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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요하] 작가정신과 표절의 상관성
  • 지요하
  • 등록 2015-07-03 10:33:46
  • 수정 2015-10-30 16: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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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래서 ‘지역작가’로 불리기도 하는 소설가 아무개는 어느 날 뜻밖에도 당대 최고 작가로 불리는 유명한 모 여성 작가의 전화를 받는다. 무려 10년 연하의 그 여성작가는 너무도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여서 지역작가 아무개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주눅이 들어버린다. 그러면서도 그 여성 작가가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해주는 것에 더럭 고마움을 느낀다.


처음 전화로 인사를 나눈 날로부터 며칠 후 지역작가 아무개는 그가 사는 고장에서 한국 문단의 최고 스타인 그 여성 작가와 대면하게 된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간의 삶과 근황에 관한 이야기, 문학에 관한 이야기 등등…. 지역작가 아무개는 그녀와 정치 관련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으나, 왠지 그녀는 정치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여 ‘동질감’ 같은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아무개 작가의 고장에서 두 번 더 만나서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 번째 만나 안면도를 함께 유람할 때 그녀는 아무개 작가에게 매우 진지한 부탁을 했다. 안면도 바닷가 땅을 좀 사서 별장을 짓고 싶다며 적당한 곳의 땅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 안면도 동편 고남면 누동리 한 해변의 모습. 해마다 11월이면 ‘조개부르기제’가 열리는 곳이다. ⓒ 지요하


▲ 안면도 동편 고남면 누동리 한 어촌의 모습. 해마다 11월이면 ‘조개부르기제’가 열리는 곳이다. ⓒ 지요하



연이어 베스트셀러 작품들을 출간하여 엄청난 인세 수입을 올린 그녀는 남아돌아가는 돈으로 땅을 좀 구입하고 싶다고 아무개 작가에게 솔직하게 토로한다. 투기 목적으로 땅을 구입하려는 것은 아니고, 별장을 지어 집필실로도 이용하고, 다른 작가들에게도 개방하여 집필실로 활용하도록 할 계획임을 밝힌다.


아무개 작가는 한편으로는 그녀가 한없이 부럽기도 했고, 그런 계획까지 자신에게 밝히며 땅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도 한량없었다. 그는 다음 날부터 고장의 여러 지인들과 접촉하면서 안면도 바닷가의 땅을 알아보는 일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노력이 성사되어 그는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땅을 알선하여 구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우연히 그녀의 비밀 이메일 주소를 하나 알게 된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수한 문학지 세 곳에만 원고를 준다고 했다.


대형 출판사를 보유하고 있는 문학지들이었다. 그 세 곳에만 원고를 주면서 각기 다른 비밀 이메일 주소를 사용한다고 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메일로 원고를 전송하는데, 잡지사(출판사)마다 그녀의 이메일 주소를 비밀로 관리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까지만 듣고 속으로 부러워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그녀에게서 받은 메모지 뒷면에 이메일 주소 하나가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실수를 한 셈이었다. 그녀는 종이 한 면에 안면도 바닷가에 짓고 싶은 별장의 모습을 대충 그려서 그에게 주었는데, 그가 음식점에서 그것을 받아 집에 가지고 와서 살펴보니 뒷면에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던 것이었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사용하는 세 개의 비밀 이메일 주소들 중 하나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그 이메일 주소를 고이 간작했다.


얼마 후 그녀는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장기간의 여행인데,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독자들과 만나는 행사도 갖는다고 했다. 그녀가 새벽 비행기에 올라 출국하기 전날 밤, 그는 그녀의 이메일 주소를 이용하여 소설 원고 하나를 송고했다. 어느 문학지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원고를 주는 3개 문학지들 중 한 곳일 것은 틀림없었다.


그녀가 유럽에 체류하는 동안 대한민국의 가장 권위 있는 유명 문학지에 그녀 이름의 소설이 발표된다. 곧바로 비평가들의 찬사가 쏟아진다. 극찬의 비평들 중에는 ‘극적인 변신’이라는 말도 있었고, ‘새로운 실험정신의 개가’라는 말도 있었다.


그 소설은 아무개 지역작가의 미발표 작품이었다. 예전에 최고 권위의 유명 문학지에 투고했다가 한참 만에 돌려받은 원고였다. 그 문학지는 그 소설 원고를 받아 캐비넷 속에 넣고 오래 보관하고 있다가 간략한 반려 이유를 적어 그에게 돌려보낸 것이었다.


반려 이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 그 문학지의 편집 방향이며, 투고 작품의 어떤 점이 그 문학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 문학지의 편집 방향이라는 것을 그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고, 반려 이유 또한 너무도 간단하여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원고를 그는 오래 간직하고 있다가 마침내 그녀의 비밀 이메일로 송고했는데, 즉각 발표가 되더니 평론가들이 앞 다투어 호평을 하고, 문단 전체가 떠들썩해져 버린 것이었다. 그는 엄청난 충격과 두려움, 경이감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문단과 변방문학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내가 2008년에 출간한 충남소설가협회의 <소설충청) 제16호에 발표한 중편소설 <기이한 반전>의 내용이다. 200자 원고지로 200매가 조금 넘는 작품이라, 짧은 중편이기도 하고, 긴 단편이기도 한 작품이다. 독자들로부터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도 포함되었느냐는 질의가 있었고, 대체로 재미있다는 말을 들었다.


