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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태 신부의 오늘 미사 (15.08.02)
  • 이균태 신부
  • 등록 2015-08-02 1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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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부터 인류는 불로장생을 꿈꾸어 왔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제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로 구성된 500명을 한반도로 보내 불로초를 구해오게 했지만, 결국 그는 불과 50세에 죽음을 맞이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웰빙, 건강, 장수에 목을 매고 있는 현대인의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활짝 열릴 만한 단어 하나를 발설하신다 : « 생명을 주는 빵 ».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두고, 생명을 주는 빵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사실 요한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두고, 빵이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늘 복음의 바로 앞부분인 요한 복음 6장 21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입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입니다 »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식인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주님의 살을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 내어서 먹을 수 있을까? 그분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기 때문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설사 그분의 몸을 찾아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2천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 전세계 가톨릭 신자수가 10억을 넘은 지가 한참인데, 몸뚱아리 하나로 10억명을 어떻게 먹일 수 있겠는가? 살 한 점 얻어 먹을 수나 있겠는가?


교리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은 그 빵이라는 것이 성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빵만 먹으면 자동으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불노장생의 영약을 먹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죽는다. 제 아무리 좋은 약을 먹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약을 통해서 건강을 회복했다 하더라도, 회복한 건강을 잘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또다시 건강이 나빠지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죄라는 죄는 다 지으며 살면서도, 성체만 받아 모시기만 하면, 영원히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주님께서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라고, 당신이 주실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당신의 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을 만큼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이고, 당신께서 그렇게 세상을 사셨듯이, 당신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이들, 당신의 성체를 받아 모시며 살아가는 이들도 당신께서 세상을 위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당신의 살을 내어 놓으셨듯이, 그렇게 살라는 말씀이다.


노자 성체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여행 갈 때에 여비가 필요하듯이, 저승길 갈 때에, 노잣돈이 필요하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신자들 중에는 죽기 직전에 반드시 노자 성체를 받아 모셔야만, 그 성체 덕분에 영벌을 면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노자 성체를 모시지 못하고 죽으면, 연옥에서 엄청난 고생을 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죽기 전에 몇 년을 냉담을 하고, 수많은 죄를 지으며 살다가도, 죽기 직전에 종부 성사를 받고, 노자 성체를 받아 모시면, 영벌을 면할 거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종부 성사 받고, 노자 성체 받아 모시는 것이 무슨 천국행 티켓을 받는 것인 양 생각하는 민간 신앙의 영향 탓이다.


노자 성체를 영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고, 노자 성체를 영하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죽어서 주님을 직접 만나 뵈오면, 주님께서 « 입 벌려 봐라 » 하시겠는가? 그래서 성체가 입 안에 남아 있으면, 구원을 받고, 성체가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죽기 전에 노자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모시겠다는 자신의 신앙고백에 다름 아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나더러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갑니다 ». 아빠 하느님의 뜻, 그것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파견하신 아들을 믿는 일이다. 


그런데 그 아들을 믿는 일이라는 것은 그저 성당에 열심히 나오고, 미사에 엄숙하게 참례하고, 기도 열심히 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아들 하느님께서 당신의 전 존재를 통해서 보여 주셨던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것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내 오른뺨을 내려치는 사람에게 왼뺨까지는 못 내밀더라도, 그래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며, 이해하려고 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그를 용서하면서 사는 삶, 정의롭게, 올바르게, 자애롭게 사는 삶,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면서 사는 삶,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사랑 받으며 사는 삶, 편함보다는 불편함을, 자유로움보다는 구속을, 나보다는 너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이 바로 사랑의 삶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의 삶 삶을 살기가 쉽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안다. 그런 힘든 삶을 한번 살아 보고 싶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어금니를 깨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지만, 이내 얼마 가지 않아 그 마음먹은 것들이 흐트러지는 자신을 쉽게 발견하기도 한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 븅신 »이라는 모욕과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만 붙잡자. 사람이 되신 하느님, 몸소 허리를 굽혀 우리들의 발을 씻기셨던 하느님, 우리들에게 당신의 몸과 피까지도 내어 놓으시면서, 밥이 되어 우리에게 먹히러 오시는 하느님만 붙잡자.


오직 그 하느님만 붙잡고 있으면, 우리에게 먹히러 오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 주님이 나에게 성체로 오셔서 나를 먹여 살리고 있는데, 내가 주님의 빵으로서 이 세상에 먹히고 내가 주님의 몸이 되어 이 세상을 사랑하는데, 무슨 장애될 것이 있겠는가? 그렇게 사랑하다가 죽으면, 예수 따라 부활한다는 데, 무어 그리 아쉬울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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