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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인들 사이에서 증거해야 할 의덕 - [이신부의 세·빛]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12-23 13:45:27
  • 수정 2021-12-23 13: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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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2021.12.24.) : 2사무 7,1016; 루카 1,67-79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독서와 그 약속이 실현된 데 대한 감사로 거룩함과 의로움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약속의 복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독서는 시나이 계약을 보충하는 시온 계약이고, 복음은 즈카르야가 노래하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이 두 꼭지의 말씀 사이에는 매우 깊은 통한의 골짜기가 파여 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고 나서 하느님께서는 파라오 밑에서 우상을 섬기던 이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고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내용은, 하느님께서 히브리인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보호해 줄테니 히브리인들은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호와 섬김의 조건으로 이루어진 이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중재인으로 해서 시나이 산에서 맺으셨다 하여 ‘시나이 계약’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시나이 광야에서 40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250년을 지낼 무렵까지 이스라엘을 이끌어주신 목자이시오 다스리시던 왕은 오직 하느님뿐이셨습니다(시편 23편). 하느님만을 목자요 왕으로 모실 수 있으려면 그 신앙이 매우 충실하고 성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판관이던 사무엘 시절에 신앙이 극도로 쇠약해진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에게도 다른 이방민족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졸랐고 결국 하느님께서 양보하셔서 왕국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그때 하느님께서는 왕을 세우되 당신의 뜻을 대리하여 다스리도록 다짐을 받는 의식으로 축성된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울이 첫 왕위에 올랐고, 우여곡절 끝에 그 다음에 즉위한 다윗이 하느님께 죄송스런 마음에 성전을 세우려고 하자 하느님께서 또 다시 사양하시면서 맺어주신 계약이 오늘 독서의 내용입니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6). 다윗의 궁전이 세워진 시온 언덕에서 이 약속의 말씀이 내려졌기에 ‘시온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그 당시까지처럼 다윗과 그리고 그 후계자들이 시나이 계약 정신을 충실히 지킨다는 묵시적인 전제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성전보다 신앙이 더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세웠지만 그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계약 조건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나라가 갈라졌고 백성은 포로로 잡혀 끌려가거나 흩어졌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동안 다윗과 같이 하느님을 섬기고 시나이 계약에도 충실한 지도자는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통한의 역사를 잘 알고 있던 즈카르야 사제는 아나빔으로서 줄곧 열심히 기도해 왔으나 막상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시기로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약속을 실현해 주신 데 대해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의 찬송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당신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루카 1,68). 


그러니까 이 찬송은 자신에게 태어난 아들 요한이 아니라 메시아 탄생을 앞두고 바친 찬송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도 애초에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해 드린 대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겠다는 다짐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루카 1,73-74). 실로, 성덕과 의덕의 삶이야말로 약속을 실현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로 바쳐야 할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에게 오실 메시아가 오실 길을 닦을 예언자로 늘그막에 얻게 된 자신의 아들이 선택된 데 대하여(루카 1,76), 즈카르야는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뿐이었고 그래서 아들에게 진작부터 그의 소명을 일러주고 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했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소명입니다(루카 1,77). 


우리도 매일 아침 성무일도에서 찬미가로 바치는 이 기도는 그 옛날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만을 기억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 앞에서 의롭고 거룩할 수 있는 덕행을 궁리하자는 다짐이기도 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마치 어제 미사에서 들었던 성모 찬송을 매일 저녁 성무일도의 찬미가로 바치면서 공동선에 헌신함으로써 하느님의 최고선이 드러날 수 있도록 다짐하는 것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성서가 상기시키는 과거 역사는 오늘날 여전히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손길과 발자취를 알아보라는 촉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이미 하느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바쳐 드려야 할 성덕은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 드리워진 하느님의 손길, 즉 신성을 알아보는 데에 발휘되어야 하며, 우리가 동시대인들 사이에서 증거해야 할 의덕은 그 신성에 따라 우리도 메시아적 백성으로서의 의로움을 실천하되 그저 자기 몫을 차지하려는 세상의 정의 수준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몫을 이웃에게 되돌려주려는 하느님의 정의 수준으로 행해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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