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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 [이신부의 세·빛] 한 해 동안 애쓰셨습니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11-27 13:15:21
  • 수정 2020-11-27 13: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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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간 토요일(2020.11.28.) : 묵시 22,1-7; 루카 21,34-36



어느 새 2020년 가해 전례력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위령성월의 후반부 보름 동안 미사 독서로 들었던 묵시록의 결론은 “오소서, 주 예수님!”(묵시 22,20)입니다. 이는 그분이 이미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의 인격적 현실을 확인하면서, 이를 사도 요한과 소아시아의 초대교회 신자들도 바라마지 않는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를 통하여 요한이 그 신자들에게 주고자 하는 희망의 등불은, 자신들의 이마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적혀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역이 되어서 밤도 사라지고 등불도 햇빛조차도 필요없이 진리의 빛이 비추어주는 이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을 차지하리라는 예언입니다. 


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인들의 인격이 지녀야 할 영적 기준을 인호로, 갖추어야 할 정신적 소양을 진리의 빛으로 그리고 도달해야 할 사회적 목표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묵시 22,1)이라든가,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묵시 22,2)와 같은 환시가 묘사하듯이 이 현실의 풍요로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시며 그리스도로 모신 신앙인들이 정신적 소양으로 갖추어야 할 이 진리의 빛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빛으로서, 자유와 사랑 그리고 정의와 평화의 스펙트럼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개별 인생과 인간 사회를 지탱해야 할 최고선의 진리에 대한 인식입니다. 


진리의 빛도 열과 힘을 냅니다. 사회를 하느님의 나라로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진리의 빛 속에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있는 신앙인들도 세상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상태로 변화시켜 나가려면 진리의 빛이 주는 열과 힘을 받아 충만해야 합니다. 진리를 향한 뜨거운 향학열과 자유와 사랑, 정의와 평화를 위한 소명의식의 활기찬 기운 등이 진리의 빛을 받은 신앙인들이 보여주어야 할 풍요로운 생기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마음이 물러진다 함은 긴장이 풀어져서 어떠한 열도, 기운도 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이렇게 마음이 물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날은 덫처럼 갑자기 덮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인격이 하느님을 향하게 되는 기본 지향과,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지적 소양과 그리고 이 지향에 따라서 또 이 소양을 발휘해서 주어진 인간관계를 성화시키고 또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이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사명은 갑자기 실현된다기보다는 일생 동안 꾸준히 필요한 일입니다. 단지, 세상 사람들이나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되는 때나, 또는 인생의 마지막 날이 닥쳐서 하느님 앞에서 평가받는 때가 갑자기 들이닥칠 뿐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일은 신앙인 모두에게 한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을 지향하겠다는 인호를 받는 것이고, 우리의 지력이 허용하는 한 그분의 진리를 배워 익히는 것이며, 또한 기회와 능력이 주어지는 한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 현실을 그분 보시기에 좋도록 개선시켜 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 노력이 완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자리 잡고 있는 사회와 주어진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그렇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도움을 주시는 경우에 기적을 발휘하시는 등 신적인 권능을 행사하시면서도 사회와 시대가 부과하는 제약 속에서 활동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된 이들을 설득하시느라고 이스라엘의 지리적 범위를 거의 떠나지 않으셨으며, 로마 제국의 식민통치를 받는 유다인으로서의 운명을 견디어 내셨습니다. 그 증거가 그분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처하신 그 한계 속에서도 삶의 지향을 분명히 하셨고, 진리를 함양하는 소양을 십분발휘하셨으며 무엇보다도 삶이 성취해야 할 목표를 뚜렷하게 제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목표가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의 맨 처음에 나오는 내용과 상응합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아주 먼 옛날에 지리적인 내용으로만 알아들을 뻔했던 이 성경 구절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로 번역해 주시고 그 나라가 당신의 삶으로 말미암아 다가왔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이전에 그 누구도 감히 발설할 수 없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 덕분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것이 공중의 하늘이나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만이 아니라, 정작 우리의 인간관계와 사회 문화와 역사 문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하느님께서는 이 과업을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처럼 직접 그리고 혼자서 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통해서 하시되 당신께서 함께 하심을 우리가 배웠을 따름입니다. 


그 뜻이 역시 창세기의 첫 장에 나와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도록 사람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라고 위임하셨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당신을 닮도록 각자의 인격을 형성하는 것과, 당신의 뜻대로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는 임무에서 각자의 소명을 발휘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창세기 첫 구절과 묵시록 끝 구절이 같은 뜻이라는 점, 성서 주간에 드리는 말씀의 결론입니다. 

 

교우 여러분, 한 해 동안 애 쓰셨습니다. 새 해에 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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