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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 이기우
  • 등록 2025-06-20 12: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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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금요일 (2025.06.20) : 2코린 11,18-30; 마태 6,19-23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하늘에 대해 아름다운 시어로 묘사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고향인 하늘로 돌아감이라고 풀어낸 시인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입니다. 그는 상시적 계엄이 자행되던 유신 독재 시절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정신병원에서 지내기도 했으며, 생활고에 쫓겨 길거리를 방황하면서도 머지않아 다가올 죽음을 느끼며 이토록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를 남겼습니다. 신체적 고통과 경제적 가난을 초연하게 견디면서 이 고통과 가난이 가져다 줄 죽음조차도 하늘로 돌아가는 소풍으로 바라본 시인의 고결한 안목이 놀랍도록 경외스럽습니다.


하늘은 하느님께서 앉아 계신 자리, 즉 어좌(御座)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는 온 땅을 굽어보시고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을 고르게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도 하늘에서 왔고 또 언젠가 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인간의 고향이요 목적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계신 분, 우주를 조성하신 창조주를 '하늘님', '하느님'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부모님', '선생님' 등 윗사람에게 '~~님'이라고 높여서 부르는 우리 말 호칭의 존대 어법은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먼 옛날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이 제천의식(祭天儀式)은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식(天孫意識)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산에 묻혀 있는 커다란 바위에 구멍을 뚫고 잘라서 평지로 옮겨와서는 고인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어서 제사도 지내고 잔치도 벌였습니다. 한 해의 농사를 다 짓고 나서 거둔 수확물을 제물로 바치고 잔치를 벌인 것이지요.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고인돌 4만여 기가 한반도와 만주에 몰려 있습니다. 7만여 기에 달한다는 전 세계 거석의 절반이 넘습니다. 모두가 평등한 천손이기에 제사를 지내고 잔치를 벌일 때면 제관들이 입는 흰 옷을 모두가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불렸습니다. 


고인돌에는 별자리를 새겨 넣은 것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천문 관측 수준을 짐작게 하는 유적입니다. 제사를 봉행할 때면 청동 거울을 신물(神物)로 사용했는데, 이 거울의 뒷면에도 별자리를 정교하게 새겼습니다. 제사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백성이 밤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뜻을 묻곤 하던 명상 도구였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거울 앞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뒷면에 새겨진 별자리를 통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하고 명상을 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마태 6,20)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마다 재물을 탐내고 부질없이 땅에 그 재물을 쌓고 있던 이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마태 6,21)는 이치를 새기면, 보물을 하늘에 쌓으면 마음도 하늘에 가 닿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도 바오로도 그렇게 보물을 쌓았고, 20여 년에 걸친 선교여행에서 하늘에 마음을 둘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녔던 보물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벤야민 지파에 속하는 정통 히브리인이라는 혈통에만 있지 않습니다. 신앙의 족보상으로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정통 사도임을 자부하였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군중을 가르치시다가 그분 눈에 들어 사제의 연을 맺었지만, 바오로는 신자들을 박해하러 나섰다가 벼락을 맞고 박해자로서 설쳐대던 발길을 선교사로서 헌신하라는 발길로 돌려세우신 특별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스승이셨지만 바오로에게는 이미 하느님의 반열에 올라가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교우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일반적 표현 대신에 거의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부르곤 하였습니다. 혈통상 정통이라는 신분을 쓰레기처럼 여기고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 받았다는 자부심이라는 보물을 하늘에 쌓았던 것입니다. 


그가 지녔던 또 다른 보물은 학식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국제도시였던 타르수스에서 성장했기에 로마식의 국제교육을 받았습니다. 논리학, 수사학, 기하학 등의 교양은 물론 체력단련도 단단히 받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습니다. 열두 제자가 지니고 있지 못한 보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가말리엘이라는 이름난 율법 학자로부터 이스라엘의 율법 전통에 대해서도 정통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엘리트로서의 국제적이고 전통적인 교양과 학식을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쓰지 않았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하늘스런 목표를 위해서 씀으로써 하늘에 보물을 쌓았습니다. 


하늘도 여러 하늘이 있습니다. 바오로가 사도로서 바리사이들로부터나 기성 사도들의 수하(手下)들로부터, 또 로마 관헌들로부터나 해적들 및 거짓 형제들, 즉 가짜 교우들 같은 박해자들로부터 겪은 고생은 다른 어느 사도들도 겪지 않은 고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박해와 고생 덕분에 그는 사다리를 얻어 탄 사람처럼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가서 보물을 안전하게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으로 출세를 하거나 통속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는 못했지만, 하느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축복을 받은 선교사이며 사도로서 살아갈 수 있었고,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하늘에 쌓은 이 보물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쳐주시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 나라를 그분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도 모자란 그들이 무시당하고 소외당해서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그분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나서는 양치기처럼 그들의 요청에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전하던 당시,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는”(1코린 22) 당시 그리스 문화의 꽃을 피웠던 코린토에서,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1코린 1,26). 


사실 그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러 갔을 때에 그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1코린 2,3). 그렇지만 바오로는 그 신자들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어서,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는(1코린 3,1-2) 모성애를 발휘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성애를 발휘해서,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일렀으며(1코린 4,14), 자신의 사도직 자격을 분명하게 내세웠습니다(1코린 9,2). 다른 이들에게는 사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도 고생을 했던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분명히 더 그러했음을 강조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면서 천막 만드는 노동을 하면서 그 어떠한 신세도 지지 않고 생활비와 활동비를 스스로 벌어서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대가 없이, 보수도 없이 거저 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도적 명예로 삼았습니다(1코린 9,18). 옥살이를 해도, 매질과 채찍을 당해도,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겨도 그 명예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1코린 11,23-25).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배신의 위험, 이민족의 박해를 받아야 했던 위험, 심지어 가짜 교우의 위험, 잦은 밤샘과 굶주림에다가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1코린 11,26). 그 명예가 그의 마지막 보물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바오로를 시기하고 방해하려던 자들은 본의 아니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가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눈은 몸의 등불”(마태 6,22)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듯 보물을 하늘에 쌓고 그 하늘에 마음을 두는, 복음의 진리를 알아보는 눈을 뜨면, 다른 이들에게도 그 밝은 눈으로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고, 그 쌓은 보물을 나누어 주며 다른 이들도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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