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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늙어 ‘집에서 살다 죽느냐 양로원에서 살다 죽느냐’ 이것도 문제로구나!
  • 전순란
  • 등록 2019-06-14 15: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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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3일 목요일, 맑음


한 달에 한번 찾아가는 엄마. 우리 형제가 다섯이니 매주 한번 꼴로 엄마는 자식들을 보신다. 남들이 하는 말로는, 울 엄마처럼 자식들이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다고, 엄마는 복 많은 분이고 우리더러는 효자 효녀라고 한다. 한 달에 한번 가서 뵙고 돌아서는 게 맘에 걸려 나는 하룻밤을 엄마 곁에서 잔다(친절하게도 방신부님 때부터 보스코에게는 손님방을 챙겨주어 응신하게 해준다).



엄마는 언제나 아주 조용히 주무신다(보스코가 하는 말로는, 나도 반듯하게 누워 정말 조용하게 잠을 잔단다). 그러다가도 자주 화장실을 다니고, 누운 채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과자나 사탕도 먹고,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야쿠르트 한 병을 따서 들기도 하신다. 침대로 돌아와 방바닥에 잠든 나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두 겹으로 접어 덮어준 이불이 조금이라도 아귀가 안 맞으면 양 끝을 맞춰 딱 반으로 접어 다시 덮어 주신다.


이것저것 덜렁대서 남편이 간간이 정리를 해주는 딸과는 달리, 엄마는 늘 모든 물건을 반듯하게 놓고 제자리에 놓도록 우리를 가르치셨다(그 가르침은 별 소용이 없었다). 지금도 당신 방으로 들어갈 땐 꼭 신발을 벗어들고 신발장에 넣고, 옷은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 두신다.



그래서 당신 방 앞에도, 기다란 복도의 다른 방들 앞에도, 거기 놓인 신발들은 누가 어질러 놓았다고 생각하여 멀리멀리 갖다버리신다. 어젯밤에도 엄마 방 앞에 벗어놓은 내 샌들이 간 곳이 없어 찾아 나섰더니 한쪽은 복도 장의자 아래, 한쪽은 복도 저 편 끝에 버려져 있다. 신발을 찾아 들고와서 ‘엄마, 내 신발이야. 버리지 말아요.’ 라는데 이번엔 당신이 내 샌들을 신으신다. 밤에 화장실을 기어서 가고, 복도를 걷다가도 힘이 들면 엎드려 기어가신다. 정말, 차츰차츰 아기로 돌아가시는 중이다.


엄마를 낼모레 이층의 병실에 보내 입원시키면 더 급속도로 나빠지지는 않을까? "엄마, 엄마가 열흘 넘게 밤도 안 먹고 해서 어디 아픈가 병원에 입원해서 의사가 검사를 해야 한대. 며칠 계시면서 검사를 받고서 방으로 돌아오세요, 응?"이라고 핑계를 대는데 걱정이 되어 잠이 안 온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적응이 되시면 엄마가 20년 가까이 머물던 방도 치워진다는 흉계를 아는지, 엄만 다른 때보다 더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리신다. 이도 닦아드리고 손도 닦게 하고 세수도 시켜 드리는데 자주 울컥 뭐가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온다. 호천이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자꾸 전화를 한다.



"어쩔 수 없지 않냐? 나도 내 아이들에게 우리 노후에 대해서 아무 기대 안 할 거다."라는 내 말에 "누나, 우리가 바로 효도하는 자식의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한테 효도 못 받을 첫 세대야."라고 답한다.


서울집에 와서 엄마가 2011년에 쓴 '인위적인 생명 연장 거부서'를 다시 한 번 꺼내본다. 그때 증인을 섰던, 엄마와 동갑이던 내 한신대 선배 안계희 장로님도 돌아가셨다. 오늘 다시 보니 그때 엄마가 "얘, 90이면 너무 빠른 것 아냐?"면서 나중에 쓰마고 하시던 생각이 난다. 이모가 곁에서 다그쳐 쓰긴 쓰셨다. 엄마가 언제 써보탰는지 '유서'라는 제목도 붙어 있다. 그 제목이 끔찍해서 그렇게나 미루려고 하셨던가?


너무 깊이 생각하여 우리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자며 딴 생각을 시작하려고 책을 펴 읽는다.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을류문화사 2018)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셰익스피어의 명구가 있지만, 우리도 늙어서 ‘집에서 살다 죽느냐 양로원에서 살다 죽느냐’ 이것도 문제로구나!


서울에 도착해서 한목사집에 들러 양파를 전달하고, 정릉에서 내려오는 길에 우리 주치의 선내과에 들러 보스코의 두통과 왼다리 통증을 진찰받고 오경웅 박사의 「성영 사색(聖詠思索)」을 한 부 원장님에게 드렸다. 보스코가 추천서문을 써서 역자가 증정해온 두 권중 하나다. 원장님은 안식교에서 나오는 「시조(時兆)」라는 월간잡지를 10년 넘게 우리에게 보내주신다. 우리 가족에게서는 진찰비도 안 받으시면서...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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