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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 인터뷰 : 새벽미사는 최고의 은총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8-12 12:20:32
  • 수정 2015-11-05 1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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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편집인)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은 ‘하느님께, 대체 제게 왜 이러냐’는 질문을 많이 하셨잖아요. ‘고통은 격렬한 은총을 내린다’고도 말씀하셨는데, 고통이 구원을 준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공지영 작가) 얼마 전에 북콘서트를 갔는데 어떤 분이 비슷한 질문을 하셨어요. 제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 제가 토마스 수사님의 입을 빌려서 젊은 요한 수사에게 하는 말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린 하느님께 갈 수 있습니다’ 라고 썼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냐, 고통 말고 다른 방법은 없냐 라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하느님께 갈 수 있다고 답했죠. 그리고 지금 되게 후회하고 있어요.


- 그럼 한번 바꾸시죠. 어떻게 바꾸시겠어요?


▶ 아니에요, 후회한다고 했지 아니라고는 안한 거지요. 그게 맞아요. 고통을 통해서만 그분께 나아갑니다. 이번에 제가 겪는 어려운 일도 또 하나의 어려운 징검다리의 두 번째 돌을 걷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좀 수월하죠.


- 세월호를 보고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하셨는데요, 세월호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


▶ 제 인생을 완전 바꿔놓은 사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광주였어요. 독재정권이 말해주지 않은, 우리 사이끼리 얘기하는 광주의 진실을 알고 나서는, 영원히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20살 때 알게 됐어요.


이번에 세월호를 보면서 내가 다시는 이전과 같은 상태로 또 돌아갈 수 없다, 내게 있어 광주와 같은 사태구나 하는 걸 느꼈죠.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전 아직도 세월호 진실에 대해서 읽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그 자체가 너무 끔찍해서요...


그걸로 인해서 글을 쓰면서 ‘수도원 기행 2’에서 스위스에 사는 소피아라는 자매의 이야기를 인용한 건, 그래도 우린 그리스도인인데 어떻게든 죽음을 바라보는 데 있어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봤어요.


물론 저는 죽은 다음의 세계에 대해서 -교리에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싶어요.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내가 죽어봤는데 하느님도 안 계시고 내세도 없고 뭐 그렇다 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죽어서 가는 세계가 있고 하느님이 계신다는 걸 굳게 믿고, 그것이 사후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믿고 살았기 때문에 난 행복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거지요. 세월호 이전까지 이게 저의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얘기했는데, 어떻게든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언뜻 그 언니에게 들었던 아이의 사후체험을 듣고 제가 청했죠. 죽은 다음에 이렇구나라는 걸,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이런 말을 듣고 위로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저의 궁여지책이었죠.근데 그 부분을 읽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분들이 참 위로가 되더라고 말씀을 하세요. 저는 거짓된 위로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죽은 이후 세계가 없다는 증명도 할 수 없으니까요.


- 새벽 미사를 나가신다고 들었는데요, 미사에서 어떤 평화를 얻습니까?


▶ 말도 못해요. 제가 한 모든 신심행위 중에 새벽미사를 매일 나가는 게 최고의 은총인 것 같아요. 일단 아침마다 제게 들어오는 복음이 정말 최고에요. 뭐라고 할까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은총이 오는데, 그 중에서 식별의 은총이 가장 많이 와요. 내가 이런 은사를 받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계속 새벽마다 일어나 미사에 나가면서, 제가 점점 더 고요해지니 사물이 그 사물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가려야 될 것들이 가려지고 사물이 제 자리에 놓인 게 보여요. 그게 참 신비하더라구요.


- 기도가 안 될 때도 있으신가요? 어떤 때 기도가 잘 되고, 어떤 때 잘 안되세요?


▶ 저는 오히려 평화로울 때 기도가 잘 되고, 기도를 며칠 쉬었을 땐 기도가 잘 안 돼요. 제가 요즘에 힘든 일이 있어서 며칠 기도를 놨었는데, 역시나 다시 앉으려니 기도가 안 돼요. 이럴 땐 억지로 할 수 있는 걸 하죠. 미사를 가거나, 함께 묵주기도를 한다거나, 십자가의 길을 한다거나. 더 안 될 땐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요. 이번에도 제게 쪽지 보내는 신부님들에게, 제가 지금 기도가 안 되니 기도를 해주세요 라고 부탁했어요. 위기를 느꼈어요.


가장 큰 방해가 기도를 못하게 하는 방해인 것 같아요. 충격 때문에 요 며칠 쉰 것이 큰 타격으로 왔어요. 평소 같으면 금방 회복이 될 텐데, 지금 잘 회복이 안 되고.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에, 아주 아주 강력한 영적 방해를 느끼고 힘들어요.


