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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도 알프스에서도 그 극성, 그 오지랖
  • 전순란
  • 등록 2015-07-04 11: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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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일, 수요일 맑음


우리나라가 적어도 인터넷만은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이탈리아에 오니 새삼스럽다. 30분전에 했던 전화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에게 해도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라는 문자가 뜨거나 멀쩡하게 이탈리아에 들어와 있는데도 제네바에서 건 것처럼 국제전화로 요금을 물린다. 우리가 받아온 서비스에 의하면 손님은 왕인데 여기선 지점엘 찾아가보니, 적어도 TIM의 손님은, ‘봉’이다.


노동자들은 아침 8시부터 1시까지 일하고 오후에 4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8시간 근무한다. 현지 핸드폰 번호로 '유심카드'를 넣은 처지라 TIM 사무소에 갔더니만 네 명의 직원이 고객을 맞는데 하나는 일하고 둘은 딴전을 피우고 하나는 친구와 전화로 낄낄대는 중이다, 손님들은 모조리 줄을 세워둔 채... 고객이 열댓 명 들어와 대기하지만 의자는 두 개다.




그래도 우리가 묵는 ‘그랄리아’라는 동네에는 TIM보다는 WIND가 잘 터진다는 암시를 그 직원이 주어 최소한의 양심은 지킨 셈이다. 보스코의 노트북 인터넷(날마다 내 일기 올리랴, 보스코의 주보원고를 비롯해서 이메일을 주고받으랴 늘 분주하다)이 하도 안 되어 WIND 가입을 하러 ‘오르시’(Orsi)라는 대형몰을 찾아갔다. 


스위스계인지 프랑스계인지 모를 직원이(R 발음이 이탈리아식이 아니고 프랑스식이다) 차분하게 설명하고 접수하고 해결해 주어 인터넷은 드디어 제대로 개통이 되었다.


오전에 오티나 의사의 남편 알프레도가 왔다. 오티나가 텃밭에서 딴 채소를 한 아름 싸 보내고 잼도 네 병이나 보내왔다. 우리가 묵고 있는 그랄리아 별장은 오티나의 할머니가 살다가 손녀에게 물려준 집이다. 


세금에다 관리에다 두 딸의 교육비(이곳은 우리나라 극성 엄마들 못지않게 “엄마가 다 해 줄게.” 하는 사회다)에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우리가 묵고 있는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는데 오늘 집을 보러 사람이 온단다. 복덕방(아젠시아) 주인으로 늙수그레한 영감이 올 줄 알았는데 스물을 갓 넘겨 보이는 아가씨가 중개인으로 왔다.




집주인과 무슨 얘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알프레도가 떠난 다음에도 복덕방 아가씨와 고객 아줌마는 집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집 얘기를 하고 있다. 말하기를 무척이나 즐기는 민족이다. 알프레도 편에 보내온 팔뚝만한 호박이 열두 개나 되어 그 소란스러운 아줌마에게 몇 개 건네주며 집에 가서 밥하라고 일렀더니만 그제야 얘기를 멈추고 마을로 내려간다. 처음 보는 사람, 남의 집 보러 온 아줌마에게도 이런 간섭을 안 하고 못 견디는 것을 보면서 내 극성도 대단하다는 보스코의 평.


집에 호박 두 개를 남기고 다섯 개는 챙겨들고 옆집으로 찾아갔다. 생울타리 나무가 4미터 이상 자라서 푹 묻혀 있는 집으로 노인 내외가 산다. 호박을 건네주면서 “울타리가 너무 높아 아줌마 얼굴이 안 보여 아쉽다.”는 인사말에 “대문이 있지 않아요? 당신에겐 언제나 열어있어요.”라고 답례한다. 그들의 말솜씨는 늘 예술적이다. 두 노인은 우리가 3년 전에 와서 지냈던 일도 기억하고 있고 보스코가 외교관직을 지낸 사실도 알고 있었다. 오티나네가 얘기했나 보다.


▲ 아랫집 정원


▲ 성모벽화


점심엔 서상의 김인식 선생 댁에서 가져온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고, 알프레도가 들고 온 호박으로 나물을 하고, 며느리가 싸 준 김치에다 돼지고기 살시챠를 구워 상추쌈을 곁들여 먹었다. 사흘 만에 먹는데도 우리 음식은 이렇게 술술 목구멍을 넘어가니 전쟁 후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밥과 김치와 된장국으로 평생을 보낸 이탈리아인 선교사들은 얼마나 음식고생을 했을까 하는 게 보스코의 탄식이다.


빵고야 어렸을 적에 여기서 자라면서 입에 익은 음식이요 귀에 익은 말이겠지만, 수련동기인 위원석 신부는 지금 어떻게 입맛과 말맛을 맞추어가고 있을까? 


우리가 묵는 데서 한 시간 남짓한 ‘오로파 성모 성지(Santuario di Oropa)’에 '알바 사목‘(로마에서 공부하는 사제들이 여름 방학 석달에는 휴가가는 현지 본당신부들을 대리하는 사목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용돈을 번다)을 온다니 기회 닿는 대로 뭔가 해 먹여야겠다는 말에 내 오지랖도 대단하다는 남편의 평.


동네가 산골이지만 모기가 없지 않은데 집집에 모기망이 아예 없다. 문을 닫아놓은 집안이 더워 공지로 나와서 몸을 식히면서 인터넷으로 성무일도를 불러올려 기도를 바치고 몸을 식히다 으슬으슬 추워져 집안으로 들어왔다. 산 산 산... 한국에서도 여기서도 우리 팔자는 산에서 멀리 못 간다. 


▲ 그랄리아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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