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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라고? IS한테 걸리면 당장 모가지를 벤다우
  • 전순란
  • 등록 2015-07-07 11:07:42
  • 수정 2015-07-08 1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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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일 금요일, 흐림


“태양이 지글지글 끓는다” 하면, 아프리카나 아랍의 사막지대를 가보지 못해선지 모르지만, 내게는 이탈리아가 연상되곤 한다. 여기서는 “태양이 대가리에 망치질을 한다”는 표현을 쓴다. 어쩌면 여름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백퍼센트, 순수하게, 햇빛만 내리쬐느냔 말이다.


물론 덕분에 밀밭은 누렇게 익어가고 남구의 포도주는 사람들을 온통 행복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호기심 삼아 구글을 열어보니 오늘은 종일 흐리고 내일부터는 비가 온단다. 믿거나 말거나 했는데 저녁 산보 길에는 한두 방을 비가 지기도 하고 “먼 하늘에서 확독(돌절구) 굴러가는 소리”(보스코)가 한밤중까지 들려왔다.


내일은 나가서 선풍기라도 하나 사다 놓아야겠다. 기온은 여전히 평균 30도를 웃도는데 모기 망이 없어 집집이 더위마저 집안에다 가두어놓는 처지여서 밤이면 시원한 공기가 흐르는 풀밭으로 나가야 한다.


이탈리아인들은, (관공서 등지에서) 기다리기도 잘 하지만 여름더위와 겨울추위를 참는 일도 어지간히 잘 한다. 엊그제 핸드폰 땜에 TIM 사무실에 갔을 적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하나 없이 고객들이 땀을 연신 훔치면서도 덥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여름이어서 그러려니 하나보다.


집안청소로 진공소제기를 돌려달라고 부탁했더니만 휴가 중에 청소는 무슨 청소냐는 보스코의 대꾸. 방바닥이 지근거려 슬리퍼를 벗을 수가 없고, 어제 집구경을 온 고객도 집주인도 복덕방 처녀도 구두를 신은 채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을 내 눈으로 본 이상 그대로 두고 견딜 수 없는 게 전순란의 직성. 기어이 진공소제기를 돌리게 하고 그 뒤를 따라다니며 물걸레질을 했더니만 어지간히 구정물이 나온다.


▲ 집 앞의 성모경당(1615년 건축)


▲ 경당 앞 수도물은 석회가 없어 동네사람들이 즐겨 길어다 먹는다.


이 산골에서 지내는 동안도 주일미사를 기왕이면 살레시안들에게 가고 싶어서 ‘무짜노’(Muzzano)라는 이웃마을까지 저녁산보를 갔다, 미사시간을 알아내러. 어제 집 앞에서 만난 할머니를 길에서 만났다. 3년 전 왔을 적에, 바닥이 1터 이상 내려앉아 통행과 출입이 금지된 도로에 일부러 들어가 보았는데 철조망 울타리로 억지로 빠져나오다 바로 그 할머니에게 딱 걸렸다.


“옛날엔 저 길을 ‘꽃길’이라 불렀다오. 그러다 길 한가운데 구멍이 생겨 네 살짜리 여아가 빠졌다우. 무슨 무슨 회사가 조사를 합네, 공사를 합네 하지만 땅은 꺼지기만 하고 돈만 먹고서 다들 내빼고 말았다우. 10년 넘게 저렇게 버려두고 있으니 공무원이고 회사고 다 도둑놈들이라우.” 지나가던 두 할머니도 합세하여 이탈리아 정치를 성토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를 걱정하는 얘기도 나왔는데, 정치인들을 가리켜 “무늬만 가톨릭신자이지 본색은 도둑놈에 살인마들!”(이 말을 하면서는 ‘듣는 사람 없제?“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장난끼도 보인다)이라고 욕하는 품이 새 교황님의 ‘사회교리’에 80대 할머니들도 물들어가는 현상이라며 보스코가 흐뭇해한다.


▲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색색의 아름다움이 있고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기에 “주일미사 시간 알아보러 살레시안들에게 간다.”고 했더니만 가톨릭신자냐면서 “당신들 가톨릭 신자라는 거 절대 비밀로 하시오. IS한테 걸리면 당장 모가지를 베서 죽인다우. 이젠 가톨릭도 망했다우. 아마 교황님이 맨 먼저 당할 거유.”란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도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는 수치, 파죽지세의 아랍 세력을 겨우 레판토 해전(1517)에서 막아낸 공포, 16세기에 비엔나 성벽까지 포위한 터키군(1529)을 겨우 저지한 유럽인들의 공포가 이 평범한 시골 할머니들에게도 깊이 새겨져 있다.


▲ 시골 마을의 한적함에도


▲ 여자들의 곤고한 삶(빨래터에 세워진 마네킹과 벽화)의 흔적과


▲ 전쟁터에 나가 죽은 사내들의 기억이 있다.


왕년에 초중고등학교와 기술학교가 있던 살레시안들의 커다란 학교건물은 이제 교육부의 비정규교육(CNOS-FAP)을 담당하고 살레시안들의 ‘여름산간학교’에 쓰이고 있다. 80대 노인 회원 네 분이 그 시각에 저녁을 먹고 있었다.


같은 사업을 전국단위로 통솔하는 로마 살레시안들과 우리 부부가 알고 지낸다는 얘길 듣고서, 작은아들이 살레시오 신부로 로마에서 공부한다는 말에 노인들은 우리를 식구처럼 반겨주며 음료를 대접하고 환담을 나누었다.


유럽 신자 3%가 주일미사에 나오고, 성직자 수도자 평균연령이 70에 육박한 오늘의 교세에서, 살레시오수도회마저 저렇게 노화한다면, 굳이 IS가 아랍권에서 크리스천을 만나는 대로 참수하지 않더라도, 저 노인들이 끝나면 가톨릭교회도 문 닫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든다. 돌더미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만들어내시는 하느님이야 역사, 그것도 구세사(救世史)의 주님이시니까, 방도를 찾아내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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