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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생즉사, 필사즉생 (必生卽死 必死卽生) 일전에 조계종 교육부장으로 일하신 법인 스님이 경향신문에 낸 오피니언에서 ‘부처와 예수는 시비꾼 이었다’는 제하의 글을 읽고 내심 반가웠다. 내용인즉, 조계사 농성천막에 항의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보수의 옷을 입음 직한 사람들이 격렬하게 항의하는 공통적인 논리가 ‘신성한 경내에서’, ‘수행의 본분’을 저버리고 수행자가 정치에 참여해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2018-03-19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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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잘 지키는 모범신자로는 부족하다 가톨릭교회를 선택한 신자들은 타종교에 비추어 알 수 없는 종교 선택적 우월감을 가진다. ‘나는 가톨릭 신자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래도 가톨릭이 제일 깨끗하지 않느냐’라며 안심한다. 그리고 신자로서 일정액의 교무금과 감사헌금, 건축금 등을 내고 교회의 정해진 전례에 잘 참여하고,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고, 2018-03-12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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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마음의 부담?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는 교회와 친교를 회복하는 고백자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은 죄 때문에 손상을 입은 교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효과도 있다. 교회는 ‘고해의 의무’를 철저하게 관리해 왔다. 자신이 지은 죄를 사제를 통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며 이는 칠성사 중의 하나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게(가시화)하는 은총의 통로라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2018-03-05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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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탓’, ‘조상 탓’하는 신앙생활은 ‘가계정화(淨化)’라고도 불리는 가계치유는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육체적, 정신적, 영성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계치유기도문’과 ‘미사(성체성사)’를 통하여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사라지는 듯 했지만 이 문제는 ‘미사예물’의 형식으로 다시 신자들 간에 암암리에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다. 2018-02-26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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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출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신흥종교 ‘신천지’(공식 명칭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가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11년에는 천주교 사제를 사칭하며 신천지 포교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주교회의와 각 교구 차원에서 주의를 당부한 데 이어, 2013년 말에는 신천지에 빠진 부산교구 사제가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신천지 포교활동을 벌이다 정직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2018-02-19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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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선포는 10%국민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려는 신앙이나 개인의 구원만을 위한 신앙에 초점을 두는 선교정신은 그다지 성숙한 방식의 선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선포는 대한민국 10% 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의 조국 오천만 겨레와 북의 삼천만 겨레, 나아가 세계시민 모두에게 동일하게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다. 좁은 장막을 걷어내고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야 한다. 2018-02-12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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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양면성 한국 평신도들의 영성은 과연 지금 어떠한 수준인가? 서울교구보좌주교로 임명된 유경촌 주교는 『21세기 신앙인에게』(가톨릭출판사, 2014)라는 저서에서 가톨릭 사회교리 해설을 통해 2018-02-05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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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의 제왕적 패권주의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바라는 사제직의 모습은 가난하고 소박한 생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진솔한 희생의 삶, 시대의 징표를 인식하고 증언하는 역할, 평신도와 함께 수평적 네트워크 안에서 협력하며 논의하는 자세, 돈과 권력과 명예에 휘둘리지 않고 힘 있는 자에게는 더욱 당당하며, 2018-01-29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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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안에서 교회,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미국의 신학자 마이클 노박(M. Novak)은 “21세기는 최근 500년간에 일찍이 없었던 종교의 세기가 될 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는 인류사회가 갖가지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바라던 모든 것을 성취한 승리의 시기에 오히려 종교는 본질적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음을 주목한 것이다. 2018-01-22 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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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위기다. 위태롭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예언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논쟁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소수 권력자를 만족시키는 지금 체제는 당연히 문제제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언자는 동시대에 인기를 얻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핍박을 자처한다. 예수의 슬픈 삶이 그러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도 죽어서까지 세 번이나 파문을 당했다. 2018-01-15 지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