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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 이기우
  • 등록 2019-03-20 11: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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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수요일 - 예레 18,18-20; 마태 20,17-28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 대해서 적대시한 사람들은 선을 가장한 내부 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다 종교적인 기득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던 자들이었으며 자타가 공인하던 경건한 종교인이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앗시리아 제국이 쇠퇴하고 바빌로니아 제국이 발흥하던 시기에 아직 여전히 세력을 과시하던 이집트 제국과의 사이에서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40 여년 동안 줄기차게 예언한 인물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친바빌론 정책을 펴든 친이집트 정책을 펴든 다윗 왕조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무난히 지켜지리라고 착각하면서 쥐꼬리만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던 자들에 대해 예레미야는 가차없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심판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격리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 박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하느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이 말은 그의 적대자들이 보이는 위선을 그가 폭로하자 온갖 악한 방식으로 괴롭히는 적대자들을 고발하는 방패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사악한 적대자들을 공격하는 선의 무기는 적대자들의 사악함에 굴종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의 심판을 외치는 설교였습니다. 


경건함을 가장한 종교권력의 사악함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선포와 제자 공동체 양성으로 맞서셨습니다. 


비록 현실적인 힘이 저들에게 주어져 있어서 예수님의 현세적 운명은 십자가 죽음으로 귀결되겠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숨지실 예수님을 다시 부활시키시리라는 희망이야말로 복음선포와 제자 양성이라는 선의 대책을 옳은 방식이라고 보증해주시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나 그 어머니는 그런 이치도 모른 체 엉뚱한 청탁을 하고 있고 이를 보고 있는 나머지 제자들도 불쾌하게 여기고 있습니다만, 이렇듯 개념 없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해 주실 수 있는 가르침은 당신처럼 사람들을 섬기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선포와 제자 양성에 이은 이 섬김의 전략이 교활하고 끈질기며 발악적인 악의 준동에 대해서 맞설 수 있는 선의 대책이었습니다.


선과 악이 싸우는 역사의 대결장에서는 흔히 악이 지능적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 비해서 선은 무능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무지지 못한 선의 무능함으로는 악을 대항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악을 대항하는 방식에서 악한 방식을 흉내 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이른바 형식 싸움, 또는 프레임 전쟁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물론 예수님께서도 악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힘에 의해서 신체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고 외적 운명은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다만, 신체와 외적 운명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언자로서 또 구세주로서 선택하신 선의 전략은 악이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더 끈질기고 더 체계적이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힘에 희망을 두는 장기적인 전망을 갖춘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40여 년 동안이나 온갖 박해 속에서도, 심지어 바빌론에 항복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다가 친이집트파에게 납치되어 이집트로 끌려가서도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설교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나 바리사이들의 모함과 음모를 받으면서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선포 활동을 멈추지 않으셨고, 엉뚱한 청탁을 하며 현세적 보상에 관심을 쏟고 있는 한심한 두 제자나 이를 불쾌히 여겨서 질투하는 나머지 제자들을 보면서도 제자들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한 가르침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당신은 십자가에 달리고 못 박혀 숨지신다 해도 하느님께서 최종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실 것을 철석같이 믿으셨기에 그렇게 처신하신 것입니다.


선을 위하지 않는 한 악의 세력이 행사하는 외적인 힘은 일시적인 것일 따름입니다. 


오늘날 예레미야를 박해하던 그 누구의 이름도 기억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두가이나 바리사이들 중 그 누구의 삶도 존경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합니다. 역사에서 하느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선한 이들의 선택이 지향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방식과 전략에 있어서도 철두철미하게 선하면서도 악보다 더 끈질기고 더 조직적이어야 함을 오늘 말씀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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