의자놀이 때도 경험했는데, SNS로 기도해 주세요 하면 기도가 하루 이틀은 굉장히 효험이 있다가 사흘부터는 제가 느끼는 감도의 그래프가 떨어지면서 힘들어져요. 그렇지만 또 전화해서 기도해달라고 하기가 민망한 거예요. 제가 해야죠 뭐.


예전에 제가 존경하는 신부님이 강론할 때 그랬어요. 모세가 전투를 하면서 팔을 들고 있는데, 팔을 받쳐 올리면 이기고 내리면 지고. 저는 도대체 저게 뭔 소리인가, 탈출기에서 제일 모르겠는 부분이었죠. 그런데 신부님께서 이게 기도에 관한 거라면서, 이 세상에서 해도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게 기도라고 하더라구요. 인간은 뭐에든 익숙해지며, 심지어 맞는 것도 이골이 난다고 해요. 그런데 기도는 이골이 나지 않는대요. 조금 쉬면 금방 힘들어지니까, 모세의 저 말이 누군가 억지로 팔을 받쳐줘야 기도를 해야 한다는 의미인거에요. 억지로라도 기도를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그때 배웠죠.


- 지금 교황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뒷모습 보고 눈물이 나오는 분이에요. (평신부에게 고해를 하시려고 꿇어앉은 뒷모습...) 살아생전에 이렇게 멋진 교황님을 보내주셔서 정말 하느님께 감사해요.


가난한 자들을 언급하시는 모습, 그리고 비리에 대해 단호하신 모습에 정말 감사해요. 예수님의 멋진 모습이 그대로 있는 것 같아요.


- 작가님에게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 기도 중에 ‘내 주 나의 성체, 나의 바위, 나의 쉴 곳’ 이란 구절을 굉장히 좋아해요. 저에게 있어 저를 지켜주시는 분, 수호자. 내 삶에 의미를 주신 분이며, 어쩌면 죽음에까지 의미를 주실 분. 막달레나 마리아가 등장하는 성경을 정말 이해해요. 발에 향유를 부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받는다’라고. 정말 가슴 찢어지게 체험한 거죠.

그래서 저에게 있어 예수님은 진정한 생명을 주신 분이에요


- ‘진리는 내게 늘 이렇게 왔다. 이해하기 전에 가슴을 치며.’ 작가님의 멋진 말입니다. 작가님에게 있어 진리는 무엇입니까?


▶ 진리는 하느님이에요. 요새는 자유를 생각해봤어요. 제가 자유를 원했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란 진리를 향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유로 이끌어주는 빛,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빛이 진리인 것 같아요.


- 우리 교회에서 성 평등 수준이 낮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 예를 들면, 사제가 남자인 건 상관없어요. 여자도 사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어요. 하느님께서 주신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평등한 역할로 나눠진 게 아니라 위아래로 나눠진 게 진정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 한국천주교회에 고칠 점이 많지요?


▶ 솔직히 잘 몰라요. 그런데 몇 년 전 고위 성직자께서 저를 초대하셔서 점심을 주시면서 함께 식사할 신부님 7~8분을 소개하시면서 제게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공 작가 잘 봐, 여기가 우리 가톨릭의 엘리트 중에 엘리트야. 다들 외국 박사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도 있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심장이 쿵 내려앉았죠. ‘어떻게 예수님 제자라는 분이 내게 이런 얘기를 하지... 이건 속물적인 발상이잖아. 예수님의 제자 엘리트 중의 엘리트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인데, 학벌도 없고 집안도 후지고 남들이 보기에 하느님 바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아닐까?’ 그때 엄청 실망을 했지요.


또 하나 잘 모르겠지만, 일부 주교님들이나 추기경님들 말씀 하시는 거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은 혹시 부자들하고만 밥을 드시나보다 하고요.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잠깐 있었는데요, 부자들하고만 밥을 먹다보면, 사람들이 5,000원도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이해 못해요. 5,000원 때문에 죄를 짓고 굴욕을 당하고 벌레가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을 몰라요. 게다가 신부님들은 5,000원이 없어도 상관없는 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신부님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밥을 먹어야 돼요. 밥 먹고 돈 내고 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삶을 보고, 사람이 정말 5,000원이 없어서 자존심을 팔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되는데, 우리 신부님들은 너무 부자들하고만 어울리는 것 같아요. 문제라기보다 그냥 제가 가끔 본당 신부님들이나 그런 분들 보면서 그런 생각 했어요.


- 제가 작가님께 감명 받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자녀를 기르기 위해 밤새 글을 써야 했다.’ 그걸 보고, 우리 작가님과 일반인들이 다른 차원에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 저도 가장이니까 그렇죠. 글을 안 쓰면 애들을 키울 수 없으니까요. 지금은 괜찮지만 그 때는 정말...



- 지금 행복하세요?


▶ 네, 그건 확실해요. 나날이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 그 비결이 뭔가요?


