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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도 출장 뷔페세요?
  • 전순란
  • 등록 2015-07-30 11: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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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8일 화요일, 맑다가 흐려짐


“미루가 지금 어디 쯤 가고 있을까? 열두 시간 걸린다는데 한국에 도착했을까?” 늙으면 궁금증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하도 귀염을 부리다 갔기 때문에도 그니의 난 자리가 퍽 허전하다. 여성에 대한 호불호가 유난히 심한 보스코 역시 “생전에 당신과 정말 똑같은 여자를 하나 봤어. 좋은 점도 못된 점까지도.”라면서 그니만 보면 입이 헤벌어지는 주책을 감당 못했었다.



아침 8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카톡이 왔다. 비교적 빨리 도착한 셈이다. 편서풍을 업고 달리니 한 시간은 더 빠른가 보다. 나는 보름을 비운 집안정리, 빨래, 청소... 여자란 나나 드나 가기 전에 일한 만큼 돌아와서도 할 일이 태산 같다.

 

집앞의 경당, “캄프라의 눈의 성모”(Madonna della Neve di Campra) 성당에 축제가 시작되었다. 어제 밤에 9일기도가 시작하여 저녁 8시에 로사리오와 미사가 9일 동안 이어진다. 8월 5일이 대축일이고 그날은 새벽 4시 30분(왜 하필 그 시간인지는 모르겠다)에 시작하여 하루 종일 인근본당 신자들이 사제를 모시고 와서 차례로 이 경당에서 성대한 미사를 올린단다. 장이 서고 음식전이 펼쳐지고 놀이터가 생기고 음악회와 각종 강연도 이루어진다.



그 ‘소란’이 싫다고 아랫집 친지아는 이 절기에 휴가를 간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 집에 인기척이 없다. 과연 어제부터 경당 주변에 풀을 깎는 기계소리, 길을 청소하는 먼지, 공터에 장터와 음식 가게와 축제 장소를 마련하러 공사 자재를 싣고 온 대형트럭, 대형 텐트를 세우는 인부들의 소리가 조용한 이 산간을 생기와 활기로 가득 채우고 있다. 축제는 즐겁다. 이곳에서 세번째 여름을 나는 우리다.





보스코도 참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과 씨름을 시작했고, 나도 참 오랜만에 매트를 펴고 억지로 보스코를 데려다 ‘티벳요가’를 시작하고(“요가 안 하면 아침은 없어욧!”), 아침 내내 손빨래로 시간을 보냈다.


점심 후에 시장을 보러가는데 보스코도 따라나선다. 이사야씨가 빌려줘서 그가 ‘USB 테더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의 한 달 기한이 지났으므로 다시 입금을 해야 한다. 오늘이 만기일이어서 입금 없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폐기된다. 인터넷 업계처럼 매정하고 도둑질 심한 장사가 없다. 전 세계 최고의 갑부들이 모두 인터넷 업계 아니던가?


보스코는 어제 이 입금에 관해서 아들한테 교육을 단단히 받았다. “6유로가 남아 있으니 5유로만 넣으세요. 5유로 이하는 입금이 안 되고, 기한이 지나도 남은 돈은 안 돌려줘요. 아빠는 인터넷 정보 5기가를 다 썼으니까 29일까지는 다른 핸드폰으로 테더링을 하세요....” 5기가라면 엄청난 양인데 그걸 다 쓴 건 어디가나 보스코가 테더링, 하스팟을 숙소에서나 차안에서나 열어놓은 채 돌아다녀서 남 좋은 일만 시켜서다(덕분에 미루가 카톡을 좀 하기는 했지만).


나이많은 세대에게는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이 커다란 짐이 되어 다가온다. 빵고의 지금 주임신부님도 빵고가 오자 제일 먼저 부탁한 일이 “스마트폰을 사고 싶은데 사용법을 좀 가르쳐 줄 수 있느냐?”였고, 삼성제품을 사드리자 날마다 몇차례나 질문을 해 온단다. 날마다 두세대 미사를 드리면서 초보적 물음에 일일이 대꾸하는 일도 어지간할 게다. 몇 살 적은 내가 보스코보다 더 잘 알아듣고 더 잘 사용하는 걸 보면 IT에 관한 이해는 나이에 반비례하나 보다.



내일 빵고에게 찾아오는 위신부와 유신부에게 생선초밥을 해다 주려는데 비엘라 오르시(Orsi)에 가야 싱싱한 연어가 있다. 지난 3년 사이에 이탈리아에서만도 중대형 슈퍼인 스탄다(Standa)나 지에쎄(GS)가 자취없이 사라지고 초대형 몰이 온통 상권을 쓸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로 돈놓고 돈먹기가 어떻게 소비시장을 독점해 가는지 한 눈에 보인다.


빵기가 손주들을 데리고 스카이프 통화를 하다가 내 음식장만을 듣고서 “거기서도 출장 뷔페네요?” 라고 웃는다. 우리가 묵는 그랄리아에서 빵고가 묵는 관자테까지가 150킬로가 되는 거리여서 하는 말인가 본데 아들과 그 친구들 맛있는 거 먹이려는데 그쯤이야 오갈만한 거리 아닌가? 여하튼 오늘밤도 음식장만으로 한 시 반을 치는 경당 종소리를 듣고서야 일기장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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