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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태 신부의 오늘 미사 (15.07.04)
  • 이균태 신부
  • 등록 2015-07-04 12:03:52
  • 수정 2015-07-04 21: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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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처음이라는 말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첫만남, 첫키스, 첫사랑! 처음이라는 말은 때묻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쓰이기도 하고, 새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은 어떤 기간이나 사건, 혹은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한 역사의 의미부여의 순간이 바로 처음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기적을 베풀었던 장소는 혼인잔치였다. 혼인으로 맺어지는 부부 관계는 인간 관계 중에서 가장 밀접한 것이다. 이 관계에서 생명이 태어나므로, 혼인잔치는 생명의 잔치이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혼인잔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활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다. 바로 ‘생명’을 향한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원(原)표징이다. 이 첫 기적은 4복음서의 나머지 모든 기적들의 의미를 풀어내는 열쇠가 된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그 만남은 나를 변화시키는 사건, 무지의 사람이 지혜의 사람으로,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세상에 속했던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사건을 만들어 낸다.


나침반의 빨간 화살표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듯이, 예수님은 ‘생명’으로 가는 길을 향해 멈추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것이다.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길은 쉬운 길이 결코 아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기득권자들이라는 걸림돌도 있고, 마귀들린 사람들, 병자들, 억압과 가난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이들, 굶주리는 이들이라는 톨게이트도 있다.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끌고 갈 길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들을 예수님, 우리의 주님은 한걸음 한걸음씩 즈려 밟고 지나가시면서, 마침내는 골고다의 십자가를 향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그 길의 종착역은 아니다. 그 길은 부활로, 승천, 성령 강림으로, 그래서 마침내는 바로 지금 이 미사를 드리는 이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제 아무리 고매한 이상도, 제 아무리 위대한 신념도, 하느님을 움직이게 하는 신앙도, 첫 삽을 뜨면서부터, 첫걸음을 떼면서부터 현실이 되어 가듯이, 오늘 가나 혼인잔치에서 첫 기적을 여는 하느님의 아들은 그렇게 당신의 일을 시작하셨다. 그분은 늘 첫 기적을 잊지 않으셨을 것이다. 첫 마음을 잊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십자가에 이르실 수 있었고, 그렇기에 죽음까지도 넘어 서실 수 있었다.


생명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죽음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 맞서, 정의의 걷지 아니하고, 불의를 못 본 체하며, 살아 있는 자체, 생명 자체에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은 이 세상에서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되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복음이 전하고 있는 첫 기적 이야기는 우리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 그 일을 위해서, 성령은 우리에게로 부어졌다. 세례 때에 우리에게 부어졌다. 사제가 되게 하고, 예언자가 되게 하고, 왕 혹은 여왕이 되게 했다.


누군가에게는 지혜의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지식의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믿음이, 누군가에게는 병을 고치는 은사가, 누군가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누군가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누군가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누군가에게는 여러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누군가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위에 가장 위대한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다. 이 모든 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


성령만 부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어머니이신 마리아도 덤으로, 은총으로 주어졌다.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 내는 우리의 일에 성모님도 도와 주신다. 성령이 주어지고, 성모님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해 도와주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해 섭리한 것이었다.


공동선, 생명, 사랑, 평화,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가치, 하느님을 드러내는 가치가 바로 우리들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의 방향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겁 많고, 힘없고, 어찌 할 줄 모르는 우리를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성체성사를 통하여, 변화시키신다. 우리들의 썩어 없어질 몸뚱아리를 당신의 몸이 되게 하시고, 당신의 피가 되게 하신다.


생명이 없는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시는 분은 그 몸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우리를 생명 있는 존재, 생명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게 하신다.


마음의 평안이나, 신앙으로 말미암는 은총이나, 여러 가지 은사나 기쁨이나, 행복이나, 모두 하느님의 길, 예수님의 길, 생명의 길을 걷다 보면, 얻게 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다 보면 얻게 되는 것들이다.


이제 더 이상 주객전도하지 말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그분의 길을 우리 함께 손을 맞잡고, 성령과 함께, 성모님과 함께 한걸음 한 걸음 걸어가자.


우리의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축복하시는 하느님, 그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성령과 어머니 마리아를 보내주시는 하느님, 길이 영광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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