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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차고 넘친다 - (지성용) 인간, 교회 그리고 바이러스 ②
  • 지성용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3-13 15:02:02
  • 수정 2020-03-13 1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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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편에서 이어집니다. 


페스트와 종교분열에서 프랑스 혁명까지


교황직의 분열, 성직자와 수도자들 사이의 윤리적 방종, 평신도 사이에 퍼져있는 거짓 신비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쇄신과 교회 구조의 개혁을 요구했다. 흑사병으로 중세는 붕괴되었고 종교의 권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성당에 가서 열심히 신자들이 기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페스트는 맹위를 떨쳤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서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가 흔들리고, 인간은 신(神)의 무력함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제 철학은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며 신 중심의 철학이 인간중심의 인문주의 씨앗을 발아했다. 


제도적인 교회에 대한 불쾌감이 팽배했고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성사적인 교회에서 떠나 영적인 ‘보이지 않는’ 교회, ‘내면의 성전’을 향한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14세기 그리스도교회의 영성은 정확히 관상과 신비 체험을 지향했고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덕적(ascetic) 방법이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개인의 신앙과 완덕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완전한 자아포기, 하느님의 의지에 대한 완전한 복종 및 온갖 감각의 거부가 영성생활의 목표였다.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7)에서 근대적 신심운동(Devotio moderna)의 대표적 인물인 토마스 아 캠피스(1379~1471)의 ‘준주성범’까지 교회의 영성은 근대변화의 서막을 열어나가기 시작하였다. 페스트는 중세를 마무리 짓고 근대를 탄생케 했다. 엄청난 전염력으로 유럽인구의 상당수를 잃게 했고 그 결과 장원경제와 농노제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또 고위 성직자들이 흑사병을 피해 달아나자 중세를 지배해온 종교적 권위도 붕괴됐다.

 

이러한 교회의 혼란은 르네상스가 꽃피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개혁의 단초 역시 흑사병으로 시작되었다는 학설들이 제시됐다. 흑사병이 창궐하기 전까지 유럽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봉건귀족 사회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 지배층은 영토와 부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모든 정보와 지식까지 통제했다. 그러나 지배층과 성직계층의 몰락과 혼란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 1521년 독일 보름스에서 열린 국회에 참석한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reformatio)은 교회 개혁을 위한 교회 내부의 운동이었다. 1517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는 중세의 무능력한 교회와 무기력해진 제도를 새롭게 개혁시키고자 했다. 십자군 이후 봉건 사회가 점차 무너지면서 상업의 발달로 농업 경제가 상업 경제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생겨났다. 국가주의의 등장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교회가 국가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고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로 인한 교황권의 몰락은 교회 개혁을 가속화했다. 


로마교회 레오 10세의 지나친 사치와 교황청이 부과하는 조공의 상승과 예산의 낭비는 라틴족과 게르만족에게 분노와 원망을 끓어오르게 했다.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고위 성직자들의 사치와, 이를 통하여 가중된 불평등의 만연은 많은 대중들로 하여금 드디어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탈취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들 가운데 누적된 불만들은 농노 반란, 종말론적 운동,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갈망 등으로 표현되었다. 당시 전통적 봉건 제도는 그 종말을 맞고 있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에서 강력한 군주들이 출현하여 귀족들로 하여금 전체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국가들의 군주들은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봉건 영주이기도 했던 수많은 고위 성직자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억제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테카르트(1596-1650)는 말했다. “dubito, ergo(나) cogito, ergo(나) sum”,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그의 철학의 중심에서 ‘신Deus’이 사라졌다. 이전까지의 모든 철학과 사유의 중심에는 ‘신Deus’이 존재했다. 그러나 근대 사유의 서막에서 ‘나’Ergo의 등장은 프랑스 대혁명(1789-1799)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타깃은 봉건 왕조를 겨냥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교회를 겨냥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곳곳에서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을 상징하는 가톨릭교회를 습격하고 성상을 파괴했다. 이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프랑스 혁명에 저항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가톨릭교회는 시민들을 자극해 영향을 받은 일부 신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로마 가톨릭교회의 반란이 ‘방데 반란(1793-1801)’이다. 방데 반란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진압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성적 자유라는 사회 통념이 널리 퍼져나가며 잦은 전쟁을 통해 성폭력과 매춘이 일상화되었다. 근대의 산업혁명은 결핵을 불러왔다. 인구의 급격한 도시집중과 슬럼가의 출현, 열악한 작업환경과 주거환경, 장시간 노동, 오염된 공기 등은 인류에게 결핵이라는 만성 질환을 불러왔다. 현대 고도의 산업화는 동시대인을 발암물질의 한복판에 진입하게 했다. 여러 가지 산업 화학물질들과 일상의 화학용품들과 오염된 식재료와 방사선 누출 등 새로운 화학물질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발암물질도 하나씩 늘어났다. 이 때문에 모유까지 오염되고 성인병이던 암이 어린이들에까지 발병한다. 이제 국민사망자 대다수가 암으로 사망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세계화 시대의 교회와 질병


세계화의 정보, 상품, 자본 그리고 사람 간, 정치적, 지리적인 경계를 넘어선 그 흐름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전염병을 번지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영향력 있고 값싼 교통은 접근 불가능 지역을 점차 줄였으며, 세계적으로 농업 쪽의 무역은 많은 사람들이 가축과 같이 동물 질병에 더 많이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 전염병들은 역사 속에서 지리적으로 크게 퍼져나갔다. 세계화는 세계인들의 여행 증가를 촉발했고, 다양한 세계인들의 여행은 질병이 없던 원주민에게 질병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원주민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질병에 대한 면역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여행객들의 질병에 쉽게 노출되고 감염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국가와 바다를 넘어서 여행을 시작했을 때, 많은 현대과학의 질병 보고서들은 공기전염, 물전염, 피에 의한 전염, 직접적인 전염 그리고 다른 생물체에 의한 전염(곤충 또는 다른 생물체가 종 자체에서 다른 종에게 병을 전염시키면서 나타남)을 주시하며 경고했다. 


질병의 세계적 확산은 세계를 다른 어느 때 보다 더 상호의존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사스(2002-2003), 신종플루(2009), 메르스(2012-현재), 에볼라(2014-2106), 지카(2015-2016), 신종코로나 바이러스(2019-현재)는 국제적으로 확산되었고 세계뉴스가 되었다. 


2020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국민이 긴장하고 있다. 감염경로의 추적과 감염경로 차단을 위해 국제적 정보교류와 의학정보 교류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는 더욱더 정교하고 빠르게 운영되기를 희망했다. 애초 중국당국의 정보차단과 은폐가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국제여론이 결국 중국 최고실력자 시진핑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이것은 국제정보의 교류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반증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깨어 있는 시민, 조직된 시민의 힘은 민주주의의 보루라 했던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깨어있는 세계시민, 조직된 세계시민의 힘으로 당면한 세계적 질병에 대한 공동대응과 지구온난화 문제,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시대 국제 자본의 횡포와 세계금융자본의 폭력에 맞서 대응하는 깨어 있는 조직된 세계시민을 양성하고 교육하고 행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데 ‘보편적’이라 말하는 가톨릭교회, 세계적으로 방대하고 막강한 조직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세계 교회의 부패와 부정, 스캔들과 불의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서글퍼지는 것은 필자만의 과잉된 감각인가? 유네스코의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교회적 관심과 종교적 관심이 절실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회는 직시해야 한다. 세상의 선한 조직들과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 지금 할 일이 차고 넘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공동선> 2020년 3, 4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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