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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태 신부의 오늘 미사 (15.06.18)
  • 이균태 신부
  • 등록 2015-06-19 11: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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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묵주알 열심히 굴리고, 기도서에 나오는 기도문들을 좔좔 외우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 그런 것만이 기도가 아니다. 화해하고, 극기하고, 아내나 남편을 버리지 않고, « 예 »할 것은 « 예 » 하고, « 아니오 » 할 것은 « 아니오 »하고, 정직하고, 폭력을 포기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 이 모든 일들도 사실은 기도이다.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모두가 다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라서 상호간의 노력이 전제조건이다.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라면, 굳이 화해할 필요도 없고, 극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직할 필요도, 폭력을 쓸 필요도, 원수도 없을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 안에서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삶의 원칙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삶의 원칙들이 지향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윤리교사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들이 바로 하느님을 위한 것임을 천명한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친히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신다. 바로 주님의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굳이 나누어 볼 수 있다. 후반부는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라는 대목부터 시작한다. 


일용할 양식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나눌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해달라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빛나게 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더불어,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언제나 애매모호한 것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일용할 양식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다 취할 수 있게 하는 것,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진상 규명, 진실 규명이라는 것, 편안함의 유혹에, 거짓 평화에 빠지지 않는 것, 악에 저항하는 것, 악에 빠져 있는 이들을 구해내는 것,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이다. 신자가 되는 순간, 아니,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세례 받고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자들이 제일 많이 해야 하는 기도가 소위 주모경 그 중에서도 주님의 기도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를 진정 주님의 제자로서 바친 적은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묵주기도를 하고 아침, 저녁기도를 바치고 하루에도 여러 번씩 이 기도를 바치겠지만, 진정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기를 염원하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가? 


이 기도를 바치는 내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은 채, 이 기도를 바친다면, 결국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다른 민족 사람들, 빈말을 되풀이해대는 그들처럼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주님의 기도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한다. 산상 설교에서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오늘도 우리들은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를 모시기 위한 준비로 주님의 기도를 바칠 것이다. 


주님의 기도는 분명히 제자들에게 주신 기도다. 제자인 척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것도 아니고, 서류상의 제자만이 아니고, 무늬만 신자들에게 주신 그런 기도도 아니다. 참 제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기도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제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기도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미사에서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에는 예수님의 참 제자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로 주님의 기도를 바쳐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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