 돌아와 몸을 쉬나보다. 오늘도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하늘의 구름은 온갖 모양으로 그림을 그려대니 하늘구경만도 바쁜 하루다. 2018-08-3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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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제각기 수호성인을 닮아가선지 내가 아는 모니카들은 대가 세다 태풍이 지나간 지가 언젠데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장마보다 센 장대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앞산은 하얀 구름 띠로 하루 내내 벗고 가리며 뽐을 내는 중이다. 테라스의 거미줄은 송알송알 맺힌 물방울이 진주알 같고, 식당채 창틀을 타고 오르는 여주는 찬란한 오렌지색 열매를 자랑하고, 비가 온다고 땡치기만 할 수 없어 가랑비를 틈타 꿀 따러 나온 벌과 (벌새 비슷한) 꼬리박각시나방은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는 휴천재 아침 풍경. 2018-08-2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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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한반도 분단이 공깃돌 놀이냐? 2018년 8월 25일 토요일, 흐림 새벽녘 잠을 깨면 늘 걱정거리와 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이 없다. 오죽하면 ‘새벽닭 울 적마다 삶은 노엽고 원통했다!’라는 시구가 있을까? ‘9월 3일은 엄니의 제사(60년)인데 집안 식구들이 만나서 위령미사라도 드리고 함께 저녁식사라도 하면 좋겠는데… 9월이니 추석에나 만나자거나 연미사는 각자가... 2018-08-2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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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오늘밤에도 ‘적과의 동침’(?) 비오는 소리가 엄마의 젖을 빠는 아가의 목젖 넘어가는 소리 같이 ‘충만한 만족감’을 준다. 나중에 바람이 일어 과일을 떨구고, 나무를 부러뜨리고, 곡식을 쓰러뜨린 후라면 지금의 고마운 빗줄기가 덜 반갑겠지만, 그동안 너무 목말라 누렇게 시들어가던 나무며 가을 들꽃은 우선 한숨 돌릴 게다. 2018-08-2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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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벌레들의 사랑노래로 도회지 낮보다 더 시끄러워진 산골의 밤 요즘은 간첩이야기가 판을 치고 있다. 그것도 이중간첩이라고 6년이나 형을 살고 나온 사람 얘기다. 보통 ‘간첩’이라는 말이 나오면 ‘낮에 하는 얘기는 새가 듣고, 밤에 하는 얘기는 쥐가 듣는다’는 공포감을 갖고 주변을 둘러본다. 2018-08-22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