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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시기, 우리가 기다리는 빛은…
  • 이기우
  • 등록 2022-11-30 20: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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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간 목요일(2022.12.1.) : 이사 26,1-6; 마태 7,21.24-27


대림 시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빛은 그저 어둠을 비추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세상 현실을 밝히 보게 만드는 평면적이고 정적인 기능만 갖춘 게 아닙니다. 오류의 어둠을 사라지게 만드는 진리의 빛은 불의하게 쌓아올린 모래성을 헐어 버리고 정의의 반석 위에 한 층 한 층 견고하게 쌓아올린 집을 세우는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래성과도 같았던 바빌론의 탑을 허무시고 반석 위의 집과도 같아야 할 새 예루살렘의 도성과 성전을 세우시는 역동적인 빛이십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심정의 역사적 차원을 마치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처럼 노래합니다. 견고한 성읍, 든든한 성벽과 보루를 세워주실 하느님께서 오실 수 있도록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민초들이 성문을 활짝 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만스럽게 스스로 높인 자들의 도시를 하느님께서 헐어 버리시고 먼지 위로 내던지시면 가난하고 힘없다고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이들의 발길이 그 도시의 폐허를 짓밟으리라는 놀라운 역사적 상상력을 남유다왕국의 지친 동족들에게 불어 넣고 있습니다. 이 또한 바빌론의 몰락을 연상케 하며 새 도읍 예루살렘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보다 훨씬 현실감 있게 하느님을 기다려야 할 대림의 행동을 촉구하십니다. 매사에, 그리고 평소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슬기로운 이들이라는 것이며, 입으로는 ‘주님, 주님!’하고 경건한 척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반대로 자기의 뜻만을 앞세운 사람들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교만과 욕망으로 지은 바벨탑은 심판의 비바람이 닥치면 여지없이 무너지기 마련이지만, 겸손과 성실로 쌓아올린 새 예루살렘 도성은 심판의 비바람에도 끄덕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인들의 오물을 씻어내고 날려버려서 역사 안에서 우뚝 솟아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 말씀은 개별 인생들에 있어서나 인류 전체의 문명에 있어서 모두 관통하는 진리를 밝혀주고 있어서 마치 현미경으로 사물을 미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처럼 또는 망원경으로 먼 곳을 끌어당겨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개인들의 현실이나 역사의 흐름을 보게 하는 계시의 빛입니다. 


실제로 바빌론은 기원전 18세기로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약 1,500년 간 아시아 서방을 다스렸던 당시 세계 최대의 문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산물은 페르시아 전쟁의 패배 이후 주도권을 상실하고, 뒤이어 일어난 핼레니즘 문명과 로마문명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특히 로마는 지중해 전반에 걸쳐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세 대륙의 접점을 다스리던 제국으로서, 기원전 27년에 일어나서 동로마제국이 이슬람세력에게 멸망할 때까지 역시 약 1,500년 간 존속한 유럽의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서기 1세기경에 로마제국에 의한 박해를 받으면서 이 로마문명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었으므로 ‘로마’를 또 다른 ‘바빌론’으로 묘사하였고,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에 입각하지 않은 ‘바빌론’이 순식간에 사막의 먼지로 사라졌듯이 ‘로마’ 역시 그러할 것임을 암시하였습니다. 


이미 구약성경 시대의 말기에 다니엘에 의해서도 예언된 바 있었던 내용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세워진 문명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빌론 제국 임금 네브카드네자르 2세가 꾼 꿈을 다니엘이 해몽한 내용에 첫 번째 나라가 바빌론이요, 마지막 네 번째 나라가 로마였던 것입니다(다니 2,31-45). 그리고 다니엘에 이어 사도 요한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린 로마에 이어 출현할 나라와 문명은 하느님 나라임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이래로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사랑의 문명을 향하여 지난 2천 년을 흘러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한 문명의 설계도를 원래대로 밝혀내고자 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로 이 복음화 제3천년기에 ‘예수의 선교’를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 1항). 


인류의 역사는 신체가 진화되어온 구석기시대 수백만 년과 의식이 진화되어 문명들을 세우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1만 년 그리고 역사시대 5천 년을 다 합쳐도,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구를 조성하신 135억 년에 비하면 1만분의 1도 되지 않는 짧은 찰나(刹那)의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뜻을 비로소 실현할 수 있게 된 이 사랑의 문명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신 것이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오신 것입니다. 신체의 진화와 의식의 진화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영성의 진화를 향하여 준비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대림시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빛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어둠을 보게 해 주는 평면적이고 정적인 빛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문명이라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이를 이룩할 수 있는 새 사람을 창조하는 입체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빛이라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네 인생과 미래의 희망을 하느님의 반석 위에 짓는 슬기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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