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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8회 인문학자 김영 교수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8-03 10: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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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편집장) 교수님 건강하시지요? 오늘 한국의 대학들이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 (김영) 한국의 대학은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서 크게 기여해왔습니다. 특히 60, 70년대에 산업인력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군사독재 시대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자본권력이 정치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상황입니다. 


공동체나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진리를 탐구하고 이론을 생산해야 하는 대학에서도 자본권력의 횡포로 인해 자본권력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데 머무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보다 자본 권력에 휘둘리는 상황입니다. 지난번 중앙대 박용성 이사장이 “교수의 목을 치겠다”고 발언한 것처럼 대학의 자율성, 학문의 자유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이사장은 가톨릭 집안이라고 합니다.


▶ 신앙이나 신념이나 지행일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실천하는 신앙과 신념이 있었다면, 교회가 많은 한국 땅은 벌써 천국이 되어야 했지요.


- 사립대에서 이사장이나 재단이 실세라고 한다면, 국립대는 어떤 상황입니까?


▶ 국립대에는 정부의 간섭이 심합니다. 경북대 총장 선임문제를 볼까요. 정부가 지원금을 미끼로 대학이 총장 추대위원회를 통해 간접 선거를 하도록 압박합니다. 그래서 국립대학들이 직접 총장을 뽑는 게 아니라 간선제를 통해 총장을 뽑습니다. 그러나 간접선거인 총장 추대위원회를 통해 정부가 원하는 방식대로 총장을 선출해도 정부가 원하는 사람이 총장으로 추대되지 않으면 총장 임명을 미루고 있습니다. 현재 경북대학, 공주대학, 방송통신대학과 같은 학교들이 임명에 어려움에 있습니다.


- 사립대학은 재단 이사나 소유주가 장악하고 국립대학은 정부가 입김을 넣고 있으면 사실우리나라 대학은 독립성이 없다고 봐야 하나요?


▶ 그렇다고 봐야 하고, 그래서 위기입니다. 대학은 국민 대다수의 삶, 민주적이고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서 이론을 생산하고 복지의 토대를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권력자와 자본권력만을 위해 봉사하는 대학으로 전락해가는 것이 걱정입니다. 우리 대학은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들을 위한 대학이 아니라, 다수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자 하는 공공성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된다면, 대학은 희망이 없고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게 될 것입니다.


- 지금 대학생들이 예전 대학생들과 많이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대학생들이 겪는 위기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습니까?


▶ 예전 대학생들은 경제가 성장하는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취직에 큰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부는 소수의 수퍼리치(super rich)에게 독점되고, 다수의 일하는 사람은 가난해지게 되어, 안정된 일자리가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늘어납니다. 그런데도 대학생들은 사회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려는 사회운동이나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기 보다는 각자 스펙을 쌓아 취직으로 자신의 진로를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나 서비스 분야의 고용확대, 노동시간 감소와 같은 정책적인 노력 없이 개인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부나 보수 언론은 이런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학생의 도덕성이나 성실성의 문제로 환원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부족한 편입니다. 또한 디지털 문화로 변화되어 정보가 파편화되기 때문에 독서를 통한 사고력이나 상상력이 예전보다 떨어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언론이나 교수들과 같은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 정부나 자본의 입장에서는 저항세력이 될 수 있는 대학생들을 취직에 시선을 고정시킴으로써 정부가 안정되고 재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젊은이들이 분열되면 잘못된 정권이 더욱 오래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대학생들도 위기지만 교수님들이 처한 위기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 자본주의의 작동원리가 생산성과 효율성이기 때문에 경쟁이라는 방법은 각 분야에 적용됩니다. 경쟁은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없도록 합니다. 교수들은 연봉제나 평가제를 통해 교수들 사이의 경쟁, 대학들 사이의 경쟁에 노출되기 때문에 대학은 연구 논문의 수로 교수의 평가기준을 삼습니다. 얼마나 많은 논문을 쓰느냐보다 어떤 논문을 쓰느냐가 중요한데, 이것을 간과한다면 연구를 위한 연구, 부당한 권력을 합리화 시키는 연구가 진행됩니다. 

