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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성적표' 법왜곡죄, 신고센터를 만들자
  • 조남숙
  • 등록 2026-10-02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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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검사와 수사관이 형사사건에서 고의로 법을 왜곡하거나 증거를 조작하면 처벌하는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가 2026년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3월 12일 공포와 함께 곧바로 시행됐다. 형량은 10년 이하 징역에 10년 이하 자격정지다. 판·검사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상식을 법문으로 새긴 첫걸음이었다.


시행 6개월이 지난 지금 성적표는 초라하다. 경찰청 집계로 9월 12일 현재 접수된 사건은 1002건이고, 수사 대상자는 1만 3953명이다. 이 가운데 725건이 불송치 등으로 종결됐고, 32건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갔으며, 245건이 수사 중이다. 혐의가 인정돼 검찰로 송치된 사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숫자의 두 얼굴


송치 0건은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다. 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고발이 대부분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그 둘을 구별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고발 대상 직군은 경찰관이 3971명으로 가장 많았고, 검사 961명, 법관 734명이 뒤를 이었다. 전체 인원의 58.1%인 8113명은 아예 법왜곡죄의 적용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4월에는 한 민원인이 경찰관과 검사 등 800여 명을 한꺼번에 고발한 일도 있었다. 사법기관에 대한 시민의 억울함이 그만큼 깊다는 증거다.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 수사기관은 법왜곡죄 고발을 '불복성 민원'으로 묶어 처리하기 쉬워진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증거가 조작되고 법이 비틀린 사건까지 같은 더미에 섞여 사라진다. 송치 0건이 고발의 질 때문인지, 수사의 의지 때문인지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 이것이 지금 법왜곡죄가 처한 진짜 위기다.


누가 수사하는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수사 체계도 문제다. 현재 검사가 고발된 사건은 공수처로 의무 이첩되지만, 판사가 고발된 사건은 경찰이 1차 수사를 맡는다. 공수처가 법왜곡죄를 수사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다. 법왜곡죄 조항이 공수처법 제정 이후 그 수사 대상 범위 안에 새로 끼워 넣어진 조항이기 때문이다.


이런 혼선은 예고된 것이었다. 본회의 직전 수정안을 급조하면서 적용 범위를 형사사건으로 좁히는 데만 집중했을 뿐, 수사 주체 규정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법왜곡죄가 상징에 그치지 않으려면 수사 주체를 명확히 하고, 판·검사를 수사할 독립적 역량을 갖추는 보완입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고소인은 보호받지 못한다


이 공백에서 가장 큰 부담을 지는 것은 고소한 시민이다. 무고죄는 허위임을 알면서 고소해야 성립하므로, 선의로 고소한 시민이 처벌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법률 조력 없이 쓴 고소장은 법왜곡죄의 까다로운 요건 앞에서 번번이 불송치 통지 한 장으로 끝난다. 억울함을 알리려고 고발 사실을 공개했다가 명예훼손 시비에 휘말릴 위험도 있다. 법을 바로잡으려던 시민이 좌절과 법적 위험만 떠안는 셈이다.


해외는 이미 이런 구조로 운영한다


독일은 1871년부터 형법에 법왜곡죄를 두어 왔다. 다만 법원은 이 죄를 법의 근본을 저버린 중대한 위반으로 좁게 해석해 왔고, 유죄 판결도 드물다. 판결에 대한 불만과 법의 왜곡은 다르다는 것이다.


영국은 판사비위조사청(JCIO)이 누구에게서나 온라인 신고를 받는다. 판결 내용이나 재판 진행에 대한 불만은 걸러 항소로 안내하고, 판사 개인의 비위만 조사하며, 징계가 내려지면 결과를 공개한다.


미국은 모든 주에 판사와 변호사, 일반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판사징계위원회가 있다. 판결상의 오류는 원칙적으로 징계 대상이 아니지만, 오류가 명백하고 중대하거나, 반복되거나, 악의에서 나온 경우에는 징계한다. 뉴욕주는 2021년 검사를 따로 감시하는 검사행위위원회를 만들면서, 위원 가운데 공공변호 경력자와 검사 경력자를 같은 수로 두고 조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게 했다. 텍사스에서는 무죄 증거를 숨겨 무고한 시민을 25년 가까이 복역하게 한 검사가, 시민단체의 끈질긴 추적 끝에 구금과 변호사 자격 박탈 처분을 받았다.


