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하느님의 광대'를 자처한 프란치스코
  • 전순란
  • 등록 2015-07-25 12:00:40
  • 수정 2015-07-25 12:03:16

기사수정


2015년 7월 20일 월요일, 맑음


한 주간의 로마 방문을 마감하는 날 아침 미사는 루이지 신부님이 주례하신다. 87세에도 카랑카랑한 음성, 광채가 나는 눈빛이 그분의 투명한 정신세계를 나타낸다. 당신이 12년간의 살레시오회 최고평의회직을 맡으셨을 때에 어제 우리가 찾아간 클레멘트 현신부의 망명이 이루어진 경위를 아침식탁에서 얘기하신다.


사제가 늙어서 어떤 모습이 바람직한지 보여주는 분이다. 산타르치시오를 떠나며 신부님들과 작별하고, 루이지 신부님의 축복을 받고, 아래채 쟌카를로 신부님에게 인사를 갔다. 고향집 트렌토에서 한 번 더 우리와 만나시겠지만 로마에서는 마지막 작별이기 쉽다.




신부님은 당신이 가꾸고 거두고 빻아서 마련한 매운 고춧가루 작은 한 병을 선물하신다. 병에는 어느 핸가 내가 파다 드린 GIANCARLO MANARA라는 도장이 인주로 찍혀 있다. 해마가 100 병 넘게 장만하여 매운 것 좋아하는 주변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차를 좋아하는 것을 언제 아셨는지 미루에게는 알프스 야생과일로 만든 차를 주시며 얼마나 그니를 예뻐하시는지 나도 덩달아 흐뭇하다. ‘귀요미’ 미루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에게 사랑과 귀염을 듬뿍 받았으니 앞으로도 ‘이쁜짓’만 할 게다.


아씨시 가는 길에 오르비에토(Orvietto)에 들렀다. 살레시오 신부님들은 오르비에토에 ‘산파트리시오 우물’(pozzo di San Patrlzio)이 있으니 말 안 듣는 술란일랑 그 우물에 던져 넣어버리고 가라는 농담을 하신다. 이탈리아인들에게는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는 사건을 두고 ‘바닥모를 우물처럼’ 또는 ‘산파트리치오 우물처럼’이라는 표현을 쓴다.




응회암 절벽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천연의 요새여서 로마의 숙적인 에트루스키인들이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함락된 도시이기도 하다. 30 몇년 전 우리가 찾아본 모습 그대로의 오르비에토와 대성당(Duomo)이다.


1200년대 어느 사제가 볼세나를 지나며 미사를 드리다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한 마디로 과연 밀떡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할까 의심을 품었는데 그 순간 손에 든 면병이 살덩이로 변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있다.


피의 흔적이 선명한 ‘성체포’가 오르비에또 대성당 경당에 지금도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성당 경당은 프라 안젤리코와 시뇨렐리의 프레스코로 가득하고 특히 거기 그려진 '최후심판'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그림에 영감을 깊이 준 것으로 전한다.


골목마다 유적지들과 아름다운 가게들과 집집에 걸린 화분들이 아름다운 여인의 가슴에 꽂힌 코사지 같은 도시랄까... 마우리찌오라는 식당에 들러 멧돼지고기 칼국수와 양고기를 점심으로 먹는 호사를 치르고 아씨시로 떠났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본디부터 간직한 가난과 소박과 기쁨의 얼을 되찾아 주며 ‘하느님의 광대’를 자처한 프란치스코의 고향 아씨시. 우리가 늘 찾아가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이름이 하도 길어서 한국 신부님들은 ‘아프져?’라고 약칭한단다)의 순례자 집에 숙소를 마련한 터여서 수녀원 마당에 주차를 하고 수녀원 총경리 미리암 수녀님을 만났다.







드디어 에어컨이 나오는 방에 짐을 정리하고 우리 셋은 대성당을 방문하고 골목골목을 찾아보았고 보스코는 피곤한지 집에서 시에스타를 가졌다. 더구나 오늘 밤에는 3세기의 순교성녀 한 분의 축일이어서 미사에다 행렬에다 행사가 있어 저녁식사후 우리도 참석하고 구경하였다.


서기 290년에 순교한 알렉산드리아의 열다섯 살의 처녀 마르가리타는 워낙 빼어난 미모로 총독의 며느리감으로 뽑혔지만 결혼을 거부하다 그리스도신자라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순교했단다. 성녀의 초상화와 유해를 모시고 행렬을 지어 여러 신심회 회원들이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주악대를 앞세우고 하는 행진이어서 우리도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저역 노을에 비친 대성당과 그 앞에서 고개를 떨쿠고 선 프란체스코 기마상은 십자군(사실상 교황이 일으킨 강도떼였다)에서 패잔병처럼 돌아오며 부와 권력으로 부패해가던 당대의 교회에 절망의 신호를 보내는 모습처럼 얼비치고 있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