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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님! 저희는 당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 이기우
  • 등록 2019-03-18 14: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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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9,4ㄴ-10; 루카 6,36-38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는 동족이 걸어온 역사를 하느님 앞에서 회고하며 참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조상들을 해방시켜주신 후에 하느님과 그 백성으로서의 쌍무계약을 맺으셨는데,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성실하게 이끌어주셨지만 조상과 동족들이 계약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정해주셨고, 예언자들을 통해서는 그 법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셨는데도 이스라엘은 그 법을 어기고 예언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이 점을 상기하면서 다니엘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는 뜻은 용서를 청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죄의 고백을 통한 하느님의 심판을 자청하면서 부디 자비로운 심판으로 다시금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를 새로이 하자는 청원입니다.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에는 계약이 맺어져 있으므로 그 계약 내용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준수하느냐에 따라 심판과 고백이 오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만, 하느님 백성 사이에서는 하느님의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를 연결 고리로 한 연대를 해야 하므로 서로 간에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야말로 대동소이(大同小異)에 바탕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행동질서가 필요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받아들이며 서로 협동하고 서로 연대하는 공동체 윤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고 우선입니다.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에는 심판과 고백의 관계가 성립하듯이, 하느님 백성과 하느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그 심판은 윤리적으로 단죄하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을 드러내는 사랑의 심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의 삶이 드러내는 하느님의 빛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감화를 받고 매력을 느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 백성을 통해 받아야 하는 감화와 느껴야 하는 매력, 그리고 이를 통한 회개야말로 고백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순 시기에 요청되는 회개의 내용은 세 가지로 모아집니다. 첫째, 하느님께 우리는 무엇을 고백할 것인가? 우리가 하느님의 법을 어긴 죄는 무엇인가? 둘째,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교회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서로 용서하고 어떻게 협동하며 누구와 먼저 연대할 것인가? 셋째, 교회 바깥의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두 번째 회개의 내용으로 비추어질 것이고 되도록 감화와 매력을 줄 수 있도록 믿는 이들 안에서의 용서와 협동과 연대를 이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공동체 윤리가 확립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그 조짐이 뚜렷이 보이듯이, 모래알 같이 흩어져 있는 신자들 사이에서는 신앙의 사사화(私事化) 현상과 개인주의 윤리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복신앙으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사도직 활동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선한 지향으로 신앙인들이 함께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처신이 심판이라면 그 심판은 윤리적 심판이 아니라 사랑의 심판이어야 합니다.


그밖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보여주는 행실과 처신에 대해서는 그것이 윤리적 악이라면 우리가 물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죄할 수밖에 없고 저항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저 하느님을 알지 못해서 나오는 처신이라면 단죄하기보다는 관용을 베푸는 것이 낫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알게 해 주고 믿을 수 있을 만큼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처신이 심판이라면 그 심판은 윤리적 심판이 아니라 사랑의 심판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중세 유럽 가톨릭교회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교회가 세상 안에서 고립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신론자를 자처하게 되고 세상은 무신론 천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세상에는 분명히 악이 판을 치고 있고 그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신기하고 또 이상한 일은 정작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그게 악인지도 모르는 수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우리가 그 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나 그 악으로 인해 희생당하고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 저항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으로 그 악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악을 없애는 선이 믿는 이들 안에서 생겨나야 그 선을 빛의 도구로 해서 하느님께서 그 악을 없애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의 편에 선다 하더라도 우리 힘으로만 악을 없앨 수 없음을 겸손되이 인정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의 도구로 쓰실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악을 직접 마주쳐서 대결하려고 들기보다 하느님을 가운데에 모시고 그분의 선에 충실하려고 집중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선이 점차로, 그러나 거역할 수 없이 커다란 위력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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