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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밥상의 '피교육자석'과 '교육자석'
  • 전순란
  • 등록 2015-08-13 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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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1일 화요일, 맑음


산도 좋고 그보다 더 좋은 게 날씨다. 아무리 산이 좋아도 구름이 무겁게 드리우면 산봉우리도 안 보이고 만약 비라도 주룩주룩 내릴라치면 산에 오르기는커녕 집밖에도 못 나가 아까운 집세만 지불하면서 침대에 딩굴게 된다. 요즘 한 주간 내내 맑은 날씨는 큰 복이라는 게 길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오늘은 알레게(Alleghe)로 나가서 동네를 구경하고서 보스코가 몇 차례나 오르고 싶었던 치베타(Civetta: 3220m)에 오르기로 하였다. 사흘 연속 산행에도 우리 식구들 모두 건강하다. 아침에 김밥을 싸고 컵라면 두 개를 챙겨서 길을 나섰다. 알레게 호수는 치베타 바로 밑에 있고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서 우리가 이 길을 지날 적마다 멈춰서서 어린 빵기와 빵고를 한참이나 놀게 하던 곳이다.




아침밥을 먹는데 맞은편에는 보스코, 시아, 시우가 나란히 앉고 나와 빵기 그리고 지선이가 마주 앉는다. 끼니마다 “무엇을 먹어라”, “더 먹어라”, “그만 먹어라” “마저 다 먹어라”는 잔소리가 앞자리의 세 명에게 집중되기 마련. 오늘 저녁에도 보스코가 샐러드 접시를 밀어놓는 바람에 “샐러드와 함께 먹으라”는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더니 보스코가 자기네 셋은 '피교육자석'이고 이쪽 셋은 '교육자석'이란다. 며느리의 발언은 두 아기에게 국한되지만 그래도 교육자석에 해당한다.


문제는 보스코의 식사언행이 시아나 시우보다 절대 낫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아들의 잔소릴 듣고 간혹 삐치는데 며느리가 보고 듣고서 “아버님이 아들한테 열 번 잔소리를 들으면 어머님은 한 번 듣는 편인데도 어머님은 그때마다 맘 상하시고 아버님은 끄떡도 안 하신다.”는 평을 내리더란다.


보스코는 평상시에 나한테서 듣는 잔소리에 이력이 났다는 말일까? 한 가지 이상한 건 나는 정작 보스코에게 끊임없이 잔소릴 하면서도 아들들이 지 아빠에게 잔소릴 하면 내가 속상하다는 건 무슨 조화일까?


▲ 피교육자석의 할아버지와 손주들


오늘도 한8km를 걸었다. 알레게에서 케이블카로 치베타쪽으로 ‘다람쥐봉'(Baita Scoiatolo)까지, 거기서 ’대머리봉'(Col dei Baldi: 1922m)까지 가서는 온 가족이 페르라타짜(Ferratazza: 2077)까지의 4km 거리를 왕복하였다. 그 능선에서는 미루네랑 암페쪼계곡(Val d'Ampezzo)을 가면서 감탄하고 감상한 펠모, 안텔라오, 마르마롤레, 소라피스, 크로다디라고, 토파네가 한 눈에 건너다 보였다. 특히 신들의 어좌(御座)라고 불리는 몬펠모(Mon Pelmo)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니! 그리고 페르라타짜의 산장에서는 치베타(부엉이)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듯한 모습에는 숨이 막힌다. 


▲ 마르몰라다 Marmolada


▲ 몬펠모 Mon Pelmo


▲ 토파네 Tofane


▲ 소라피스 Sorapis


언제라도 오르면 묵묵히 남아 우리를 반겨주는 산세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듯하다. 30여년전(보스코의 유학시절)에도 찾아온 곳이고 20여년전(보스코의 안식년)에도 찾아온 곳이고 10여년전(보스코의 공직생활)에도 찾아온 곳이지만 수년후에 오더라도 다시 찾아오를 돌로미티 알프스다.


▲ 돌로미티의 명산 치베타(Civetta `부엉이` 3220m) 위용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아가 우리 차에 탔다.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동생을 대하는 부모에 대한 평이 날카롭다. 자기가 어렸을 적엔 아빠랑 늘 함께 있었으므로 잘못를 저지르면 아빠의 엄한 꾸중을 듣곤 했는데 아빠가 전 세계를 여행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동생 시우는 엄마에게 전적으로 맡겨지다 시피하고, 엄만 끝없이 참고 늘 용서만 해주는 분이어서 시우가 버릇을 들일 시간이 없다는 평이다. 말하자면 아동교육에 엄부(嚴父)의 역할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얘기였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진자하게 귀를 기울이고 질문을 계속하는 시아를 보면 빵기의 어린 시절 그대로다.



내일은 시우가 아빠랑 치베타의 난코스를 다시 한번 걷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우리 전부와 함께 걷느라 오늘은 쉬운 코스를 걸었기 때문이란다.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가도 엄마는 별로 스키를 즐기지 않고 시우는 아직 서툴러서 아빤 자기만 데리고 가신다면서 큰아들로서 아빠와 끈끈한 유대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은근히 내세운다. 그래서 “역시 아들은 낳고 봐야 하는기라!”는 문정리 ‘공주엄마’의 큰소리가 나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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