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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이, 전 됐으니까 하부이한테나 해 드리세요”
  • 전순란
  • 등록 2015-08-16 11: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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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4일 금요일, 오전 맑음, 오후 천둥번개 폭우


일기예보에는 우리가 한 주간을 보낸 이 비오이스 계곡(Valle di Biois)에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린다고 했지만 아침나절엔 가슴 설레도록 태양이 눈부셨다. 자, 돌로미티 휴가 마지막 날은 어디로 갈까? 오후에는 칼레다고르도쪽 골짜기(Valle di Bares)로 들어가서 빵기 시아 부자는 난코스로 산마르티노로 산행을 하고 나머지는 숲을 거닐기로 했다.


오전에는 시아가 알레게 호수에서 발로 젓는 백조머리의 배를 타고 싶다 해서 시아네는 호수로 가고 우리 둘은 윗동네(Vallada Agordina)의 성시몬 성당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성로코성당은 문이 잠겨 있고 화목토 오후에만 연다는 붙어 있다. 골짝 깊이 숲속에 자리잡은 ‘시몬-유다 사도 성당’은 14세기의 건물로 특히 르네상스 티치아노 제자가 그린 벽화와 나무조각상들이 뛰어나 이탈리아에서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성당을 지키는 체사레라는 총각이 심심하던 차에 우리 동양 사람을 반겨 프랑스어발음이 농후한 이탈리아말로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8세기부터 그곳에 성당이 있었다는데 제대를 장식한 제단화 등은 모두 독일풍의 조각과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니 호수에 간 빵기네도 날씨가 좋아서 배타기가 좋았단다. 그런데 “날씨가 왜 이렇게 좋아?” “엄마, 제가 하느님께 뇌물 좀 썼어요. 내일도 한번 손을 써 볼게요.”라는 불경스러운 대화가 모자간에 오가자마자 천둥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쏟아진다. 올 여름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보는 폭우다. 나야 농사를 지으니까 산행을 못하더라도 비가 고맙다.


집 앞의 초원에 쏟아지는 빗줄기와 골골에 이는 물안개와 산봉우리를 덮어내리는 구름을 내다보면서 알프스 산장에서 책을 읽는 기분도 참 좋다. 산악자전거 하이킹족과 오토바이족들은 버스 정거장에 비를 피하면서 우왕좌왕하기는 하지만... 보스코도 오랜만에 아우구스티누스를 펴놓고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데 능숙한 사람이다. 시아와 시우는 오후에 아랫동네 수영장엘 갔다.





저녁식사 시간. 하도 놀아선지 두 아이는 밥수갈 들기도 힘든가보다. 작은놈은 어멈이 일일이 먹여주는데 “9월에 학교만 가 봐라!” 하는 게 이 성질 급한 할머니가 벼르는 마음. 유치원 2년이 정규교육에 해당하여 시우도 9월이면 초등학교에 가는데 스위스 초등학교에서는 식사를 끼질 거리는 아동들은 따로 밥상을 차려 혼자서 마저 먹게 하여 창피를 주고, 유치원 아동들과 함께 낮잠을 재워서 제발 급우들과 뛰어놀고 싶게 만들어 버릇을 고치게 만들더라는 게 시아의 설명.


걔들과 6촌간인 미선이딸 은율이는 발레에 태권도를 한다는 이 할머니의 얘기에 시우는 비보이춤을 추고 싶단다. 그 말에 할머니가 시우를 거꾸로 들고 방바닥에 머리를 몇 바퀴 돌리자 “함무이, 전 됐으니까 하부이한테나 해 드리세요.”라며 어른들 어투로 날 놀라게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조부모간의 역학관계를 녀석이  너무도 속속드리 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아네는 내일 밀라노에 들러 하룻밤 자고서 제네바로 돌아간다. 큰손주가 호텔에서 자는 걸 좋아한대서 짠돌이 아범이 밤새 인터넷을 뒤져 수영장도 있는 별 네 개짜리 호텔을 예약했다고 자랑하니까 갑자기 시들해졌는지 시아가 한 마디 한다. “그냥 집에 가요.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 좋다고만 했지 굳이 자자는 말은 안 했어요. 호텔에서 하룻밤 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큰손주의 어른스런 말투에 우리가 놀라니까 시아가 짠돌이 아빠를 얼마나 닮았는지 아범이 설명한다. 용돈을 주면 가계부에 일일이 기록하고 그 돈이 안녕하신가 자주 세어봐서 아무도 손을 못 댄단다. 그렇게 모은 돈을 ‘딱’ 기분 내는데, '딱'  필요한데 한몫에 쓰는 것도 특이하단다. 굴지의 대기업 경제활동 최전선 CEO로 계셨던 외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인자일까?


할머니와 함께 저녁기도를 마친 두 손주는 오후 수영에 곤해선지 지붕에 억수가 쏟아지고 창밖에 번개가 번쩍, 천둥이 우르르 쿵쿵 울리는데도 꿈나라로 일찍 떠나 침대에 안아다 눕혔다. 할머니가 두 손주를 안아다 잠자리에 눕힐 수 있는 세월도 금방 지나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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