▶ 신앙이요. 그러니까 인간이 줄 수 없는 하느님의 평화. 그리스도가 좋은 게 가난하면 더 좋고, 모욕 받으면 더 더 좋고.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어요. 매일매일 조금씩 하느님께 간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매일매일 조금씩 더 행복해지죠. 불행이라고 여기는 모든 가치들을 예수님은 행복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가난한 자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박해받고 모욕 받고... 행복하다고 했는데. 세상적으로 행복하면 행복해서 좋고, 모욕 받고 가난해지면 예수님 제자가 되니 좋고, 안 행복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까 오면서 딸하고 얘기를 했는데 우리 딸이 ‘엄마 원래 있잖아,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고통스러울 이유가 많아’


저는 너무 행복해요. 고통이 오면 당연히 고통스럽지만 이게 끝나면 무엇이 올까 궁금하기도 해요. 하느님 안에서 고통을 겪으면, 분명히 그 다음에 뭐가 와요. 내 자신이 업그레이드 됐다고 해야 될까요. 그 업그레이드가 뭐냐면 자유의 업그레이드에요. 제가 더 편안해졌어요. 고통으로 늘어난 마음의 용량만큼 자유의 바람이 불어요.


예전에는 늘 ‘이게 하느님 보기에 좋은 일일까?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걸까?’ 제일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하느님, 저 이제 결정해야 해요'. 말씀드리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제가 틀렸으면 당연히 다시 바른 길에 저를 놓아주실 테니까요. 오늘 졸려서 미사를 못 가겠다, 이런 것도 하느님을 진정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작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하느님께서 날 이끌어 주시겠지' 하면서 편안하게 내 일을 하지요. 이게 제가 얻은 평화에요.


- 현재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 돼서 많이 고통 받는데,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말씀 해주세요.


▶ 나라에 희망이 없는데. 제일 중요한 건 나라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건 너무 멀어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내가 바뀌어야 돼요. 최고 좋은 게 새벽에 일어나서 미사를 가는 거예요. 새벽의 힘이 굉장해요. 일찍 자게 돼서 낮에 깨어있고 밤에 자는 힘, 동 틀 무렵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면서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엄청난 거예요.


취직을 왜 해야 하느냐면 먹고 살기 위해서고, 왜 먹고 살아야 하느냐면 내 행복을 위해서 하는 거고, 행복하면 뭐가 좋으냐면 다 편안해져요. 그걸 우회해서 얻지 말고 바로 얻으면 되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새벽 미사를 권해요. 인간이 알 수 없는 하느님의 평화와 권능이 듬뿍 나누어지는 자리죠. 은총으로 취직을 할 수도 있고, 은총으로 다른 커다란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세례명이 마리아시잖아요.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세요?


▶ 팔자 센 여자에요. 어떻게 더 불행할 수 있을까요? 열여섯 살부터 인간들에게는 돌팔매를 받을 수 있는 임신을 해가지고 고생만 하시죠. 분명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거”라고 천사한테 말을 들었는데 “성모님의 가난과 모욕과 고난은 끝이 없지요.” 성모님은 정말 하느님 원망 안했을까? 여러 번 생각했어요.


묵상하면서 제일 가슴 아팠던 게 그거에요. 친척들이 당신 자식이 미쳤다고 해서 예수를 찾아오는 장면이요. 찾아왔을 때, 마리아가 그 전부터 수치를 당하면서 친척들에게 떠밀려서 할 수 없이 온 것 같은 그 느낌. 아들이 미쳤다고 친척들이 난리를 치니 가보긴 가보는데.... 게다가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누가 내 형제냐?”하고 차갑게 말씀하시죠. 성모님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셨을까요? 그때 그녀를 데리고 왔던 친척들은 뭐라고 수근거렸을까요?


그리고 피날레가 오지요. 이 세상에서 최고의 고통이 자식이 먼저 죽는 거고 그것보다 더 한 고통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눈앞에서 빤히 보고 있는 데서 헐벗은 채로 죽어갔잖아요. 그러고 나서도 하느님이 빨리 하늘나라로 데려가시지도 않고 성모님은 제자들과 쫓겨 다녔잖아요. 정말 이 이상 불행할 수 없는 거죠.


- 로마에 가서 피에타를 본 느낌이 어떠셨어요?


▶ 피에타란 뜻이 깊은 믿음이란 거래요. 성모님이 예수님을 안고 있는데, 영광의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비참하게 죽은 자식을 안고 있는 그게 깊은 믿음이란 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런데 성모님은 예수님을 내려놓고 땅을 치며 우는 것이 아니라 품에 안고 있잖아요. 이건 제가 본 성모님 모습 중 최고라고 생각해요. 성녀 본연의 모습. 이게 깊은 믿음인가 보다... 그런 생각했어요.


- 네, 그렇군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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