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사람들이 달라진 이유
  • 이기우
  • 등록 2021-04-09 18:18:52
  • 수정 2021-04-09 18:19:35

기사수정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2021.4.10.) : 사도 4,13-21; 요한 16,9-15



▲ ⓒ문미정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지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세 1,26). 그리고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도록,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창세 2,7)습니다. 


어둠의 혼돈(창세 1,2)과 뱀의 유혹(창세 3장) 속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을 가장 비슷하게 닮은 사람을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내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루카 1,35) 마리아를 덮음으로써 그 사람,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뒤덮고 있던 ‘어둠의 혼돈’과 ‘뱀의 유혹’을 몸소 겪으시며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서른 살이 되실 무렵부터 3년 동안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에서 그리 하신 결과, 열두 명 남짓한 제자들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어둠의 혼돈’을 없애시고 ‘뱀의 유혹’도 이겨내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9,22). 예수 부활로 완성된 창조의 과정이 한 마디로 이러하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아직 ‘어둠의 혼돈’ 속에 머물러 있었고, ‘뱀의 유혹’도 여전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불신과 완고한 마음’(마르 16,14)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것을 씻어내게 한 힘은 발현하신 예수님께서 복음선포의 사명을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모든 유다인도, 모든 사람들만도 아니고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주신 사명은 결국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사람으로 창조하시겠으니, 그 일꾼이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달라지게 한 힘은 예수님의 발현이고, 그분이 그 제자들을 믿어 주시고 부여하신 복음선포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힘을 얻고 믿음이 생긴 제자들은 사도가 되어 예루살렘에 모인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러 나아갔습니다. “무식하고 평범한” 그들이었지만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사도 4,13.20).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던 유다 지도자들이 죽일 것처럼 위협하는 그 앞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더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라고 당당하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담대한 믿음을 지닌 사도로 달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렇게 배짱있게 나와도 그 권력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손도 댈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담대한 믿음을 통하여 태생 불구자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셨고, 이 기적을 본 군중이 무려 5천 명이 넘게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유다교 권력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은 세례 받은 5천 명 이상의 유다인들이고, 그 유다인 군중이 빌라도의 예수 재판 때와는 달리 사도들을 지지하며 주목하게끔 달라지게 한 것은 사도들이 베푼 기적 때문이었습니다. 요컨대, 제자들을 달라지게 한 예수님의 발현과, 군중을 달라지게 한 사도들의 기적이 복음선포의, 더 나아가서는 새 창조의 원동력이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요? ‘어둠의 혼돈’을 방불케 하는 ‘불신과 완고함’이 사라졌을까요? ‘뱀의 유혹’은? 또 발현과 기적은 없는 걸까요? 오늘 복음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서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한 다른 제자들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불신과 완고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발현을 체험하고서도 요지부동이었던 그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발현과 기적을 연결해 주는 고리는 ‘담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러했거니와 오늘날에도 그러합니다. 


사도들을 주춧돌 삼아 세워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현을 성사로 거행합니다. 그리고 성사에서 예수님을 만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서 사도직 활동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간병간호와 의료, 정의구현과 사회교리 실천 등 현 시기 우리나라 현실에서 크게 혹은 작게, 보이게 혹은 숨어서 이루어지는 기적같은 애덕 실천은 차고 넘칩니다. 


문제는 발현이나 기적이 아니라, 담대한 믿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성사의 증인들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 일임을 철썩같이 믿는” 기적의 마중물이 필요하지요. 


어제의 복음과 독서에서 묵상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153의 기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가지 “오른쪽 깊은 어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행동’이 필요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를 말씀하셨던 배경은, 그 양과 같이 양떼로부터 소외된 존재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려서 삶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이시면서도 굳이 성경 말씀을 상기시키신 이유는 믿음의 뿌리를 되찾아야 줄기도 자라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힐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라는 하느님 백성도 그렇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