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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헌 주교, “한국 교회를 대표해 베트남 교회에 사죄한다”
  • 강재선
  • 등록 2023-02-13 21:37:51
  • 수정 2023-02-21 17: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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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베평화재단 평화기행단과 응우옌 티탄 씨 (사진 = 한베평화재단)


베트남을 방문 중인 천주교 의정부 교구장 이기헌 주교가 “한국 가톨릭교회를 대표해 베트남 가톨릭교회에 사죄한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응우옌 티탄(62) 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티탄 씨의 손을 들어주고, 한국 정부가 티탄 씨에게 3천여만 원의 손해배상금 및 이에 따른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사법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잔혹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됐다.


응우옌 티탄 씨는 퐁니·퐁녓학살사건 피해생존자다. 1968년 2월 12일, 사건 당시 8세 어린이였던 응우옌티탄은 한국군의 학살 피해로 복부에 심각한 총상을 입고 극적으로 구조되었으며, 그의 가족 5명이 목숨을 잃는 피해를 당했다.


2013년부터 한국 시민들을 상대로 증언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5년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며, 2018년에는 베트남시민평화법정의 증인으로서 증언대에 섰고, 2019년에는 청와대를 방문하여 103인의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유가족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1심 승소 판결 이후인 9일, 아시아 가톨릭 매체 < UCANEWS > 는 교구 사제 12명과 함께 북베트남 랑손-까오방(Lang Son-Cao Bang) 교구를 친선 방문 중인 이기헌 주교가 미국 주도하에 벌어진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한국군의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친선 방문은 의정부교구에서 베트남 노동자 사목을 담당하는 응우옌 반 도안(Nguyen Van Doan) 요셉 신부가 기획하여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기헌 주교는 의정부교구 베트남인들과 성탄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 등 이전부터 베트남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해당 매체는 “한국군이 저지른 잔혹행위에 관해 한국 주교가 최초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사과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기헌 주교의 사죄는 대외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서 벌인 잔혹 행위를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 2018년 3월, 퐁니·퐁녓 학살 위령비에 참배하고 있는 강우일 이사장 (사진 = 한베평화재단)


한편, 그동안 한국 시민사회단체 차원에서는 한국과 베트남의 상처와 기억을 연결하여 서로의 고통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2016년 9월에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고자 하는 뜻을 담아 비영리 평화운동단체 < 한베평화재단 > 이 설립됐고, 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 한베평화재단 >은 1999년, 한국의 수많은 개인과 단체들로부터 시작된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을 계승하고 한국과 베트남이 겪은 전쟁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국제평화조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해왔다.


판결 후, 한베평화재단을 비롯한 <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 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의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한국 정부는 전향적인 태도로 베트남전 진실과 마주하라’는 입장문을 내고, “오랜 시간 기다렸던 평화의 소식”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이 베트남전쟁의 참전국이었음을 명백히 자각하는 동시에, 민간인학살의 가해책임을 국가에 묻는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 1심 승소는 역사적인 판례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 차원에서 민간인학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책임을 언급하는 일은 없었고, 베트남 또한 승리의 역사 속에서 민간인학살이라는 ‘공적 없는 죽음’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회피해온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번 1심 승소의 사법적 판단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 정부의 성의 있는 대응과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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