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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보내는 쓴 소리
  • 이기우
  • 등록 2020-11-06 18: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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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토요일(2020.11.7.) : 필리 4,10-19;루카 16,9-1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재물을 활용하라는 이 말씀은 평소에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과 기쁨에 대해서 주로 강조하시면서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고 하시던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는 예외적인 내용에 속합니다. 아마 그분은 주로 하늘의 사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도 사람들이 워낙 땅의 사정에 관심이 많고 재물에 대한 집착이 크다 보니 하는 수 없이 그분이 한 발 물러나는 양보를 해서 말씀하신 것 같고, 그래서 그렇다면 불의한 재물로라도 필요한 이들과 나누어서 지옥에 떨어질 죄에서만큼은 벗어나라는 쓴 소리를 하신 겁니다. 

 

사도 바오로도 필리피 교우들에게 쓴 소리를 했습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으로는 그동안 도와준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 일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독서인 4,10-19의 바로 앞의 내용을 보면, 필리피 공동체의 일꾼으로 보이는 두 여성 즉 에우오디아와 신디케에게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 하라고 충고하고 있고, 또 공동체 교우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이 두 여인을 도와주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아마도 필리피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큰 뜻으로는 함께 하면서도 작은 뜻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바람에 원치 않는 갈등이 생겨난 듯합니다. 


사실 갈등이 없는 공동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갈등보다 더 큰 기쁨으로 그 갈등을 해소시키는 공동체가 소망스러울 뿐이지요. 그 기쁨이 없으면 공동체는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체 교우들에게는 이렇게 쓴 소리를 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교황직에 즉위하자마자 「복음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권고 문서를 전 세계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이 특별히 평신도들에게 모처럼 쓴 소리를 했습니다. 한 이탈리아 주교가 쓴 책의 서문에서, “평신도는 교회가 수행해야 할 복음화 과업에서 성직자 및 수도자와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달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이 책은 최근 파비오 파베네 주교가 쓴 「사도직의 심포니 : 교회 내 평신도 쇄신」(Symphony of Ministries: A renewed presence of laity in the Church)인데, 이 책 서문에서 교황은 “평신도 사명 수행을 위해 이제는 일부 특권층뿐만이 아니라 평신도 모두가 헌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축에 속하는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도 행세하려는 경향을 경계하신 겁니다. 이 점에서 교회는 단연코, 하느님 나라를 닮은 세상의 빛이어야 합니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이나 학력, 또는 성별과 관계없이 봉사할 의지와 능력이 있고 또 평판이 좋은 평신도라면 그 누구라도 평신도들을 위한 봉사직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8년 교황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언급한 ‘교회의 구성에서 평신도 공동 책임의 중요성’을 인용하여 강조했습니다. 즉, “사제 신원의 핵심이 제병을 축성하는 데 있다면, 평신도 사명의 중심은 하느님 계획에 따라 세상을 성화하는 데 있다”며 “교회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 이 두 사명을 수행하면서 평신도가 복음화 주체로서 전교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교황은 이를 위해 모든 주교들에게 “평신도를 성직자화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고 “평신도의 특수한 소명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평신도를 성직자화하려는 유혹이 무엇일까요? 평신도의 본령은 세상의 성화 사명이요 그 본연의 장은 가정과 사회인데, 본당 같은 종교적 공동체 안으로 그 관심과 활동영역을 국한시키고는 그 안에서 성직자들에게 순명하도록 함으로써 교계제도의 하부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뜻한다고 봅니다. 굳이 따지자면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을 섬겨야 하고 순명해야 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지요. 그런데 공의회 이전까지는 버젓이 평신도들을 교회의 미성년자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다분했었고, 따라서 성직자에게 순명해야 하는 교계제도의 하부 구성원으로 간주해 왔더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사도직 본연의 장인 가정과 교회에서 봉사정신을 행해야 함을 배우지 못하고 성직자들로부터 군림하는 행세를 배워 흉내를 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교황이 “사도직을 권력의 형태로 변화하려는 위험을 막아야 한다”면서 “이 또한 유혹”이라고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본당은 성사생활을 하기 위한 종교 공동체이며, 여기서 평신도들은 성직자로부터 성사를 받으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표양처럼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범을 보고 배워야 하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가정에서나 세상에 나아가서나, 가족들과 비신자 및 무신론자들 그리고 선의의 모든 시민들과 함께 공동선을 도모해야 하되, 이들을 섬기는 십자가를 짊어지도록 소명을 받았습니다. 


첫째가 되려 하지 말고 끝자리에 앉아서 무엇보다도 일이 되게 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섬김으로써 바보라는 평판을 받아도, 또 그렇게 나눔으로써 가난해지더라도 그것이 바로 하느님 앞에서 드높여짐을 받고 부유해지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내일 평신도 주일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평신도들에게 보낸 쓴 소리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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