또한 연구비 수주 액수와 논문의 양을 가지고 교수를 평가하는 시스템은 의미 있는 연구, 기초적인 연구, 공공성을 띤 연구를 위축시켜 결국 기계적으로 논문을 생산하는 논문제작자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큰 학문을 한다는 대학에서 자신의 욕망, 연봉, 지위 유지, 비교 우위와 같은 보상과 대가를 위해 연구한다는 것이 서글픈 현실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은 나라와 인류를 위해 필요한 큰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 논문을 주문 생산하는 정부의 산하기관이자 기업의 하청업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 자본과 권력이 대학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해서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고충이, 교수들은 교수들 고충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돌파구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결국은 대학 정신의 회복을 위한 교수들의 각성과 연대인 것 같습니다. 저희 인하대 교수회는 교수들이 학과 이기주의와 전공 영역에만 매몰되지 않고 보편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자율성 확보와 대학의 개혁을 위한 토론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비롯한 학내외 현안에 대한 입장 발표, 명사 초청 강연, 각종 모임과 집회 개최, 교수들의 목소리를 담은 회지 발간 등을 하고 있으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른 대학 교수회와도 연대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대인’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세월호 유가족 초청 간담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생적인 교수와 학생들의 모임과 연대활동이 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대학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브라질의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는 “지식인이란 학교를 오래 다니거나, 학위가 있거나, 전문적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학력에 관계없이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어두운 상황이면 지식인이라 불리는 교수들과 대학생들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 국민적 기대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대학’이란 책을 보면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란 말이 있습니다. ‘재명명덕’이란 것은 사람의 가능성을 계발해내는 것이고 ‘친민’은 민중들의 아픔을 이론화하고 탐색해서 그들의 삶을 개선하고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박지원 같은 실학자들은 농업, 공업, 상업의 평민들이 실업하는 이유는 선비들이 실천적 학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명농(明農)’, 농사의 이치를 밝히고, ‘통상(通商)’, 상업을 잘 유통시키고, ‘혜공(惠工)’, 힘을 덜 들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선비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프 신부님의 생각을 뼈저리게 공감합니다.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은 “의식이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의 편에서 역사를 변화시키고 진보시키는 것에 기여하지 않으면 참된 지식인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은 팽창 되었으나 참된 지식인은 줄어들었다고 봅니다. 예전 군사독재시절에도 자신의 직위와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하는 지식인이 있었는데, 오늘날은 예전보다 교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는데도 사회변화를 위한 의미 있는 발언이나 행동하지 않은 지식인이 대다수입니다.  


- 인문학이 우리 종교인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해주는 좋은 것에 무엇이 있을까요?


▶ 저는 인문학을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인문학의 핵심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이해를 통해 상대방을 존중하며, 깊이 이해하는 자세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인문학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지혜를 줍니다. 한문의 ‘지혜(知慧)’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자신을 낮추어 그들의 입장을 듣고 그들의 입장에서 보는 것을 인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역사적 인물을 통해서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인물을 통해 인간을 풍부하게 이해하는 것을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종교 모두 사람과 사람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건성이 아니라 관심과 자비를 가지고 타인의 입장에서 듣고 보는 것이 인문학의 핵심입니다. 오드리 헵번은 “아름다운 눈을 가지려면 남의 장점을 보고,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려면 남을 칭찬하고, 날씬한 허리를 가지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 아주 좋은 말이군요. 인간 이해에 대해서 인문학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교황 바오로6세도 하느님을 알려면 먼저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생각하는 사람은 다 통하는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젊은 시절에 문학을 가리치던 선생님이었습니다.


▶ 그렇습니까? 역시 그렇군요. 


