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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숱한 4월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 김유철
  • 등록 2019-04-16 14:14:15
  • 수정 2019-04-16 17: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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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1966년에 나온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중 나오는 히틀러의 마지막 절규 소리가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였다. 오늘 새벽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뉴스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소식이었다. 일반인에게는 프랑스의 문화재이며 세계문화유산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충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파리 자체를 프랑스의 예술과 혁명의 정신으로 여기는 파리지앵들에게 불붙은 성당의 첨탑이 주는 충격은 더욱 더 클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은 1330년 완공된 고딕건축의 대표적 건물이다. 성당은 이후 대혁명의 영욕과 함께 황제 대관식을 치르고 왕족들의 세례와 정치인들의 장례식 등등 프랑스 역사를 모두 담고 있는 장소다. 이번 화재가 성당 전체의 소실과 같은 최악은 피했다고 할지라도 ‘노트르담’이란 이름이 ‘성모 마리아’라는 의미를 다시금 새길 때 그것은 충격이고 형언할 수 없는 죄스러움이다. 4월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우릴 데려가는가?


1960년 4월.

시민혁명의 시작


그 해 4월이 오기 전 3월 15일 이승만 정권은 자유당의 집권 연장을 위해 전국적으로 노골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투표도 하기 전 이미 투표함에 들어가 있는 4할(40%)의 사전투표를 비롯해 더러운 손으로 할 수 있는 각종 수법은 다 동원하여 이승만과 이기붕은 대통령과 부통령에 각각 당선되었지만 그것은 선거의 끝이 아니라 시민혁명의 시작이었다. 전국적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자유당 정권은 총으로 무장한 계엄령으로 맞섰지만 그것은 독재자 최후의 발악이었을 뿐이었다.


4월 11일 마산 용마고등학교 학생이었던 김주열이 눈에 최류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정치 폭력배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4월 19일 경무대를 향한 분노한 시민들에게 공권력은 발포하여 당일에만 104명 사망, 172명 부상의 비극을 가져왔다. 피에 물든 4월의 화요일이었다. 자유당 정권은 시민혁명으로 막을 내렸고 이기붕 일가는 자살을 선택했으며 이승만은 5월 해외로 망명했다. 


4.19는 시민혁명으로서 독재정권을 뒤집은 첫 사례이며 그 정신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뚜렷이 새겨 넣었다. 문제는 첫 번째 해방이었던 8.15와 두 번째 해방인 4.19를 오늘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가에 있다. 파리가 불타기를 원하는 자들에 맞서야 할 때는 늘 오늘이다.


2014년 4월.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 ⓒ 강재선


5년이 지났다. 그래 5년, 1825일, 43800시간. 과연 긴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짧은 시간이었을까? 우리는 그 5년 동안 무엇을 밝혀냈고 어떤 말을 하려고 아이들에게 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이 2014년 4월 15일에서 멈춰있기를 많은 사람이 바랄 정도로 우린 정지된 시간 속에서 멈추어 있거나 가위눌려 허둥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선박회사를 대표해서 속옷차림으로 탈출하려했던 선장을 비롯한 몇 사람의 선원과 공권력을 대표해서 해경 123정장 1명을 빼고는 처벌 받은 이가 없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여전히 우리는 5년이 지나서도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4월 15일 18시30분에 출발하려던 세월호, 아니 아이들을 ‘악천후’가 떠나지 말라고 보이지 않는 발을 잡았다. 그러나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포함해 교사 14명, 인솔자 1명, 일반탑승객 74명, 화물기사 33명, 승무원 29명 등 모두 476명이 ‘돈’으로만 보인 사람들은 출발을 재촉했다. 4월 15일 22시는 숨어있는 모든 헛된 욕망에 대한 고발이었고, 허위로 쌓은 돈과 권력이 빚어낸 음모와 은폐의 시작과 연속 그리고 끝을 향한 줄달음이다. 


여전히 우리는 돌아오지 못한 5명과 299명의 희생자들에게 답해야 한다. 왜 구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분명히 죽어가고 있는 우리들이 과연 꽃다운 아이들과 어떻게 다시 만날 것인가에 있다. 나는 ‘미안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2018년 4월.

처음 가보는 길을 봤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사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중국인 작가 루신이 1921년 쓴 『고향』의 마지막 구절로 기억한다. 2018년이 오기 전 한반도가 마주한 막다른 길에서 우리는 갑자기 어떤 희망 그리고 어떤 길을 만났다. 그 해 4월 27일 당일치기로 한반도의 허리에서 만난 남북의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내놓았다. 허리병을 앓던 환자에게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특효약이었다.


▲ (사진출처=청와대)


남북은 남쪽 대한민국과 북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은 두 나라와 함께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드러내지 않은 숱한 나라까지도 남과 북의 그림자에 숨어서 움틀 거리고 있다. 그것뿐이랴, 일상의 거리에도 숱한 남과 북은 존재하고 있다. 모두가 처음 가보는 길을 보기는 보았지만 두려워하는 것이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루신이 말한 것처럼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으며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처럼 한반도의 길은 그렇게 임비곰비 만들어 질 것이다.


숱한 4월은 우리에 무엇이었을까? 독재자의 총성과 맹골수도의 노란바다와 판문점이 품은 실타래 같은 희망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4월 16일 아침 파리에서 전해진 성모 마리아(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을 소신공양하는 등신불로 바라보며 두 손 모은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필진정보]
김유철(스테파노) :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삶예술연구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민예총, 민언련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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