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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는 길을 닦으리라 - [이신부의 세·빛] 요한의 출생과 역할 : 창조를 위한 심판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12-23 18:03:46
  • 수정 2020-12-23 18: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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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3일 전; 2020.12.23.(수) : 말라 3,1-24; 루카 1,57-66



오늘 독서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의 사자(使者)가 먼저 오리라고 예언한 말라키의 예언서입니다. 그런데 말라키는 그 사자가 메시아의 뜻을 전하는 단순한 심부름꾼이 아니라 하느님의 엄정한 심판을 수행하리라고 내다보았다는 데에서 심상치 않습니다. 


즉, 제련사나 정련사가 원광석을 정제하여 순도가 높은 금이나 은으로 만들 듯이, 우상숭배로 더러워진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엄청나게 힘든 역할을 수행하리라고 보았습니다. 또는 염색공이 잿물로 천을 깨끗이 하여 새로운 색깔로 물들이듯이, 제사독점권으로 예루살렘을 장악하고서는 백성들과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엘리트들의 행태를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어려운 역할을 수행하리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자는 마치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가 4백 명도 넘는 바알신의 예언자들과 대결하여 쳐부수었던 것처럼, 하느님의 가치와 세속적인 가치들을 구분하여 갈라놓고 나서, 세속적인 가치들과 대결할 것이며, 하느님의 가치에로 사람들을 준비시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심상치 않은 이런 예언을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에서 아이를 낳기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많았던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가 아들을 낳자 내심으로 크게 기대하였습니다(루카 1,66).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 거의 5백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거듭된 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제발 이 아기가 자라서 백성을 올바로 이끌어줄 큰 인물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궁금해하게 된 데에는 늙은 부부가 아들을 낳게 되었다는 그 출생의 기적적인 면도 있었지만, 아기의 이름이 정해지는 할례식에서의 신기한 과정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 이래로(참조: 창세 17,24) 이스라엘의 율법(참조: 레위 12,3)에 따라 아기가 태어나면 여드레째 되는 날에 할례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즈카르야와 엘리사벳도 성전에서 아기의 할례식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할례식에서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는데, 이웃 사람들은 관례대로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즈카르야’라고 지어주자고 했으나, 어머니 엘리사벳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요한’이라고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관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웃들은 아버지 즈카르야에게 확인해 보고자 손짓으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벙어리가 된 즈카르야도 서판을 달라고 하여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언질을 받은 대로(참조: 1,13ㄷ),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써서 아내와 같은 생각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요한의 출생을 알려준 천사의 방문 이후 즈카르야는 벙어리 신세였으므로 아홉 달 동안 아내에게 그 어떠한 이야기도 말할 수 없는 처지였을텐데, 어떻게 부부 사이에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자고 의견 통일을 보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직후에 즈카르야의 입이 풀려서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루카 1,64) 이웃들의 놀라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마을의 이웃들은 아기의 잉태는 물론 출생과 작명까지 모두 하느님께서 개입하고 계심이 틀림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대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요한이라는 이름이 지닌 뜻은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살던 동네 주민들도 이스라엘의 민족적 위기를 느껴왔고 또 메시아께서 오시어 이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해주기를 기다리던 아나빔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권세와 이권의 향방에 민감한 엘리트들과는 달리 아나빔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민감합니다. 주님의 손길이 이 아기를 보살피고 계시다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그들은 이 아기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예언자 말라키가 엘리야의 명성을 빌어 표현했듯이, 심판의 도끼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무뿌리에 닿아 있는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불의하고 사악한 무리들을 엄정한 정의로 심판하시는 역할을 대행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회개시켜 메시아의 길을 닦는 또 다른 엘리야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지향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사실 메시아의 오심은 말씀에 의한 이스라엘 심판을 전제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불러 모아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창조입니다. 


요한에 의해서 2천 년 전에 시작된 하느님의 이러한 징표는 이어진 교회의 역사가 본질적으로 심판의 시대요 동시에 메시아 예수님에 의한 창조의 시대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느님에 대해서는 관심 없이 그저 일상의 삶에 파묻혀 살아가는 무리들에게는 각자의 개인적 인생이나 민족 혹은 인류의 역사가 그저 끊임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의 손길과 가치에 민감한 아나빔들에게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월이 지닌 대림적 성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이 시대의 심판적 상황에 대해서나 창조의 징표에 대해서 민감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현세의 사법질서가 허술한 지경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이 유다의 산악 마을에 살던 평범한 아나빔들이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처럼, 우리도 생생한 긴장감을 지니고 임박한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두려움은 공포에 대한 무서움이 아니라 심판하시며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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