▲ <소설충청>의 표지들. 필자가 1993년부터 한 해 한 번씩 만들어온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의 일부 표지들이다. ⓒ 지요하


극히 일부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당연히 가상적인 이야기, 즉 창작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발생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고향인 충남 태안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1993년에는 충남에 거주하는 소설가들을 규합하여 충남소설가협회를 창립하고 현재까지 회장 노릇을 하고 있다. 1993년부터 2012년까지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20호까지 발간하고 현재는 동면을 하고 있다.


1998년에는 <태안문학>을 창간하고 2003년 제10호 발간 때까지 회장 노릇을 했는데, <태안문학>은 2015년 현재 34호가 발간되었다. 또 1981년에는 <흙빛문학>을 창간하고 1989년 제10호 발간 때까지 선장 노릇을 했는데, <흙빛문학>은 2015년 현재 제62호를 발간하고 있다.


▲ <태안문학>의 표지들. 필자가 1998년부터 한 해 두 번씩 만들어온 향토문학지 <태안문학>의 일부 표지들이다. ⓒ 지요하


흙빛문학회 회장 직무에서 벗어난 후로도 한참 동안 주로 소설 쪽으로 편집 관여를 했는데, 한 번은 신참 회원 한 사람이 꽤 긴 소설 원고를 제출했다. 편집위원회가 그 원고를 내게 보냈다. 읽어보니 사변적인 얘기가 너무 많았다. 소설인지 수필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소설을 수필처럼, 또는 수필거리를 소설처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난해하고 지루해서 빠져들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 소설을 <흙빛문학>에 실을 수 없다는 의견을 표했다. 편집위원회는 내 의견을 받아들여 그 소설을 싣지 않았다. 그러자 그 신참 회원이 내게 거칠게 항의했다. 그는 내게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다. 요즘 한국 문단에서 가장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작품들을 탐독하다보니 자신도 신경숙 작가처럼 소설을 쓰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는 요즘 한국 문단에서 최고 스타 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도 그런 스타일로 소설을 썼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있느냐며, 내 수준과 안목을 의심하고 노골적으로 불신을 표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흙빛문학회에서 탈퇴했는데, 내게 두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감춘 장문의 편지를 보내 나를 극렬하게 성토하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지역에서나 행세를 하는 삼류작가 주제에 너무 과하게 권력 행사를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오래 전 일이라 거의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최근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건이 큰 이슈가 된 탓에 다시금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이 전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수필 식으로 쓰는 작풍이 그 친구에게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한 일이었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은 내 고루하고 편협한 관점이 그에게 엄청난 반감을 갖게 한 것이었다.


두 번이나 이름을 감춘 편지를 받고 그 친구의 소행임을 감지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가끔 그 친구를 대면해도 편지 얘기는 일체 하지 않았고, 지금도 신경숙의 소설을 열심히 읽느냐고 물으며 격려를 하기도 했다.


작가의 천부적인 기억력


나는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와 <소설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한동안은 <현대문학>, <한국소설>, <문학사상> 등 유명 문학지에 단편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내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나는 시골 출신에다가 최고 학력이 고졸인 작가였다. 학연도 지연도 없고, 등 비빌 언덕이 없었다. 호흡이 긴 편인 나는 중편을 발표하고 싶었지만 지면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반비례로 나는 점점 왜소해져 버렸다. 권위 있는 유명 문학지에 투고한 작품(중편)이 한참 만에 되돌아오거나 내가 가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유명 문학지에 작품을 발표하려고 애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내가 직접 지면을 만들기로 했다. 구슬땀을 흘리기는 할망정 내가 직접 지면을 만들면 내 작품도 수월하게 발표할 수 있고, 또 지방문학의 활성화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지금도 권위를 자랑하는 유명 문학지에 작품을 발표하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 지방문학(또는 변방문학)에 헌신하는 자세를 올곧게 견지하고 있다. 유명 문학지들에 작품을 발표하지 않으니, 문학상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 빚어진다.


그리고 나는 문학상 수상작들을 가끔 읽어보기는 하지만 대체로 수긍을 하지 못한다. 반짝거리는 문장과 빛나는 언어들도 채워진 탐미적인 내용들, 교묘하고도 정밀한 소설의 짜임새에 초점을 맞추는 심사위원이나 평론가들의 현학적인 치장도 볼만 하지만, 대체로 현실성이 없는 얘기들, 절박성과 땀 냄새가 배제된 이야기들에 실망을 하기도 한다.


필사를 하면서 문학 수업을 했다는 일부 작가들의 고백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남의 글(일부 문장)을 가져와 사용하고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에는 수긍이 되지 않는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기억력이다. 작가의 기억력은 천부적인 것이기도 하다. 수많은 단어들이 동원되는 소설 속에 자기가 사용하지 않은 단어 하나가 끼어들어 있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경우도 있다.


나는 젊은 시절 소설가 윤흥길의 작품을 읽으면서 “뱃구레에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라는 표현을 접하고는 내 소설에도 여러 번 그런 표현을 활용하곤 했다. 그때마다 윤흥길의 표현임을 상기하곤 했다. 그에게 늘 미안해지는 마음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작가는 수많은 언어들 속에 자신이 쓰지 않은 단어가 하나만 섞여 있어도 그것을 발견해내는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남의 글(문장 일부)을 가져와 사용하고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작가정신’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 박범신 선배와 함께. 2009년 9월 17일 문학 강연을 위해 태안군청을 방문한 소설가 박범신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을 나누었다. 그때로부터 또 6년 세월이 바람같이 흘렀다. ⓒ 지요하

덧붙이는 글

지요하 : 소설가이며 저서로는 『신화 잠들다』, 『인간의 늪』, 『회색정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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