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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 도덕적 판단을 제공해야 할 의무
  • 이기우
  • 등록 2023-06-06 14: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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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화요일(2023.6.6.) : 토빗 2,9-14; 마르 12,13-17


오늘 독서인 토비트서는 기원전 2세기경에 헬레니즘 문화에 물들어 자라나는 유다의 젊은 세대에게 유다의 종교 전통을 일깨워주고자 쓰여졌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집회서가 교회의 집회에서 들려줄 수 있을 정도로 공식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면, 토비트서는 가정에서 읽고 들려줄 수 있는 문학적인 가르침입니다.


율법에 충실하던 두 유대 집안이 허물없이 살아왔는데도 크나큰 불행을 겪는다는 구도 설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당대 상황을 반영하면서, 이 두 집안을 대표하는 토비트와 사라의 기도를 들으신 하느님께서 라파엘 대천사를 사람 모습으로 파견하여 동행케 하심으로써 그들을 치유해 주신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눈을 뜨게 해 준 치유 기적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토비트서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온갖 불행과 시련을 겪는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에 눈을 뜨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읽힙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다음 날에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께 앙갚음하려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올무를 씌우려다”(마르 12,13) 판정패를 당한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바리사이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었고 그 반대로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의 간접통치에 부역하고 있었는데, 정치적 앙숙인 이 두 패거리를 한데 묶어 예수님께 보내서 세금 문제를 여쭈어보게 한 것입니다(마르 12,14ㄹ).


그런데 그들이 올무를 씌우기는커녕 아무 소리 못하고 물러서야 했던 배경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형식논리상 함정을 피해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하고 명쾌하게 대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정교분리(政敎分離)’ 노선에 따라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사목헌장, 76항)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였습니다. 국민의 공동선에 봉사하기 위한 정부의 자율성을 교회는 존중하며, 또한 종교의 자유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자율성을 요구합니다.


또한 정당하게 설립된 정당이라면 그 어느 노선을 내세우는 정당이라도 교회는 신자들에게 가입하거나 활동할 자유를 인정하지만, 성경과 교리에 어긋나는 정책을 펴는 정당에 대해서는 비판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선을 넘어 최고선의 영역에 해당되는 정치 활동의 종교적 도덕적 영향과 관련해서는 예외입니다. 그 최고선의 가치란 요한 23세 교황이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가르치는 대로,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정권이 공동선에 대한 봉사를 넘어 이 최고선 가치들을 침해하려 들거나 억압하는 경우에 국민 저항권이라는 기본권에 근거하여(헌법 전문; 가톨릭교회교리서, 2243항) 교회의 도덕적 판단에 따라 정부의 정책을 반대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이와 반대로 정권이 이 최고선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바람직한 정책을 펴고자 하는데 기득권 세력이 부당하게 반대를 하는 상황에서는 역시 교회의 도덕적 판단에 따라서 정부를 지지하고 옹호할 권리도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톨릭교회는 국민들과 시민사회의 여론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수행하는 정책들이 지닌 최고선의 향방에 대해서도 정당한 관심을 가지고 도덕적 판단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이와 함께 요청되는 것이 언론에 대한 도덕적 판단입니다. 언론은 정부가 정책을 통해 행사하는 공동선의 내용과 최고선의 향방에 대해 국민의 여론을 형성시켜주기 위해 설립된 민간기구이지만, 그 정치적 영향력에 있어서는 행정과 입법과 사법에 이은 제4부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만큼 그 공공적 성격이 막강합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해서는 독자나 시청자의 개별적 감시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견제나 감독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어느 정권이든지 간에 언론과의 마찰을 줄여서 정책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데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정부와 달리 언론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독자요 시청자의 입장에서, 오로지 공동선과 최고선이라는 가치 판단 기준에 의거하여 공동선과 최고선에 대한 교회의 견해를 공식적인 기회를 통해 표명함으로써 ‘국민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갈수록 영향력이 커져 가면서도 아무런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고 있는 사회 매체에 대해서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론은 오늘날 각계각층의 시민 생활에 커다란 영향력과 권위를 행사하고 있으므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이 분야에서도 정의와 사랑의 의무를 완수하여야 한다. 따라서 사회 매체의 힘으로도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전파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거룩한 목자들은 말씀을 선포하여야 하는 통상 직무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이 분야에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도록 서둘러야 한다”(사회매체교령, 8.13항).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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