-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고 계시죠?


▶ 물질만능주의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물론, 나라 안에서도 팽배해져 가난한 사람이 소외되는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려운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고통에 빠진 사람의 벗이 되라는 교황님의 말씀은 인류의 축복이라고 생각되고,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욕망의 충족만을 위해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정글 자본주의 속에서 교황은 인간다운 정신적 가치와 숭고함을 전하는 위대한 스승, 가톨릭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역대 교황 중에서 한 분도 노벨 평화상을 탄 적이 없습니다. 교황이 노벨 평화상을 타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무신론자는 “하느님은 믿지 않는데, 프란체스코 교황은 믿는다”는 말을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가톨릭 신자로 살아오셨는데요. 가톨릭 신자로서의 보람이 있다면 무엇입지요?


▶ 저는 결혼을 하면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신자는 아니었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톨릭 신앙이 형식화되고 영혼의 울림이 없어 갈등을 느꼈습니다. 성당에 가서 성호를 긋고 성당에 의무적으로 나가는 신앙 활동이 상투적이라고 느끼게 되어 냉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나라에 교구가 군종교구를 포함해 15개가 있지만 길거리교구, 냉담교구가 신설되었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평신도를 포함해 많은 지식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가 평신도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교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십니까?


▶ 가톨릭은 군대 조직처럼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많습니다. 교회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신자들의 생각과 고민들이 교회 안에서 나눠지고 소통되고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지도자가 훌륭한 사람이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신자들이 갈등을 느끼면서도 성당에 의무적으로 참석을 강요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이 되어야하고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평신도들이 교회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고, 주교와 사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평신도들의 역할도 동시에 신장시키는 쌍방향적인 소통의 가톨릭 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길거리교구, 냉담자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가톨릭의 교리, 특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자유와 해방을 촉구했지만 가톨릭 문화는 성직자 중심주의나 주교, 사제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교구와 본당이 운영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동업자인데도, 성직자는 주인이고 평신도는 세입자와 같은 모습인 문화는 고쳐져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중심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위로받을 정치인도 안보이고 하소연할 종교인도 안 보인다는 것이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도 교회나 사회에서 어른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처럼 어려움을 호소하고 의지할 분이 있었습니다. 명동성당 앞은 노숙자들이 외로움을 의지하고 노동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소였지만 지금 명동성당에는 노숙자들이 있던 곳에 화단이 만들어지고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은 오지 말라고 막기 때문에 호소할 곳이 없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길바닥인 광화문에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땡볕이나 바람 막을 곳 없는 길거리에 내몰린다는 점이 한국 종교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치에서도 큰 인물이 있어 국민들이 의지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정치적인 이익으로 분열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민중의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대담한 변화와 개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굉장히 실망이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지도자들,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들,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야할 언론인들, 이 세 분야 당사자들의 각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우리나라는 많이 뻔뻔해진 사회 아닙니까? 나라와 종교에 책임을 진 지도자가 뻔뻔해지고 민중들은 희망이 없어서 각자 도생하는 상황에서 가톨릭프레스 독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겉으로는 권력과 돈 있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정의를 위해서, 선을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학생들과 함께 소록도에 갔는데 한 아일랜드 수녀님이 20대 초반에 와서 할머니가 되어 돌아갔다는 비석을 보며 ‘정말 조건 없는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를 알았습니다. 

낙동강 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어딘가에서 깨끗한 원수가 공급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 겉으로 보이는 권력과 명성의 세속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를 위해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안산과 팽목항에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봉사하며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희망의 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깨어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바로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면 절망적인 것 같지만 안에서는 도처에 희망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프레스가 이러한 연대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저희 가톨릭프레스는 교회와 사회 안에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교회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말을 듣기 위해 창간하였습니다. 교황님도 말씀하셨고 교수님도 강조하셨지만, 의로운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변방으로 나가라. 변방에 답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시대는 이 말씀이 새삼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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