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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우리 교회와 신앙을 바라보다 - [이신부의 세·빛] 세워야 할 탑과 물리쳐야 할 적수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11-04 10:52:18
  • 수정 2020-11-03 16: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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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2020.11.04.) : 필리 2,12-18; 루카 14,25-33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은 세상의 이치를 ‘이’(理)와 ‘기(氣)로 나누고서는 공허한 관념론으로 날을 지새우기 일쑤였던 성리학풍에 대하여 서양의 과학을 접한 중국 지식인들이 새로이 세운 학문적 구호입니다. ‘실학’(實學)이라는 용어도 여기서 생겨났는데,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추구하고 이 진리를 몸소 행하여 실천하려는 이 실학의 학풍이 조선에 천주학이 들어와서 천주교로까지 받아들이는 데 사상적 밑바탕이 되어 주었습니다. 


썩을 대로 썩은 조정과 양반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초기 천주교 선각자 선비들은 그야말로 실사구시의 자세로 천주교 교리가 알려준 신앙을 받아들이고 실제로 세례도 받고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전파함으로써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 역시 이 실사구시적 학풍의 소산입니다. 구체적으로 조선 사회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밀한 논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려 하는 사람들, 즉 열두 제자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군중에게 대하여 천국의 복음을 믿되 생각하는 자세로 믿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여기서 십자가는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희생을 상징합니다. 그것 없이 행복을 누릴 수는 없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고 나서 당신을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탑을 세우는 공사의 비유나, 전투에 임하는 임금의 비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탑의 비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탑을 비롯한 건축물을 세우자면, 먼저 계획을 세워야 하고 그 계획 안에는 순서와 방법이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측량도 해야 하고 지질조사도 해야 하며, 재료와 시간과 비용과 소요인원 등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합니다. 건축물을 다 세우고 나서도 사람들이 이용하는 데 필요한 마감공사까지 신경써야 좋은 건축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전투의 비유입니다. 고대 중국의 병법서를 쓴 손자는 최상의 승리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이 일어날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하고,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명확한 목표와 그로 인한 이득이 분명히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전력과 아군의 전력을 파악하여 승산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하고, 직접 군사력을 전개하기 전에 계략으로 적군을 무력화시켜야 하며, 이 모든 방법을 다 강구해 보아도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최대한 빠르게 수행해서 피해가 적은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평시에 공사를 하거나 전시에 전쟁을 할 때 다 같이 필요한 일은 미리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우선순위에 따르는 것입니다. 


돌로 지어진 차가운 에페소 감옥에 갇혀 필리피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 바오로는 머지않아 다가오리라고 예상되는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면서 이 교우들을 더욱 채근하며 유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라는 가르침은 마치 바오로 자신이 바로 그렇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결의에 찬 착잡한 심정을 짐작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호의에 따라 교우들 마음 안에서 활동하시어, 뜻을 일으키시고 그 뜻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에게서 배운 믿음대로 뜻을 세우고, 그 뜻에 따라 용기 있게 실천하며 살아가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당부는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이 비뚤어지고 뒤틀린 세상에서 허물없이 순결한 신앙인이 되라는 것이지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우리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요? 또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의 신앙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이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탑을 세워야 한다면 어떤 탑을 세워야 하며, 싸움을 해야 한다는 그 싸움의 적수는 과연 누구일까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세워야 할 탑과 물리쳐야 할 적수를 생각합니다. 


자발적으로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주일미사에 빠지는 비율이 80%를 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된 것이 작년 말이었는데, 그새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이닥치니 그나마 나오던 20%가 또 반토막 나버리는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슨 탑을 세워야 합니까? 또 남은 신자들은 과연 누구와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실 박해시대 교우촌에서 언제 잡혀가 고문을 당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 기도를 거르지 않고 주일이면 공소에 모여 예절을 바치던 신앙 선조들을 생각하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모처럼 집안에서 모이게 된 가족들이 공동 기도를 바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사실 가정이야말로 기도의 학교여야 합니다. 이는 마치 본당이 성사의 학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각자 신앙의 열성 정도에 따라서 누구는 가정성화의 계기로 삼기도 하는가 하면, 누구는 냉담의 핑계로 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싸워야 할 적수는 미지근한 신앙이거나 기복신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워야 할 탑은 가정에서 가족이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생활이 안정되는 것이요 본당에서 행하는 성사생활이 구심점이 되는 것일 것이구요.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는 자신의 모든 인간관계를 통하여 신앙을 증거할 만한 사도직의 공동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세워야 할 탑과 물리쳐야 할 적수를 생각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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