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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오그라든 사람,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들
  • 이기우
  • 등록 2020-01-22 17: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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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수요일 (2020.1.22.) : 1사무 17,32-33.37.40-51; 마르 3,1-6


동방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 외에 서방 교회 안에도 동유럽과 발칸반도 지역에는 동방 교회의 전례를 지금껏 고수하고 있는 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로마 교황의 권위를 존중하는 이들 그리스도인이 속한 공동체들을 동방 가톨릭교회라고 부릅니다. 오랜만에 화해한 동·서방 교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서방 교회 안에서 독일 그리스도인들은 루터파로, 스위스 그리스도인들은 칼빈파로 갈라져 나갔고, 이런 흐름에서 따로 갈라져 나간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성공회(聖公會) 즉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라고 자처합니다. 이들도 로마 교황청에 반기를 들었을지언정 성사 체제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가톨릭교회와 가까운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방 교회의 주축인 로마 가톨릭교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교황청과 사제들의 관료화 현상과 더불어 신자들의 인습적이고 기복적인 세속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를 쇄신해 보겠다고 갈라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 성공회 신자들도 인습적 세속화 현상으로 흐르자 다시 쇄신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를 옥스퍼드 운동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두 사람의 성공회 사제를 기억해야 합니다.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은 이 운동을 전개하다가 아예 가톨릭교회로 개종하여 추기경 자리까지 올랐고, 존 웨슬리(John Wesley)는 대륙의 프로테스탄트들처럼 성사를 버리고 감리회를 꾸려 나갔습니다. 다양화되어 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역사적 분화 현상을 성령께서 어떻게 일치로 이끄실지를 오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윗은 겨우 돌팔매질로 강철 검을 든 장수 골리앗을 아주 간단히 물리쳤습니다. 이 일로 필리스티아인들은 다윗과 이스라엘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되었고, 백성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좋아하게 됨에 따라서 사울은 왕권의 경쟁자로 떠오른 다윗을 노골적으로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당하고 이겨내셨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 앞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바리사이들이 데려다 놓은 일은 분명히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올가미를 놓은 일종의 시험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들의 전형을 드러낸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몹시 화가 나셨지만 바리사이들에게는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으셨고, 다만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펴주셨을 뿐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도 마음이 오그라든 제자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 갈등을 원만히 풀지 못하고 더 꼬이게 만든 일은 아주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윗이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가볍게 물리쳤으면 좋았으련만 교회 안의 현실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 내 갈등 문제는 이미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여왔을 당시에도 불거져 있었고, 이러한 갈등의 흔적들은 복음서 안에 버젓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니, 거슬러 올라가자면 야곱의 열두 아들들 사이에서도 이집트로 팔려가야 했던 요셉이 그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였습니다. 그들을 우두머리로 하여 이스라엘을 구성한 열두 지파들도 통일왕국을 겨우 삼대에 걸쳐 유지한 다음에 유다 지파와 이를 지지하는 한 지파만 남유다왕국으로 남고, 나머지 열 지파는 자기들끼리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는 북이스라엘왕국으로 떨어져 나간 사실만 보아도 형제간 갈등의 역사적 뿌리는 제법 깊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불러 모으신 열두 제자들의 처지도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따로 부르셨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야 예수님께서 중책을 맡기시려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특별 교육을 하신 것이지만, 야고보와 요한 또 베드로와 안드래아는 친형제지간이라서 붙어 지냈습니다. 필립보나 토마스는 보여주어야 믿겠다던 합리주의자였지만 막상 보고 나거나 납득이 되고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을 던지는 행동주의자로 처신하는 등 제자들의 행동성향도 다양했던 겁니다. 하지만 사도가 되어서는 열두 제자 모두 일생을 바쳐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는 일치했습니다. 


산상설교로 그리스도인들의 지상목표를 제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듯이, 성령의 이끄심에 의한 가시적 성과는 성체성사를 비롯한 성사의 품위를 향유하는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거룩한 변화를 이룩하느냐가 독립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성서적 추론을 전제로 한 교회 일치적 전망입니다. 다양한 교파에 속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종속변수로 작용하겠지요. 성령의 이끄심과 개입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다양성 안의 일치로 나아갈 것이며 이로써 하나인 교회가 점점 더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기업이나 언론이나 정치권력이 제 갈 길을 가지 않고 있을 때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소비자, 독자 및 시청자, 유권자들이 의사표현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듯이, 그리스도인들의 분열 현상이 더 복음적으로 쇄신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그라든 마음에 의한 것인지는 결국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신자들이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판명될 것입니다.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이룩할 주도권이 평범한 일반 신자들에게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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