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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연민으로 나타나는 공감의 힘
  • 이기우
  • 등록 2020-02-04 17: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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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화요일 (2020.02.04.) : 2사무 18,9-10.14ㄴㄷ.24-25ㄱㄴ.30-19,3; 마르 5,21-43



“당신이 옳다”


쌍용자동차 회사에서 생산직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을 때, 대법원에까지 올라가는 지루한 소송 끝에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해고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복직을 위한 투쟁을 하다가 생활고에 못 이겨 항의성 자살을 택하는 노동자들이 수십 명에 달했고 그 무렵에, 평택으로 가서 천막을 치고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그들 곁을 지켜준 정신과 의사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그는 다시 안산으로 가서 아예 건물을 임대해서 상담실을 겸한 식당을 차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성스럽게 꾸민 그 무료 식당을 그는 ‘와락’이라고 지었습니다. 와락! 껴 안아주겠다는 그의 마음을 담은 색다른 이름입니다. 정혜신, 그는 공감능력을 잃어버리다 못해 괴물이 되어 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의인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당신이 옳다”고. 


부왕인 자신의 권력을 빼앗아보겠다고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오히려 슬퍼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임금이기에 앞서 압살롬의 아버지였습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반란 주모자를 미워하기에 앞서 그는, 반란을 일으켜야 했을 정도로 억울했던 압살롬의 억울함이 못내 눈에 밟혔을 정 많은 아비였습니다. 다윗이 왕비를 두고 우리야의 아내 밧쎄바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차기 왕위는 장자였던 압살롬에게 돌아갔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다윗인지라, 그는 자신의 죄를 탓할지언정 아들의 죄를 물을 수가 없었던, 너무나 인간적인 죄인이었습니다. 


반란을 진압하려는 전쟁에 나간 장수로서는 빵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런 어이없는 다윗의 처신을 두고 군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어도, 백성들은 다윗 왕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슬퍼하는 다윗의 마음이 수많은 백성들의 마음 안에서 공감을 일으켜 퍼뜨리는 파동과 파문의 힘이 있기 때문이고, 또 그 힘이 크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아비로서 슬퍼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압살롬의 반역죄를 엄히 다스리려는 윤리적 처신을 했더라면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을지언정, 백성들로부터 공감을 받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군사들이 아니라 백성들은 다윗의 진실을 알았을 겁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을 겁니다, “당신이 옳다”고. 때로는 슬퍼하는 마음의 진실이 윤리를 넘어섭니다. 


연민의 파동과 공감의 파문 효과


오늘 복음이 전하는 두 이야기에서도 슬픔에 빠진 두 사람, 회당장 야이로와 이름 모를 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끼신 예수님께서 이미 죽었던 야이로의 딸은 살려주시고,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고통 받던 그 여인은 고쳐 주셨습니다. 두 사건 모두 당사자의 슬픔에 공감하시고 연민을 느끼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위로의 행위요, 사랑의 표현이며, 자비의 발로였습니다. 


‘하느님 말씀 주일’로 봉헌했던 지난 연중 제3주일의 취지를 잊지 않으려고 어제의 말씀에 대해서도 죄와 벌, 사랑에 대한 수학 방정식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이 지닌 파동의 힘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만,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에 나오는 다윗과 예수님의 처신을 통해서는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이 지녀야 할 연민의 파동과 공감의 파문 효과에 대해 묵상해 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옳다”는 말은 고통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공감해 주는 언어입니다. 하느님의 위로가 필요해서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해주어야 하는 언어가 이 말입니다. 찾아오지 못하면 찾아가서라도 해 주어야 할 언어입니다. 이 연민과 공감이 말씀을 세상에 퍼뜨리는 파동의 힘이요 파문의 효과입니다. 


요즘 세상을 삭막해져 가는 현실로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바로 이 연민과 공감을 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괴물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민과 공감은 개인적인 불행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불행에 대해서도 해당됩니다. 불의를 보고서도 외면하고자 도피한다면, 불평등한 현실을 알고서도 자기만의 행복에 안주하려든다면 분명 이러한 세태는 천국은커녕 인간 세상일 수가 없습니다. 아마 지옥의 또 다른 모습일 터입니다.  


“복음 말씀이 지닌 파동과 파문의 힘은 기쁨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슬픔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는 연민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행동이야말로 힘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뻐서 흘리는 눈물 못지않게 함께 슬퍼해 주는 눈물의 힘이 사람들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으로서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하느님 앞에서 그분이 가장 정성들여 빚으신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게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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