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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에 담긴 뜻을 모르면 신앙의 신비도 없다
  • 이기우
  • 등록 2019-08-02 15: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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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금요일 : 레위 23,1.4-11.15-16.27.34ㄴ-37; 마태 13,54-58



자연의 이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지만, 전례에 담긴 뜻에 대해서 묻지 않으면 그 어떠한 신앙의 신비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짧은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본격적으로 찾아왔음을 알게 해 주는 것이 비와 더위입니다. 특히 비는 적게 와도 안 되지만 너무 많이 와도 안 되기 때문에 매년 닥치는 일인데도 매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더구나 하늘과 함께 일을 하는 농부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구 전체로 보면 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대기의 순환작용입니다. 태양열로 바다가 더워지면 표면에서부터 수분이 증발합니다. 이 수증기가 구름을 형성하느라 올라가면 비워진 그쪽을 메우느라 공기들과 바닷물이 이동하게 되고 이래서 바람도 불고 해류도 생겨납니다. 이 바람이 더워진 땅과 바다를 식혀주고 올라간 수증기들은 많아지면 구름 속에서 뭉치게 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이 무거워지면 비가 되어 내립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산과 들과 숲의 온갖 생명체들을 생기 있게 하고 나서 지하로 스며들거나 강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바다로 모여드는 이 대순환의 작용이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 지구라는 별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로 나타나는 물과 공기의 움직임은 생명에 대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어주신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역사에도 개입하시어 당신의 기운으로 이집트 탈출이라는 기적적인 사건을 일으키시고, 그 사건의 교훈으로 파스카 정신을 십계명에 담게 하셨으며, 그리고 그 정신을 의식화시키는 전례들을 만들게 하시고, 그리고 그 전례의 뜻을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과 일을 통해 실천하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기운이 온 누리에 골고루 퍼져나가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에 개입하시어 개인을 넘어선 민족이라는 집단을 상대로 당신의 존재와 구원계획을 드러내신 이 역사적 계시가 출애굽 사건, 즉 Exodus입니다. 


지구에서도 적도 부근 바다를 태양열이 가장 뜨겁게 비추기 때문에 맹렬하게 수증기가 증발하듯이, 인류 역사상 우상숭배가 유난히 심했던 이집트에서 우상숭배의 피해자로서 종살이의 고생을 사백삼십 년 동안이나 심하게 했던 히브리들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선택은 이스라엘만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으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만민에게 하느님의 빛을 비추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고 이를 파스카 과업이라 합니다. 어느 바다에서 올라왔든 수증기는 하늘을 떠다니면서 필요한 땅마다 고루 비를 뿌려주는 이치와도 비슷합니다. 파스카 과업은 유다교의 사상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의식화시켜줄 수 있는 전례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안식일이요, 무교절인가 하면, 속죄일이요 집회일입니다. 


전례는 삶을 위한 것이요 그것도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의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그러기에 십계명을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닌 이스라엘 민족은 유다교인들로서 안식일을 행해야 하는 여러 전례들을 통해서 이 파스카 과업의 뜻을 마음깊이 새기는 의식화의 전통을 오랜 기간 동안 간직해 왔습니다.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시어 파스카 과업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보고 고향 사람들은 놀랐다고 합니다. 한낱 목수 출신이요 자기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동향사람이기에 전례를 그저 종교적 의무로 지낼 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과 역사, 정신과 의식을 일깨워주시는 예수님의 존재가 신기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고 한심하게도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오늘날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일의 전례는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주일을 지키는지, 또 왜 주일에는 미사를 하는지, 또 왜 미사 중에는 성체성사를 거행하는지, 또 신자들은 미사에 참석해서 영성체를 하고 있는지 등등을 굳이 따지지 않은 채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가장 딱한 노릇은 성체성사 중에 일어나는 신앙의 신비를 환호하면서도 왜 환호하는지 또 무엇이 과연 신앙의 신비인지를 묻지 않는 일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지만, 전례에 담긴 뜻에 대해서 묻지 않으면 그 어떠한 신앙의 신비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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