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내 자식 건들었다간 너흰 죽어!”
  • 전순란
  • 등록 2015-07-18 10:37:17

기사수정

2015년 7월 16일 목요일, 맑음


바티칸 박물관에 가려고 아침 일찍 움직인다. 아침미사에는 원장신부님 가족이 함께 하여 신부님 일곱에 신자가 일곱이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한 분을 빼고는 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머리가 흰 분들이지만 얼굴 표정만은 사춘기에 막 들어선 젊음이 여전하다. “하느님의 제단으로,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시편 43,4) 하는 젊음이다.


복음서를 봉독하는 팔순 루이지 신부님의 그 쩌렁쩌렁하고 투명한 음성에 덜 깼던 잠이 놀라 달아날 지경이다. 미사 중 성무일도 ‘아침기도’를 드리는데 우리는 핸드폰에서 ‘가톨릭뉴스’에서 기도문을 찾아 올려 우리말로 겨우겨우 따라하는 중이다.




▲ 우리가 묵는 `성타르치시오 수도원`은 박해시절 성체를 옮기다 순교한 소년순교자 타르치시오 이름을 딴 곳인데 길가에는 터무니없이 큰 성상이 서 있다


원장님이 시칠리아분이고 방문 온 분들도 시칠리아 사람들이어서 그분들의 밝고 쾌활한 말씨가 조용했던 식당의 고요를 흔들어댄다. 오히려 우리 넷은 너무 조용한 편이지만 미루의 사랑스런 미소와 이사야의 차분한 얼굴에 모든 회원들이 호감을 갖고 대해주어 고맙다. 


노인들이어서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한 분들이라 원장님의 팔에 ‘톡톡 치료’를 설명해드리는 자리에도 모두가 들여다보면서 호기심을 보인다.



경리 알퐁소 신부님이 도시락으로 마련해 주신 빵 봉지를 챙겨서 10시에 바티칸으로 떠났다. 대사님이 전직대사에게 각별히 배려해주신 덕분에 박물관 특별입장이 가능했다. 세 사람을 박물관 입구에 내려주고 나는 친구 카르멜라를 한 번 더 보려고 오스티아로 달렸다. 그니가 장례식에 간 길이어서 남편 도미니코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큰아들 막시의 두 아들 루카와 피에트로도 방학 중이어서 할아버지 집에 와 있었다.


둘 다 아빠를 빼닮았지만 특히 큰애는 막시 어렸을 적과 너무 똑같아서 나를 깜작 놀라게 했다. “숙모를 빼놓고 다 닮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자녀가 부모와 집안을 닮는다는 것은 친척들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라는 비결로 하느님이 새겨주신 것임에 틀림없다. 


하느님께서도 당신 닮게 사람을 만들어 놓으시고서는 “내 자식 건들었다간 너흰 죽어!”(“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창세 9,6)라고 하시지 않던가?


평소도 방학 때도 부모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도메니코와 카르멜라가 손주들을 돌보고 점심과 간식을 챙겨 먹이는데 이 한더위에서 음식을 하는데도 애들의 음식 가탈에도 전혀 싫은 기색이 없다. 시어머니가 약간 떨어진 양로원에 계시는데 며느리 카르멜라는 매일 시어머니를 찾아뵙는다.



아침에 시모네의 딸 쥴리아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려고 작은아들네 집에 갔더니만 네 살짜리 손녀가 잠에서 막 깨어나 제 기저귀를 뽑아 할머니에게 던져 주면서 어른들 말을 흉내내어 “엤다!”(eccolo!)하고서는 “하부이는 씻어 줘!”하더라나. 


그런 짓거리마저 귀엽다고 나한테 자랑삼아 얘기하는 카르멜라를 보면서 가족의 끈끈한 유대, 그것이 이탈리아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근간임을 알 수 있다. “돈! 돈! 돈!” 하다 그토록 급격하게 가족과 효도가 붕괴되어 버린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박물관 관람이 끝나간다는 보스코의 전화를 네시경에 받고 카르멜라네를 떠나 바티칸으로 달렸다. 6시간 넘게 교수님의 집중 강의를 견뎌해야 했던 미루네 불쌍한 부부를 싣고 카타콤바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더 구경시켜주고 설명해 주려던 보스코의 정성도 도심 42도의 불볕 더위를 이겨내지는 못했을 게다.


그래도 해가 지자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갈매기 떼를 거느리고 간간이 카타콤바 언덕을 찾아와 잠시 시원한 기운을 흘리고 간다. 저녁식사 후 미루네랑 치프러스 길을 걸으며 로사리오를 함께 바쳤다. 네 사람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박쥐들의 소리 없는 날개짓 사이로 날아오르면서 “이제와 우리 죽을 때” 빌어주실 어머니가 계셔서 든든하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