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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정치
  • 이기우
  • 등록 2023-06-02 1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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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2023.6.3.) : 집회 51,12-20; 마르 11,27-33


오늘 독서인 집회서 51장의 말씀은, 오늘 교회 전례가 기억하는 19세기 우간다의 순교자들과 18세기 박해시대 교우촌에서 신앙을 증거한 한국 신앙 선조들의 삶에 적중하는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정치를 실현하시려던 바를 미리 내다본 바였습니다.


“사실 나는 지혜를 실천하기로 결심하였고, 선을 추구해 왔으니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내 영혼은 지혜를 얻으려 애썼고, 율법을 엄격하게 실천하였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손을 펼쳐 들고, 내 영혼을 지혜 쪽으로 기울였고, 순결함 속에서 지혜를 발견하였다”(집회 51,18-20).


공생활 내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신 이유는 당시 대사제와 사두가이파 사제들이 장악하던 그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유다교 제사가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닮도록 사람을 창조하셨기에, 사랑을 행함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다가올 수 있다고 가르치셨고, 이를 실천하시고자 가난하고 병들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당신의 이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당신의 이웃을 삼는 데 있어서 국적이나 종교, 인종이나 재산 등 그 어떤 제한도 두지 않으셨으며,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그들을 마치 하느님을 섬기듯이 정성스레 돌봄으로써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의 범주 외에 사랑의 방식에 있어서도, 둘이나 세 사람이라도 마음을 모아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사랑을 행하면(마태 18,29), 당신이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를 다가올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즉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는 일까지도 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하셨습니다(요한 14,12).


이렇듯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하느님 나라의 정치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계승되어야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출 수 있대서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현존하시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통한 사랑의 실천이 하느님 나라가 다가와서 세워질 수 있게 하는 절대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앙은 부활 신앙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실천하신 하느님 나라의 정치였습니다.


무릇 정치란 나라의 공동선을 보살피는 일입니다. 세금을 걷는 조세나 국민의 일상생활과 활동을 돕는 행정은 내치(內治)라 하고, 영토와 국민을 지키는 국방이나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외교는 외치(外治)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좁은 의미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정치는 최고선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최고선인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와 같은 가치가 무너지면 내치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의 정치는 최고선에 입각해서 공동선을 아우르는 모범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고선은커녕 공동선을 파괴하는 억압과 착취의 세상 정치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시며,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구약성경에 예고되었던 하느님 나라의 약속이 나자렛 예수에게서 실현되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섬김과 나눔으로 가르치신 ‘예수의 정치’를 그대로 계승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신자들이 깨달은 예수 부활 체험의 실체가 공동생활이었음을 증언한 기록입니다(사도 2,42-47; 4,32-37). 그래서 그들이 예수 부활을 전했다 함은 공동생활을 전파했다는 뜻이었고, 이것이 초대교회 신자들이 계승한 섬김과 나눔의 정치였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 신자들은 교우촌을 세워 예수의 정치를 실현하였습니다. 엄격한 무신론인 주자학을 유교로 격을 높여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왕조에서, 18세기 무렵에 일어난 천주교는 피지배층이 지배층과 다른 독자적 세계관을 내세우며 저항했던 민중운동이었고, 이는 반만년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저항운동이었으며, 백년 동안(1785~1886년)이나 비폭력으로 저항하여 끝내 가치를 실현한 민중혁명이었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자생적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평신도들이 지도자로 나서서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는 성사활동을 하여 입교자를 수천 명으로 늘리는 놀라운 선교성과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왕조가 전면적인 박해를 가하자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자 자발적으로 전국에 백팔십여 군데의 교우촌을 세웠습니다. 갖가지 잔인하고 혹독한 고문을 가한 박해가 백년이나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해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여성과 천민 계층을 중심으로 새 입교자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관변기록상으로만 2천여 명이요, 신자들의 구전상으로는 2만여 명이 순교한 이 조선왕조 사상 최대의 사태에서, 잔학한 고문에 못이겨 ‘입술배교’로 풀려난 배교자 교우들은 자책하는 마음으로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신앙을 전수했던 덕분에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신자들이 치명하여 희생과 공백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박해 속에서 자발성과 주체성, 성사에의 열망, 진리에의 충실성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세웠던 섬김과 나눔 정치의 실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나라의 정치가 어지럽고, 교회에서도 신앙의 열기가 착 가라앉아 있습니다. 이러할 때일수록, “사실 나는 지혜를 실천하기로 결심하였고, 선을 추구해 왔다”(집회 51,18-20)던 독서 말씀처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를 다가오게 하며 그 나라를 자신의 삶과 일에서 세워나가는, 나눔과 섬김의 정치, 공동생활로 예수의 정치를 계승해야 합니다. 우리네 여건이 아무리 척박하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직면하셨던 여건이나 우리 신앙 선조들이 당한 박해상황에는 비할 수 없으리만치 편하고 좋습니다.


교우 여러분, 각자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복음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정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풍기는 향기와 발산하는 매력을 도구로 삼으시어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펼치실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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