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이신부의 세·빛] 성사 교리 : 영적인 탄생, 성사의 입문인 세례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02-09 11:58:03
  • 수정 2021-02-09 11:57:55
기사수정


연중 제5주간 화요일 (20210.02.09.) : 창세 1,20-2,4ㄱ; 마르 7,1-13 



▲ ⓒ 문미정


오늘 독서인 창세기 1장은 창조 설화 중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어제 독서분과 합해서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창조에 관해서 매우 오래 전부터 조상대대로 입에서 입으로만 내려오던 전승을 바빌론 유배 중에 뼈저린 민족적 각성을 거쳐서 바빌론식 칠진법에 따라서 기록한 내용으로서, 이스라엘의 종교적 전례 중에 낭독할 수 있도록 규칙적이고 운율감 있게 기록되었습니다. 


이 내용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첫째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 둘째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것, 셋째 그래서 창조된 것들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강조되고 있는 네 번째는 온갖 피조물들이 엿새에 걸쳐 매우 질서정연하게 창조되었다는 것과 다섯 번째는 그 피조물 가운데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인간이 창조되었으며 더구나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당신을 닮도록 창조된 인간에게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돌보게 하셨다는 것도 들 수 있습니다. 


여성해방적 관점에서 창조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도로테 죌레(Dortothe Sölle, 1929~2003)는 서구 전통 신학이 창조에서의 다스림을 돌봄으로 알아듣지 못하고 지배로 잘못 이해함으로써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왔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창조의 메시지는 하느님을 닮아야 하는 사랑이 인간의 본질이며 세상 피조물을 하느님의 뜻대로 돌보는 노동이야말로 하느님의 위임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쓴 저서의 제목이 <사랑과 노동-창조의 신학>(1989)입니다. 노동에 관한 새로운 관점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노동의 영성을 강조하며 반포한 <노동하는 인간>(1981)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고, 하느님께서 위임하신 다스림이 지배가 아니라 돌봄의 노동이어야 한다는 관점은 생태적 회심을 강조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반포한 최초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에서도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로는 그 모든 창조 활동을 엿새에 걸쳐 마치신 하느님께서도 이렛날에는 쉬셨으며 이 안식을 통해서 당신께서 보시니 참 좋았던 창조 작업에 축복을 내리셨으며 이로써 창조 사업이 완성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마지막 일곱 번째는 노동을 완성하는 것이 안식이니만큼 안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과 더불어 이를 통해 단순히 노동에 지친 몸을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성과를 바라보며 경탄하는 관상을 통해서 노동이 완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경탄과 관상의 능력이 엿새 동안 해낸 노동 성과의 질과 수준을 하느님께로 드높이는 봉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일 미사를 참례해야 하는 의무의 신학적 근거입니다. 


이 같은 하느님의 창조 업적에 대해 경탄하며 찬미한 시편이 있으니, 바로 다윗이 부른 시편 8편입니다.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사울로부터 물려받고 명실상부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마무리 짓고 나서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습니다.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시편 8,4-5)


하지만 정작 하느님을 닮은 사랑으로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을 하느님의 뜻대로 돌봄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과업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이 창조주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곡해하여 알아듣고는 엉뚱하게 전통을 세워가고 있었던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과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세우시려는 예수님과 전통과 계명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 대신에 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규정을 교리라고 가르치며 헛되이 하느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흐트러뜨리고 있는 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은 창조 시에 드리운 혼돈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정작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닮으신 아드님이셨고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심으로써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믿고자 하는 이들을 영적으로 깨어나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따라서 교회는 세례의 성사를 거행합니다. 세례는 죄로 얼룩진 혼돈의 인생을 마감하고 사랑으로 펼쳐진 새로운 인생길을 걷게 해 주는 성사입니다. 


‘빛을 받음’과 ‘물에 씻기움’을 질료로 한 세례성사의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영적인 몸이 깨어나게 하기 때문에 인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선물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음으로써 인간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거듭나는 부활의 삶을 시작하기 때문에 세례성사 예식에서는 반드시 부활초를 켜 놓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가 거행하는 세례성사 예식에는 요한이 베풀었던 물의 세례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에 행하셨고 십자가 죽음으로 귀결된 불의 세례라는 두 가지 성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의 세례로써 세상의 죄로 얼룩진 과거와 단절하고 죄를 씻어 버린다면, 불의 세례로써 희생이 뒤따를지라도 사랑의 빛을 비추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메시아 백성의 일원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눈을 뜨고, 먼저 다윗처럼 하느님의 창조 업적을 경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그리고 또한 무상으로 주어진 이 은총과 그중에서도 인간에게 거저 맡겨주신 이 엄청난 위임 사명으로 그 가치와 역할을 기억해 주신 데 대해 찬미를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그래야 영혼이 깨어나 살아있게 됩니다. 그 영적인 몸이 부활의 은총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인생을 창의적으로 살아가며 질서 있게 일하는 것, 이것이 세례의 은총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catholicpress.kr/news/view.php?idx=6935
기자프로필
관련기사
댓글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비회원 이름 패스워드 자동등록방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