세 나라의 구조는 같다. 신고의 문은 넓게 열고, 불복과 비위는 엄격한 기준으로 가르며, 판단에는 법률가만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하고, 결과는 공개한다. 그리고 그 구조를 실제로 움직인 것은 기록을 모으고 추적한 시민의 힘이었다.


'법왜곡죄 신고센터'를 제안한다


이에 사법정의국민연대와 시민인권위원회는 '법왜곡죄 신고센터'(가칭) 운영을 제안한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홈페이지를 통해 법왜곡죄 관련 사건을 접수한다.


2. 자문변호사단이 1차 법률 검토를 한다. 사건이 법조문의 요건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오류가 명백하고 중대한지, 반복되는지, 악의에서 나왔는지를 살핀다. 자문변호사단에는 피해자를 대리해 온 변호사와 전직 판·검사를 함께 둔다.


3. 최종 판단은 추첨으로 구성한 시민검토단이 한다. 시민검토단은 변호사단의 의견서를 토대로 해당 사건을 법왜곡 의혹 사건으로 기록하고 공론화할지를 결정한다. 센터가 반려한 사건도 신고인이 재검토를 청구할 수 있다.


4. 요건을 갖춘 사건은 고소장 작성과 절차를 지원하고, 모든 접수 사건을 '잘못된 판결 백서'의 자료로 축적한다. 특히 불송치 결정의 사유를 모아 분석해, 어떤 사건이 왜 걸러지는지를 드러낸다.


5. 공개는 통계와 유형 분석 중심으로 하고, 실명은 기소나 유죄 확정 등 공적 기록이 된 경우에 한한다.


6. 상담은 소정의 비용으로 운영하되, 경제적 약자에게는 무료로 제공한다.


2번의 기준은 미국 판사징계위원회가 쓰는 것으로, 고의와 목적을 요구하는 우리 법왜곡죄의 형사 요건보다 넓다. 센터는 처벌 여부를 판정하는 곳이 아니라 공론화할 가치가 있는 사건을 가려내는 곳이므로, 형사 요건을 중심에 두되 징계 기준을 보조 잣대로 삼는 것이 적절하다.


신고센터는 수사기관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걸러내기 창구가 아니다. 법률 판단은 전문가에게 맡기되, 무엇을 공론화할지는 추첨으로 뽑힌 시민이 결정한다. 센터는 해마다 접수와 반려의 기록, 그리고 센터의 판단과 수사기관의 처리 결과를 나란히 공개할 것이다. 수사기관이 걸러낸 사건 가운데 시민이 문제라고 본 사건이 얼마나 되는지, 그 간극 자체가 법왜곡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정직한 지표가 될 것이다. 송치 0건이 고발의 질 때문인지 수사의 의지 때문인지, 그 물음에 답할 수단이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목표는 세 가지다. 시민이 법률 조력 없이 고발했다가 좌절하지 않도록 돕는 것, 법왜곡 의혹 사건의 유형과 패턴을 축적해 보완입법의 근거로 삼는 것, 그리고 수사기관이 법왜곡죄 고발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시민이 감시하는 것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시민검토단의 결정도 사법적 판단은 아니며, 센터가 문제라고 본 사건을 수사기관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구체적 판결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을 때는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이 따를 수 있으므로, 공개의 범위와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변호사단과 운영 인력, 시민검토단을 유지할 재정도 과제다. 그러나 이 한계들은 시민 감시를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감시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교하게 설계해야 할 이유다.


법왜곡죄를 살아 있는 법으로


법왜곡죄는 사법개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고발 1002건과 송치 0건 사이의 간극은 법 조문만으로는 메워지지 않는다. 수사 주체를 바로 세우는 입법이 한쪽 바퀴라면, 요건을 갖춘 사건을 가려내고 시민이 판단하고 기록하는 감시가 다른 쪽 바퀴다.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갈 때, 판·검사도 법을 왜곡하면 처벌받는다는 상식이 비로소 현실이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조남숙 : 사법정의국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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