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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소녀가 낡은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 놀듯이...
  • 전순란
  • 등록 2015-07-09 11: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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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7일 화요일, 맑음


그니에게는 아이가 없다. 물론 남편에게도. 안 낳았는지 못 낳았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제 산장에 갔을 때 그니가 ‘마르쿠스!’라고 크게 부르자 산장집 커다란 개가 껑충껑충 달려왔고 그니 앞에 벌렁 누서 낑낑거리며 온갖 재롱을 부린 것으로 미루어 후자 같다. 


심지어 애견용 비스켓을 배낭에서 꺼내 개에게 주는가 하면 핸드폰을 열어 집에서 기르다 얼마 전에 죽은 개의 사진을 보여주는 행동으로 미루어 더 그렇다. 우리가 어딜 찾아가더라도 사람들 줄 선물은 생각하지만 그집 강아지까지 챙기지는 않고, 우리 나이면 핸드폰이 손주들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지만 강아지 사진이 실려 있지는 않은데....


▲ 우리가 묵는 바로 옆집, 티찌아나네



 

그리고 오늘 '마르쿠스'의 기다란 얘기를 다시 들려준다. 산장 가까운 소 농장에서 크던 강아지란다. 그런데 산장 주인 임마누엘라 아줌마가 일하러 올라갈 적마다 산장 문 앞에 쭈구리고 기다리다가 꼬리를 치고 바짝 마른 몸피에 먹을 것을 주면 정신없이 먹곤 하더란다. 식당일이 끝나고 퇴근을 할라치면 꼭 따라오며 짖더란다.


소마다 귀에 번호표를 매기는 곳이어서 소목장 주인에게 개 얘기를 했더니만 “그 더러운 개새끼 갖다 버리든 뭐하든 난 관심 없수.” 하더란다. 그래서 데려다 키웠는데 처음엔 얼마나 겁이 많은지 주인이 움씩만 해도 몽둥이질당할까 움찔하더니만 이제는 정상이 되어 산장에 올라오는 손님마다 꼬리치며 맞는단다. 고아원에서 구박과 눈치 속에 자라다 좋은 양부모를 만나 아이가 피어나고 전혀 딴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그니의 얘기...


그니가 키우던 개, 우리가 3년전에 본 세퍼드가 작년에 죽었다는데 거실 앞 남쪽 창밑에 무덤이 만들어져 있고 개가 갖고 놀던 고무닭이며 여주인의 신발짝이며 고무공이 레오의 묘비 옆에 놓여 있다.

 

“우리 레오가...”라는 말이 그니의 입에 붙어 있어 마치 “우리 죽은 둘째가...”하는 엄마의 어조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가난한 소녀가 낡은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 놀듯이, 우리 여인들은 뭔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어라!”(F.모리악)라던 문인의 탄식 그대로다.




저녁산보를 하면서 동네를 돌다보면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네 몸피보다 커다란 개들을 기른다. 우리야 남은 음식 처리가 아까워 똥개든 뭐든 키우다 엔간히 자라면 ‘개파쇼’에게  넘겨버리는 행태와 사뭇 다르다.


우리 호청 빨래를 그집 세탁기에 돌리는 동안 티지아나와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남편 루카가 들어온다. 마을 묘지에 가서 부모님의 묘소 꽃병에 물을 갈아주고 오는 길이란다. 공동묘지가 동구 밖에 있고 루카처럼 가족이 매일 찾아가 화초에 물을 주거나 새로 꽃을 꽂거나 화병의 물을 갈아주거나 한다. 


자식이나 남편을 앞세운 과부들은 반드시 검은 옷을 입고서 날마다 무덤을 찾는다. 밤이면 무덤에 켜놓은 촛불이나 꽃전등으로 묘지 전체가 환해서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문화이고 죽음과 퍽 친숙하게 지내는 풍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집 세탁기에서 말려온 시트와 옷가지를 오후에는 다림질했다. “이열치열! 네가 더우면 얼마나 더우랴?” 싶어 35도의 한더위에 다리미질을 하고 뒤뜰 채소밭에 물을 주었다. 여기도 가물만큼 가물어 블루베리가 익기도 전에 지루 떨어지고 아스파라가스는 가늘디가는 허리를 펴지 못하고 시들어간다. 저녁나절에 보니 텃밭의 채소들이 훨씬 싱싱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스는 디폴트를 맞았고 국민투표는 IMF에게 “노!“라는 선언을 했다. 2000억 유로의 빚을 진 나라에서 800억 유로가 스위스 비밀금고로 도피해 있다니! 멕시코, 일본, 한국, 영국에 뒤이어 이제는 유럽을 하나씩 먹어치우는 미국과 월가의 검은손이 유럽에서 어떤 결말을 볼지.... 


주식투자를 이용해서 소수 투자가들과 대기업이 국가경제를 독점하고, 그런 대기업들의 주식을 모조리 장악하는 세계경제를 ”살인경제(殺人經濟)!“라고, 그걸 용인하는 크리스천들을 ”돈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라고 용기 있게 지탄하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남미 순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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