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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 대세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 이기우
  • 등록 2019-03-14 16: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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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목요일 - 에스 4,17; 마태 7,7-12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들이 실천해야 할 바를 알려줍니다. 그 첫째는 하느님께 대한 개방성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청하고 구하는 바를 주실 것을 믿고 청하라는 당부의 가르침입니다. 유다인들이 바빌론에 끌려갔던 시절에 그곳 나라의 왕비가 된 에스테르는 모함을 받아 동족이 박해받을 위기의 상황에서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동족 유다인 포로들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70년 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짜놓은 국제질서 속에서 냉전과 분단의 세월을 보낸 우리 민족이 70년 만에 맞이한 냉전 해체와 분단 극복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회가 전개될 속도와 규모는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미국의 재량에 달려있는 형국에서 약소국의 비애를 겪고 있는 이즈음입니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합을 이루려는 역사의 흐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합의 무산으로 지금은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인데, 지금으로서는 미국도 북한도 먼저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오직 평화와 화해를 바라는 국민 여론과 이에 힘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혜와 노력만이 이 교착 국면을 타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화와 화해를 바라는 이들이 하느님께 청하고 구하며 문을 두드려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


첫 번째가 하느님께 향해 지녀야 할 영적 자세라면, 두 번째는 우리들 서로 간에 지녀야 할 사회적 자세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선의를 믿고 먼저 협동하고 연대하려는 개방성입니다. 어쩌면 북녘 동포들에게도 이 같은 개방적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만, 우선은 우리 대한민국 사회 내부에서부터 요청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노골적으로 반동적 경향을 보이는 자들은 제쳐놓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냉전의 종식과 분단의 극복을 바라는 이들 사이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서로의 선의를 믿고 민족의 공동선에 대한 지향을 지속적으로 확인,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 여론이 활성화되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작은 차이들을 뛰어넘어 장차 통합될 민족의 미래 모습을 내다보며 궁극적으로 통일될 나라의 비젼을 공유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백 년 전에는 나라의 힘도 약했거니와 국민의 여론을 모을 여건도 되지 못해서 강대국들의 농간에 주권을 빼앗겨야 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얼마든지 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으로 내부 여론을 추슬러가면서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인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이룩하지 못한 과제들을 참고하면서 후발국으로서의 장점을 십분 살릴 수도 있게 되었음은 다행입니다. 수백 년 동안 서로 죽이고 싸우던 유럽 나라들이 연합하고,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이 국제질서를 주도해 온 최근 인류의 역사 안에서 갈라지고 소외되어 온 아시아의 문명, 특히 동북아시아의 문명의 활성화를 위한 핵심 국가로서 통일 코리아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일본은 돈이 많지만 이 두 나라는 서로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도 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만, 통일 코리아에 대해서는 중국도 일본도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지정학적으로만 보더라도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자면 통일 코리아가 바닷길을 열어주어야 하고,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고 북한 부흥계획에 참여하자면 통일 코리아가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과 일본은 주변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거나 지배했던 전과가 있어서 경계를 받고 있지만 한국은 그런 전과가 전혀 없어서 국제적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문화적으로는 한류가 광범위하게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 현상이 통일 코리아의 미래 위상을 점칠 수 있게 합니다.


통일 코리아를 준비하는 일은 친일 잔재와 독재 잔재를 비롯하여 과거의 불의한 그림자를 걷어냄으로써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로운 새 사회를 건설하는 일도 하느님의 보우하심을 청하고 우리 안의 선한 연대와 협력을 다짐해야 한다는 조건을 채워야 합니다. 이런 지향으로 하느님께 열린 마음으로 청원하는 기도를 바치는 일과, 우리 안에서 서로의 선의를 믿고 먼저 연대와 협동의 자세를 보이는 일,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열어줄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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